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침대』 – 박현욱 단편집

소설가 박현욱의 단편집이 새로 나왔다.
이 책은 2009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오면서 저자와의 만남에서 구입해온 책이다. 박현욱은 지금까지 총 3편의 장편소설 『동정없는 세상』, 『새는』, 『아내가 결혼했다』로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상당히 사랑받은 작가다.
『동정없는 세상』은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의 수상작으로 박현욱 작가의 작가 데뷔작이기도 하다. 제목이 거시기하지만…..ㅋㅋㅋㅋ (언젠가 이 작품도 독후감을 써서 올려보도록 하겠다.)
『새는』은 간결하고 깔끔한 첫사랑 이야기(?)의 소설로, 난 이 소설에서 학습과정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EBS 문학산책 선정도서이기도 하다. 군더더기 없는 소설의 구성… 내가 소설을 거의 안 읽지만, 요즘에 만나긴 힘든 소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보통 문학상 수상작은 크게 두 종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문학적 가치가 높아 길이길이 남을 작품이거나 시범적인 형식인 작품이다. 전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는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지기 마련이다.내가 박현욱 작가를 좋아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전자는 아니고 후자라고 생각한다. 축구와 소설의 절묘한 조화라고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일반적으로 보기엔 소설과 관련이 없는 축구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든 면이 크다.

이 책 『그 여자의 침대』는 어떤 책인가?

제목    : 『그 여자의 침대』
글쓴이 : 박현욱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08년 11월 03일
ISBN   : 978-89-546-0703-2 03810
가격/쪽수 : 1,0000원/254쪽

단편집인 이 책은 총 8편의 단편집이 실려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문학동네, 문학사상, 현대문학, 한국문학에 발표됐던 단편들이다. 시간배경과 주인공의 성별, 나이, 상황이 모두 다르지만 박현욱 작가의 글쓰기 특성은 모두 똑같이 묻어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왜 지금 이래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다른 작가의 소설이었다면 과거 회상신을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습관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한다면 박현욱의 글쓰기의 중요한 특징이란 생각을 한다. 결국 박현욱 작가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된 배경 등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그리고 행동에 따라서 심리 또한 변한다.

띠지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묶은 재미있는 시도를 생각해낸 편집자의 시도가 돋보였다. 음… 하지만 책의 절단상태라거나 제본상태, 인쇄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다. 인쇄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벼운 종이를 쓴 것이 눈에 띈다. 『새는』보다 훨씬 두껍지만 더 가볍다는 것이 특징이다.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소설 <그 여자의 침대>는 어떤 익숙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것에 대해서 일종의 심리적 거리감을 쉽게 갖는 여자는 이미 고물이 되버린 침대를 대신해 새로 산 침대에 대해서도 심적으로 거리감을 갖고 대한다. 기존의 익숙함(남자)이 그 거리감을 해소해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 여자는 과감히 제품을 판매처에서 교환하는 결단성을 보인다. 이 여자는 낯선 침대를 새 침대로 바꿈으로서 똑같이 낯설지만 더 나은 것을 선택했다는 위안을 얻는 것이다. 박현욱 작가는 침대를 공간으로 표현하려 했다지만, 내가 읽은 소설에선 침대는 낯설음의 심리적 상징일 뿐이었다. 만약 이 여자가 슈퍼싱글 침대를 먼저 구입했더라면 반드시 더블침대로 교환했어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뭐 나처럼 침대를 안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해하기 힘든 면이긴 하지만..^^) 2002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제목을 책에도 사용했을만큼 8편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좋다.

두번째 단편인 <벽>은 젊은 남녀가 대화를 나누듯이 쓰여진 2007년 소설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정반대의 취향을 갖고 있는 중년 남녀의 대화다. 이들이 왜 대화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성이 어떤 과거를 상상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남성의 과거 회상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부족을 주변사람들의 탓으로 떠넘기는 심리적인 묘사 또한 잊지 않는다. 이 소설은 문장력은 가장 좋은 것 같지만 읽기는 힘든 소설이었다.

외로울 때 전화를 걸면 받아준다는 작품속의 어떤 서비스의 이름인 <생명의 전화>는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바닥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음이 허해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른다는 한 등장인물 파니. 붕 떠서 어디론가 날아가지 않으려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 소설이 그렇게 전개되야 하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하긴 힘들다. 2008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다.

정말 특이한 소제를 잡은 2006년작 <이무기>는 한국기원의 연구원생 이야기다. 연구원생 강이 처음 바둑을 접하게 되는 순간부터 프로 입단을 위한 마지막 대국에 이르기까지 짧고 빠르게 훑는다. 결국 이 소설에서 하고싶은 말은 진정한 프로가 되는 길(매우 좁은 관문을 뚫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하고자하는 욕구라는 말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재미있는 말 한 가지가 나온다.

나름대로 9급 바둑을 두는 즐거움이 있고 5급 바둑을 두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9급 바둑을 두는 사람은 5급 바둑을 두는 즐거움을 모른다. 즐거움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9급 바둑은 5급 바둑을 이해할 수도 없다. 다른 분야라면 일류 선수가 아니어도 시합을 해설하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바둑에서는 그럴 수 없다. 프로의 바둑을 프로의 해설 없이 아마추어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땅 위에서는 천상의 바둑을 볼 수 없다. – 116쪽

때때로 이런 분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재미가 없었다. -_-;;;
이 소설에는 한 가지 오류가 등장한다. 집계산에 관계된 것인데 읽는 분들이 직접 찾아보면 재미있을듯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이거 설명하려면 완전히 골치아픈 이산수학을 따져야 한다.)

연체동물을 떠올리게 한 다섯 번째 작품의 제목은 <연체>다. 연체의 정체는 요금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기억력이 나빠 연체를 밥먹듯이 하는 상습연체자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기억력이 나빠서 공부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렇게저렇게 해서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인 주인공은 누구나 다 예상하겠지만 순수과목(철학)의 시간강사다. 배경설정을 이렇게 해놓고 생각하면 그 뒤 이야기는 뻔해진다. 그것을 박현욱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건 내 이야기….. 박현욱 작가가 날 관찰하고서 그대로 작품으로 옮긴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해진다.) 기억력이 나쁜 사람으로서의 행동에 대해서 언젠가 글을 써보고 싶다. 2006년작이다.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해피버스데이>는 아련한 국민학교 때의 첫사랑을 그린 2007년작 소설이다. 박현욱 작가의 작품 중에 첫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새는』이 있다. 그러나 『새는』에서 주인공은 고등학생이고, 사랑보다는 주인공의 성장에 주제의 촛점이 맞춰져 있다. <해피버스데이>는 국민학생의 동성애적 심리상태에서의 이성 거부 현상에서 막 벗어나려 하는 주인공의 자가당착적인 면을 설명하고 있다.[footnote]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국민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진학하는 시기는 절묘하게 잡은 것 같다. 반면 요즘은 아이들이 이성에 대한 부분에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편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시기는 언제로 잡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닐까? 국민학교 시절에는 유교적인 “남녀칠세부동석”식 사상이 성을 알기 이전에 주입되면서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footnote] 요즘 아이들은 이 작품을 읽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 것 같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써보면 멋진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ㅎㅎㅎ

<링 마이 벨>은 7번째이자 가장 짧은 2004년 작품이다.뚜렷이 설명할 수 없고, 쓸 이야기도 없다. 그냥 멈출줄 모르는 사람의 욕망과 함께 부부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은 <그 사이>란 약간 기묘한 2005년작 작품이다. 이혼경력이 있는 남자주인공은 또다시 이혼의 위기에 처한다. 아무것도 몰라 이혼했던 초혼은 그렇다고 쳐도, 두 번째 결혼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이혼하게 되는 이유가 좀 황당하다. 손예진과 감우성이 나왔던 드라마 <연애시대>에서의 이혼 이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은 주인공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이유다. 아내는 그 이유를 들어 이혼하려고 한다. 만약 엄청난 매력이 주인공에게 있었거나 둘이 너무나도 사랑했었다면 또다시 이혼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됐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다시 말해서 내 생각에는 사랑 없는 결혼은 결혼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정도로 생각된다.


이렇게 총 여덟작품은 모두 좀 어두운 색체를 지닌다.
또 박현욱 작가의 장편들에 비해서 완성도와 재미는 덜하다. 아무래도 단편에서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못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단편소설을 써도 엉뚱한 작품이 되버리는 나와는 확연히 다른듯..ㅋ)

장편소설들로 큰 기대를 모은 박현욱의 팬이라면 이 단편집은 실망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단편집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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