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모모』(MOMO,1973)
비룡소 (비룡소 걸작선 013)/K. Thienemanns Verlag
미하엘 엔데(Micheal Ende) 지음 / 한미희 옮김
8500원 / 368쪽 / 양장본
ISBN 89-491-9002-8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두고 모든 사람들이 “언제 읽어도 그에 맞게 새로운 것을 느끼게 된다.”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 법정 스님도 『무소유』에서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음으로서 『어린왕자』를 칭찬하고 있다.
또 『어린왕자』는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고, 교훈을 다르게 느끼게 된다. 독자가 생각하는 수준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가 얼마 전에 어떤 책쓰기 모임에서 『어린왕자』와 같은 책 추천을 요청했고, 그래서 추천받은 책 중에 한 권이 『모모』였다. (아마도 『모모』의 저자 미하엘 엔데는 이런 책을 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전에 읽은 『끝없는 이야기』도 이런 방향으로 훌륭한 책이었다. 그 이외에 이 작가들의 많은 책들이 비슷한 이유로 추천되었다.)

『모모』의 주인공인 모모는 작은 아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보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로서 아마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인 것 같다. 소설 속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책의 처음 부분에서는 여유롭게 모모와 함께 시간보내기를 즐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점점 더 시간에 쫒기면서 바쁘게 살아간다. 왜 시간을 쫒기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예전에 어떤 유명한 분이 TV 강연에서 성공한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 성공한 친구는 유명한 변호사다. 얼마 전에 그 친구와 점심식사을 같이 먹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전화통화를 하면서 3 건의 사건을 처리하더라.”

그 분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가 찾아와 같이 점심을 먹는데도 일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성공한 인생일까?’

물론 그 친구가 유명해진 것도 맞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진 것도 확실하겠지만 그런 인생을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절약하려 하는 것이, 모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를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야 한다. 시간을 아끼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의 통찰을 위한 여지도 없애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 낭비된다. 아이들의 학습시간을 절약시켜주기 위해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면 결국 아이들은 공부방법을 잃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집중하면 회전 Pattern이 커져서 결국 꺼내 쓸 수 있는 돈도 제한될 것이다. 신기하게 이 이야기는 행복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끊임없이 쇄신하라.(Sharpen the saw)”


“창의력 있는 사원이 되라.”

이 모토는 한 때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모든 자사의 직원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상명하복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인 이 모토는 우리가 창의력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의력은 관찰, 추상화를 바탕으로 패턴인식을 한 후 이를 확장하여 유추, 변형, 통합하면서 발휘된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하려면 자기를 되돌아봐서 자아성찰을 먼저 해야 더 쉬운 길을 찾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관찰’, ‘추상화’를 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필요하고, 자아성찰이 이뤄지기 위해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도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조직에 있어 창의력을 조성하려면 각 단계별로 여유있는 사고방식이 기제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 『모모』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기 위해 돌아다니는 회색신사가 등장한다. 흑백 의상에 담배를 물고 검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회색신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부 성공학 서적을 몇 년 전부터 탐독하기 시작한 나는 이후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원의 시간을 소중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성공학 서적들은 직원들의 시간을 쪽쪽 짜내는 방법들을 나열해준다는 것이다.
즉 시간을 최대한 짜내 회사에 억매이게 하며, 자신이 시간적으로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들 속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들과 비교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경제적 부와 비교하면서 바쁘게만 사는 것을 타당화하려 든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회색신사가 되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점령해 나간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회색신사들에 익숙해져 사회적으로 상류층에 속하게 되어도, 때로는 본인들만의 일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데는 사회적 분위기, 때로는 사회제도 자체의 영향이 크다. 모든 학생을 시간만 나면 학원에 보내는 사회 풍토나 ‘방과후 학교‘를 만들어서 학생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제도가 그것이고, 이러한 분위기와 제도는 반대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내 아이는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도 당신들의 아이들보다 더 나은 결과(실적이나 성적의 우월함)를 얻고 있다’는 거짓말(소극적 쾌락주의)을 하도록 하여 불신의 사회를 조장하게 된다. 대입시험 결과를 발표할 때만 되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교과서만 공부했고, 하루에 일곱 시간은 꾸준히 잤으며·····’ 라는 인터뷰는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짜내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보면, 아니 그보단 투표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회색신사들의 전략이 얼마나 적절히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모모』에 나오는 이야기꾼 기기와 음식점 주인 니노는 바쁘다는 이야기와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기기는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발굴하지 못하고 니노는 손님들의 음식값을 계산하느라 모모와 대화하는 순간의 시간도 내지 못하고 손님들에게서 채근받는다.

더이상 자신의 의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옮겨본다.

(멋지고 젊은 이야기꾼 기기는 수천 년전의 거대하고 번화했던 도시의 폐허 속의 모모가 사는 원형경기장 근처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관광객들을 즐겁게 들려주곤 했다.)
기기가 귀부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자.
“존경하는 부인, 아름답고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붉은 왕’이라고 불리는 잔인한 폭군 마르크센티우스 코무누스는 일찍이 전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해도 사람들은 도무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마르크센티우스 코무누스는 노년에 이르러 미치광이가 되었지요. 부인들도 아시겠지만 옛날에는 그런 병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폭군이 미쳐 날뛰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지요. 마르크센티우스 코무누스는 기존의 세계는 차라리 내버려 두고, 아주 참신한 세계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와 똑같은 크기의 천체를 만들고, 그 위에 집과 나무와 산과 바다와 냇물과 강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지구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라고 명령했지요. 당시 지구에 살고 있는 전 인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엄한 명령에 못 이겨 이 엄청난 작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우선 거대한 천체를 놓을 받침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곳은 바로 그 받침대의 폐허입니다.
그 다음에 지구만한 크기의 거대하고 둥그런 천체를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천체가 완성되자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쏙 빼닮은 모형들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천체를 만드는 데는 아주 많은 재료가 필요했지요. 그런데 그 재료를 구할 데라고는 지구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체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만큼 지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지요.
글쎄,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옛 지구에 남아 있던 조약돌 하나까지 몽땅 옮겨 왔으니까요. 당연히 사람들도 몽땅 새로운 천체로 이사올 수밖에 없었지요. 옛 지구는 다 써 버렸거든요. 마르크센티우스 코무누스는 엄청난 공사를 벌인 보람도 없이 결국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라는 것을 알고는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보세요, 무너지긴 했지만 지금도 알아볼 수 있어요. 깔때기처럼 움푹 들어간 이곳은 옛 지구의 표면이 놓여 있던 토대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 온 예민한 노부인들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한 부인이 물었다.
“그러면 그 천체는 어디 있나요?”
기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그 위에 서 계시잖아요! 오늘날의 세계가 바로 새로운 천체예요.”
예민한 두 노부인은 기겁해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 버렸다. 기기는 하릴없이 챙모자를 내민 꼴이 되었다. – p.64~66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마도 “무엇인가 바꾸어 새로운 것으로 만들려 해도 결국 바뀐 세상은 원래의 세상과 동일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이 보는 관점(패러다임)을 바꾸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청소부 배포와 관광안내원 기기는 ‘지혜’와 ‘배려’를 상징하는 등장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또 다른 중심적 내용은 모모가 시간할아버지 호라 박사에게 갔을 때 등장한다. 시간이 오는 곳으로 갔을 때….. 별의 추가 흔들리면서 매 순간 떠오르는 꽃은 갓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다.(p.222) 이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직접 읽어보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ps.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오는 카시오페아(등에 말(글)이 떠오르는 거북이)의 정체는 끝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글 쓴 때 : 2009-04-29 05:27

2 thoughts on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1. 핑백: Han's Think
  2. 이제서야 블로그와보네요 ^^ ; 정말 트랙백이 보내졋네요 ^^;
    실은 제가 인팍직원이라 다시 말씀드립니다. 출처만 적어주시면 공개해도 무관합니다. 링크까지 걸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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