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리즈0] 배추의 월동준비

[겨울시리즈0]

배추의 월동준비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집에 배추를 심는 날이었습니다. 배추를 옮겨심는 때는 9월 초~중순인데 이보다 빠르면 진딧물에 의해서 바이러스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배추를 밭에다 심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아주 작은 배추들은 심지 않고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살다보니 배추가 어떻게 성장하는 것인지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는데, 작은 배추들은 어떻게 크는지 살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허락을 받아서 작은 거 하나(그래봤자 버려질 것!)를 갖다가 화단에 심었습니다.

화단과 밭의 차이는 거름 양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배추들과의 경쟁은 없겠지만 거름이 부족하여 성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따라서 밭의 배추들과는 다르게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대충 그린 것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
좋은 환경에서 자란 풍성한 배추의 경우는 이 그림처럼 성장합니다. 제일 왼쪽의 것은 9월 초~중순경에 막 모종을 이식한 상태를 말합니다. 차츰차츰 커가면서 우선 몸집을 만들고,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10월 초~중순경부터 속에 만들기 시작합니다. (속이란 것은 잎이 빽빽히 들어차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한 겹이 아니라 여러겹의 얇은 속옷을 입는 것처럼 배추는 수십 겹의 잎을 성장점 주변에 쌓아서 성장점이 얼어죽는 것을 방지합니다. 또한 배추는 많은 양분을 소모해서 배추 내에 체액을 진하게 합니다. 체액은 고분자 1개보다 저분자 여러 개가 있을 때 어는점이 더 낮아져서 월동에 유리하니까 체액에 양분을 분해해서 저장하는 것입니다. ^^
이런 방식으로 배추는 겨울에 월동을 합니다. 겉은 얼어죽은 배추잎으로…. 속은 높은 체액과 겹겹이 쌓인 잎으로…. 가장 중요한 성장점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작아서 속을 충분히 만들어 성장점을 보호하지 못하는 배추는 어떻게 겨울을 날가요???


이 그림도 물론 제가 대충 그린 겁니다. 빈약해 보이죠? 최소한 위의 풍성한 배추의 모습보다는 빈양해 보여야 합니다. ^^; ㅎㅎㅎㅎ (지금 강요중!!)
9월 초~중순경에 이식을 시작한 배추가 환경이 빈약하여 충분히 성장하지 못해도 반응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우선 생장점을 중심으로 10월 중순경까지 둥근 돔 형태의 잎 구조물을 형성시킵니다. 그리고 체액의 농도를 증가시켜 추위를 방비하게 됩니다. 대신 추위를 막을만큼 충분한 잎이 없기 때문에 그 공간을 공기로 남겨둡니다. 마치 속이 꽉 찬 옷보다 가운데 공기가 많이 들어간 오리털 파카처럼….
결국 배추의 형태는 물방울 위에 물거품이 생기듯이 땅 위에 둥근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추위가 닥치면 이 부분은 모두 죽습니다. 뿌리와 새순만이 살아남아서 다음해 봄의 따뜻한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

제가 어렸을 때 화단에 심었던 배추는 결국 봄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겨울에 궁금해서 위를 걷어보았더니 보온효과가 파괴됐는지 그때까지 살아있던 새순이 다음날 얼어 죽었더군요. ^^; (배추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걸 얼려버렸으니…TT )
결국 제가 배추 하나를 화단에 심었다가 희생한 댓가는 나의 생생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이들이 쓸모없는 짓거리를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쓸모없는 짓거리”…..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글 쓴 날 : 200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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