〈2012〉 – 단순한 창조론자의 주장

영화 <2012>를 드디어 봤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유명한 SF <투모로우>와 지독히도 재미없어 말아먹은 <BC10000>을 만든 감독이다. 뭐 사실 SF감독이라고 하지만 이전의 <투모로우> 분석글을 보면 알겠지만 별로 과학에 철저하게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이 영화도 SF영화로 소개되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생각은 창조론자들의 영화라는 생각 뿐이다. “정말 플레어가 강하게 발생하면 지구가 멸망할까? – 〈Knowing〉“에서 <Knowing>을 창조론자들의 영화라고 이야기했는데, <2012>도 한 술 더 떠서 완전히 성경을 베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밑도끝도 없이 중성미자가 지구의 내부를 달군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평범하던 중성미자가 왜 갑자기 지구 내부를 달구는지, 왜 종종 주기적으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등등은 과감히 생략하고, 지진과 화산 분화 모습 등의 스펙타클한 자연재해 모습에 집중한다. 영화가 무엇인가의 주제라기보다는 단순히 자연재해의 모습을 보여줘 영화 <볼케이노>의 분화장면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그냥 뻔하다. 각 구성원들간에 엮인 모습들은 이미 이전 헐리웃 영화에서 보여줬던 뻔한 모습들이고, 가족애, 희생 등을 줄줄히 나열하는 정도다. 영화 내용이 성경에서의 노아의 홍수를 그대로 베낀 것(표절이라고 해야 할 정도)을 안다면 단지 사건의 발생 순서나 누가 언제 희생할 것이냐 하는 정도만 결정하는 것으로 영화 줄거리 대부분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중반이 넘어가면서 이어지는 내용은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완전히 일치한다. 왜 대륙들이 가라앉는 것인지[footnote]엄밀히 말하자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대륙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갑자기 바닷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이유모를 해일이 들이닥쳤던 것과 같은 이유다.[/footnote] 등에 대한 이유는 역시 전혀 없다. 하여튼 티벳의 산 꼭대기에 건조한 열 척의 배[footnote]영어에선 선박과 우주선을 모두 한 단어 ship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이 배를 우주선이라고 생각한다.[/footnote]에 돈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각종 동물들도 몇 마리씩 탑승시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헐리웃 특유의(?) 휴머니즘 공방….

영화가 끝나갈 때 갑자기 바닷물이 줄어들어 다시 육지가 노출된다. 아프리카가 6000피트(feet; 약 1800m)나 상승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단순히 창조론자의 주장을 영화화 했을 뿐이다. 창조론자의 주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직 딱 하나 뿐인데, 창조론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6000년, 노아의 홍수가 4000년 전에 일어났었던 것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이전 홍수가 6400만 년 전(공룡이 멸종했던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미국 창조론자들이 과학교과서에 창조론을 넣으려다가 실패한 이후 방향을 헐리웃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은 돈은 많으니….

창조론자가 아닌 SF 영화감독이라면, 롤랜드 에머리히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 이외에 영화 자체의 작품성 등도 거의 없다. 헐리웃판 <해운대> 정도의 수준이랄까?

별점 : ☆

4 thoughts on “〈2012〉 – 단순한 창조론자의 주장

  1. 한가지 태클을 걸자면 6000년의 지구 나이와 4000년전 노아의 홍수는 창조론자들이 아닌 창조과학회들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창조과학회는 이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들의 의견이 기독교에서 보편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구요.

    1. 창조론과 창조과학회의 주장이 그 정도로 나뉜다면 제가 리뷰를 잘못 쓴 것이겠죠.
      하지만 창조과학회가 아닌 창조론자들의 주장도 기본적으로 창조과학회의 주장과 비슷하더군요.

  2. 어떤 장르의 영화를 통해서든 우리가 얻고자하는 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지요^^

    저는 공학도이고 진화론자지만, 이 영화에서 지구에 대혼란이 불어닥쳐 오는 과정이 창조론적이냐 아니냐에는 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 ‘왜 총알이 주인공을 피해다니지?’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SF 시나리오에서 가짜과학을 통해 얻으려 하는 건 명확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현실감을 전달해 몰입시키는 일이고 이 영화는 그걸 훌륭하게 해냈다고 봅니다.
    설정 빨이 아니라 CG 빨이었지만요.

    고로 비판의 핀트가 어긋나있달까 감상의 초점이 빗나간 거 같네요.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상 가장 비판할만한 부분이 있다면, 인간성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수용인원 40만을 꺼내들었는데, 나중에 배 열어서 사람들 더 잔뜩 태워도 아무 문제 없더라는 점이 되겠죠…

    1. 수용인원 문제는 이 영화에서는 오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보다는 최근 이런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을 쇠뇌시키려는 노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노잉>도 같은 계열의 영화라고 볼 수 있겠죠.

      유사과학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관점을 주입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하나만 보신 것이 아닐까 싶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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