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은, 하루살이류처럼 동정이 거의 안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동정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거미는 보통 곤충보다 동정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동정하려면 현미경으로 암컷 생식기나 수컷 교접기를 봐야 한다. 개체변이가 워낙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색깔은 동정키로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소한 여러 방향에서 잘 찍은 접사 사진 정도는 있어야 몸의 특징을 살펴 동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맨눈으로 봤을 때 비슷해 보이는 점이나 생물학자나 할만한 현미경으로 살펴봐야 알 수 있는 생식기의 차이 같은 점은 다루지 않고, 세부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데도 구분하기 힘든 경우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당부해두자. 동정을 위한 사진촬영은 매우 따분하고 힘들다. 결과물도 틀에 박힌 모습밖에 안 찍힌다. 따라서 동정은 부가적인 일로 치고, 그냥 사진촬영을 즐기기를 바란다. 또 이 글은 내가 지난 1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경험이다. 거미 동정은 많은 공부와 연구를 통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분은 김주필 박사님이 운영하시는 거미박물관에 가서 배우자.(배우는 과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미 동정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아래에 나열한 것이 그것이다. 우선 이걸 알고서 접근하면 거미 동정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 색깔 변이
거미는 대부분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꽃게거미 같은 일부 거미는 몇 일 지나면 배의 색깔을 주변과 똑같이 바꿀 수 있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을 때 그에 맞춰 색깔을 조금씩 바꾸는 거미도 많다. 그래서 같은 종의 거미라고 하더라도 채집하는 장소에 따라서 보편적으로 색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미 종을 색깔로 구분하기 힘든 이유는 환경에 따른 변화보다는 단순한 개체변이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보통 도감에서 어떤 색깔이 어느 부위에 나타난다고 했을 때, 그 색깔이 나타난 부위는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색깔이 완전히 없을 수도 있다. (도감에서 표현한 색깔은 껍질 색깔이므로, 털까지 함께 보이는 보통 사진과 다른 경우가 많다.) 더 웃긴 건, 몸 전체에서 한 색깔이 완전히 소실되거나 반전된 경우다. 정말 무수한 변이가 있으므로, 색깔을 고려해서 도감에서 한번 찾아보고, 해당하는 모습이 없을 경우에는 색깔을 완전히 무시한 상태로 동정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거미에게 나타난 변이가 한 지역의 우점종일 수 있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만 관찰한다면 그 거미의 다른 변이형을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 배 크기의 변화
보통 동물에서는 머리나 가슴과 배의 크기 비율은 전달하는 느낌 때문에 매우 중요한 동정 요소다. 곤충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거미는 배 껍질이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그래서 많이 먹었을 경우엔 배가 머리가슴보다 더 컸다가 굶으면 점차 쪼그라들어서 머리가슴보다 훨씬 작아지기도 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느낌은 그냥 참고할 수 있을 뿐, 명확한 특징이 되지는 못한다. - 종간 유사성
거미는 과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종은 매우 많다. 그래서인지 같은 과 안에서의 종들은 비슷하게 생긴 경우가 많다. - 몸의 크기와 관찰의 한계
거미를 자세히 보려고 맘먹은 사람들은 2~3 mm 정도 크기의 성숙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애접시거미 쪽이나 일부 깡충거미가 그렇다. 이렇게 작은 거미는 어떻게 동정해야 할까? 초접사 사진을 찍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동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미 종을 구분하려면 색깔 같은 건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아니, 동정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형태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고 곤충 생김새가 다들 많이 다른 것처럼 거미 생김새가 많이 다를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게 좋다. 물론 흑갈톱날애접시거미 수컷처럼 특별한 생김새를 갖는 거미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아주 미세한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거미를 동정할 때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절대적인 기준 : 암컷 생식기와 수컷 교접기 모양
모든 종은 생식기 모양을 관찰해야지만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신종으로 등록하려면 생식기를 관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표본을 채집해야 한다. - 눈의 배열, 크기, 색깔
눈의 배열과 크기와 색깔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못하지만, 과나 속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다. 따라서 세부종을 결정하기보다는 제일 먼저 정보에 접근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 실젖 모양
실젖도 거미 종에 따라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실젖은 생식기만큼이나 관찰이 어렵다. 그래서 도감에서도 실젖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실젖 사진을 갖고 있으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 다리에 난 털 (센털, 가시털, 빗털 등)
털, 특히 다리에 난 큰 털들은 종, 때로는 속 정도의 범주에서 명확한 특징이 된다. 그러므로 다리에 어떻게 털이 났는지 알 경우에는, 사소한 다른 특징을 추가로 한두 가지만 알 수만 있다면 동정이 아주 쉬워진다. 그러나 털은 초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 배갑, 가슴판, 배의 특징적 무늬
몸의 색깔 자체만으로는 동정의 기준이 되기 힘들다. 그러나 색깔의 경계 같은 특징은 동정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때 배갑과 배 윗면의 무늬보다 가슴판과 배 아랫쪽의 무늬가 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을 비교해보면 같은 속 안에서는 대체적으로 비슷비슷하다.) - 다리에 나타나는 원형 무늬
거미의 다리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거나 점이 있거나 원형 무늬가 있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거미는 몸의 색깔과 무늬에 변이를 보이면서도 다리에 나타나는 고리무늬는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으므로, 비슷한 종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 소리
대부분의 거미는 소리를 내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거미는 많지 않다. 내가 접했던 소리를 내는 거미는, 잠자는 사람이 이빨 가는 소리를 내는 한국깔떼기거미와 호루라기 소리를 내는 어떤 늑대거미 종 뿐이었다. (늑대거미는 아직 동정을 끝내지 못했다.) 반면 깡충거미의 경우엔 바닥에 배를 두드려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도 종에 따라 모두 다를 것으로 보인다. - 거미줄 모양
거미줄을 쳐 먹이를 잡는 정주성 거미는 전체 거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정주성 거미는 거미줄 모양이 대부분 동정에 중요한 기준이다.
대략적으로 동정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도감을 볼 때 이를 유념하면 동정이 훨씬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전문가들은 범게거미류를 동정하려면 앞두덩니를 봐야 하므로, 앞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리의 털이나 무늬 등으로도 구분이 가능했다. (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진을 찍기가 어려울 뿐이다.) 따라서 거미를 동정하려면 우선 다양한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지금부터는 동정이 어려운 종은 어떤 게 있는지와 그 종들의 동정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이 꼭지는 정보를 얻는 대로 계속 더할 것이므로, 단번에 완성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쓰여질 것이다.
1. 과 전체가 구분하기 힘든 경우
01. 유령거미
02. 염낭거미
03. 닷거미과와 늑대거미과
닷거미는 늑대거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차이점은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더 길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리 길이는 사진으로 알기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닷거미과는 닷거미과라는 걸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종을 구분하는 데 절반 정도는 동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닷거미과에 속하는 종 사이에서도 구분이 쉽지 않다.
정선거미나 너구리거미 같은 경우엔 늑대거미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변이가 크지 않아 동정이 쉽다.
04. 잔나비거미
05. 티끌거미
2. 변이가 심한 종
01. 황닷거미
황닷거미는 물가에서 숲속 나무 위까지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관찰장소가 황닷거미 동정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사는 곳에 따라서 모습이 매우 다르게 변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황닷거미 표현형만 쉰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표현형도 있지만, 늑대거미나 다른 닷거미와 아주 유사한 경우도 있다.
02. 말꼬마거미
동정하다가 맨붕이 오게 만든 대표적인 거미종이다. 말꼬마거미는 종꼬마거미나 큰종꼬마거미(왜종꼬마거미)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아직 이들 종 사이에 확실하게 나타나는 동정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03. 어리별늑대거미
어리별늑대거미를 비롯한 몇몇 종은 색체변이와 함께 가슴판에 세로로 나 있는 무늬에서 확연한 변이를 보인다. 이 경우는 동정이 매우 힘들어서 다리털을 봐야만 한다.
3. 구분이 힘든 거미 비교
01. 닻표늪서성거미와 아기늪서성거미
이 두 종은 몸 생김새가 유별나기 때문에 서성거미속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변이가 상당하고, 몸의 크기나 생김새도 거의 같아서 구분이 힘들다. 따라서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은 동정을 정확히 한 경우가 드물었고, 대부분은 그냥 ‘서성거미’로 동정을 끝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절대적인 차이는 눈 배열의 차이와 가슴판의 홈 차이였다.
02. 황닷거미와 늑대거미 중 어리별늑대거미
03. 어리별늑대거미와 여러 늑대거미(별늑대거미, 가시늑대거미 등)
04. 네온깡충거미, 부리네온깡충거미, 꼬마금오깡충거미, 검정이마번개깡충거미, 검은머리번개깡충거미
05. 줄무늬해님깡충거미와 우수리해님깡충거미
06. 암흰깡충거미♂와 검은날개무늬깡충거미♂
07. 말꼬마거미, 담갈꼬마거미, 무릎꼬마거미, 종꼬마거미, 큰종꼬마거미(왜종꼬마거미)
08. 산짜애왕거미와 넉점박이꼬마거미
09. 지이어리왕거미와 아기지이어리왕거미
이 두 종은 변이가 워낙 심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몸 크기가 꽤 차이 나서, 직접 봤다면 동정이 쉽다. 그러나 사진만 볼 때나 미성숙 개체일 경우에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동정이 어렵다. 이때는 실젖을 보면 동정이 된다.
10. 애접시거미과와 풀거미과 애거미
몸 색깔과 체형이 매우 비슷하다. 배 끝에 있는 실젓을 살펴보면 쉽게 구분이 된다.
뭔가 많다면 풀거미! 말끔하게 끝난다면 애접시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