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다소 넓고 어려워 도저히 손댈 수 없을 것같은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글을 쓰려고 생각해왔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주제넘게 글을 쓰려고 생각한 이유는 학생들의 과학 공부방법과 선생들의 교수방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더 심각하게 하게 됐기 때문이다. (과연 저 주제로 글을 끝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오늘 새벽에 꼬깔 님의 블로그에 들렸다가 Frey 님의 블로그에서 지구과학II를 없애려 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내용인 즉슨…

이 내용이 새로 바꾸려는 교과부의 교육안과 그에 대응하여 한국지구과학회에서 내놓은 건의안이다. 현재 다음 아고라에서 청원 투표도 하고 있다.
당장 쓰이지 않더라도 필요한 기초과목
과학 과목은 당장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지만 알아두면 좋을만한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과편성은 공통과학, 물리 I, 물리 II, 화학 I, 화학 II, 생물 I, 생물 II, 지구과학 I, 지구과학 II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교과목들은 각각이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일반적으로 한 과학과목을 잘 하는 학생들은 큰 어려움 없이 다른 과목을 잘 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는 모든 과학과목을 공부하는 방법이 매우 유사하며 각 과목들이 다른 과목들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물리는 가장 수학에 많이 의존하는 이론적인 과목이고, 화학은 각각의 원소들의 분류와 특성을 따지는 이론과 실험의 중간적인 과목이며, 생물은 암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나같은 임기력이 나쁜 학생에겐 정망적이지만) 다른 과학과목과는 살짝 동떨어진 과목이며, 지구과학은 거대규모의 통찰을 필요로 하는 감각적인 과목이라는 것이 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각각 과목의 차이는 80% 정도의 공통점 위에 나타나는 적은 부분의 문제일 뿐이다.
고등학교 과학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실상 우리가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필요없는 지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과학을 알면 하나를 보고도 둘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적분학을 공부해두면 증권투자에 유리해진다는 것처럼,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던 아니면 직업 없이 생활하건 과학은 다양한 생각을 할 줄 알게 만들어준다. 다양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사회구성원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회 전체로는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뜻하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질이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상식 측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은 한 분야만을 알아서는 별로 실용성이 없다. 과학적 발견과 패러다임의 변화는 여러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지구과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선 지구과학과 관련된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극히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과학을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지구과학은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의 결합인 학문이며 매우 중요한 학문이기도 하다. 물리, 화학, 생물을 제외한 모든 분야의 자연과학을 합쳐 지구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깝다. 지구과학의 중요성은….. 예를 들어 5월 말에 발생한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지구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니 각종 지하자원 개발이나 지진 등에 안전한 건물을 건축하는 것 등이다. 지진에 안전한 건물을 건축할 때는 물리학, 건축학 등의 지식도 필요하지만, 건물이 건축될 지질에 대한 정보, 단층대 등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꼭 이런 실례뿐만 아니라 지구과학은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많다. 물리, 화학, 생물에 중요한 점들이 많이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처럼…… 지구과학도 눈에 직접 보이지 많은 중요한 점들이 있다.
왜 지구과학을 없애려 하는가?
우선 과학에 기술가정을 넣는 것 자체가 아무런 생각없는 사람들이 미래 교육과정 예시안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문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술가정은 과학과는 많이 동떨어진 과목이다. 이런 과목을 과학과목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단순하게 기술가정 과목을 수능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1 반면 지구과학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지구과학에서 배우는 내용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과학에서 배우는 것들(주로 천체?)부터 시작해서 과학을 접하게 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구과학이 없다면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는 지금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다. 지구과학, 특히 지질학은 자연과학의 효시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연과학은 지구과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교육을 개편하려면 모든 과목을 다 듣도록 만들어라!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경시대회와 과학고로 대표되는 특목고다. 경시대회에 대한 교육열풍이 일어 과외와 관련된 사교육이 조장되고 있다. 과학고도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 사교육을 조장하게 만드는가? 어떤 한 과목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앞에서 과학은 한 과목을 잘 하는 학생은 다른 분야도 어느정도는 잘 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재 경시대회는 단 한 과목만 보기 때문에 사교육에 의한 선행학습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된다. (물론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 학생의 경우에….) 하지만 과학은 이런 학생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폭넓게 이해하는 학생이 차후 수준이 높아져 전공을 선택하고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과학고 진학의 문제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내신과 경시대회 입상, 입학시험을 치루는 과정을 거치는데, 내신과 경시대회 입상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이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거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 과학고 학생 중에 학원 등에 거의 다니지 않고 입학한 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과학고가 사교육을 얼마나 조장하는지 알게 된다. (대략 1년에 1000명이 조금 넘는 과학고 입학생 중에 1~2명 정도만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은 학생들이라 생각된다.) 또 과학고 입학생들을 중학교 전과목을 골고루 잘 하는 학생으로 뽑는 것은 전혀 부질없는 짓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전교 1등을 한다고 과학을 잘 공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두번째는 현장학교의 파행적 수업운영이다. 현재 고3인 우리 조카의 경우 화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했다. 과학과목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화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한 조합이 참 묘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조카가 화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하는 것은 학교에서 화학과 지구과학만을 수업하기 때문이다. 아주 간혹 학생이 혼자 공부하여 안 가르치는 과목을 시험보기도 하지만….. 암튼 이런 수업방식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과학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대부분 생물과 지구과학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적당한 점수를 받기에 생물과 지구과학이 좋기 때문이다. 반면 물리와 화학을 선택하는 학생의 수도 꽤 많다.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한다면 수능에서 만점을 받기엔 생물과 지구과학보다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물리와 생물, 화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하는 학생은 소수다. 이 과목들은 공통된 부분과 연계가 적어서 공부를 상대적으로 많이 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좀 있기 때문이다.
과학을 쉽게 공부하기 위한 방법은 4과목을 모두 공부하는 것이다. 과학을 잘 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4과목 모두 수능을 보게 해야 한다. 선택한 과목은 점수의 차이(문제수의 차이) 정도만 영향을 미쳐야지 완전히 배재되는 과목이 생기게 해선 안 된다. 이는 수학을 선택과목으로 분리했다가 망한 지금의 교육제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분리해서 전공처럼 배우는 것은 상식적인 고등학교 과학을 모두 배운 뒤에나 취해야 할 과정이라 생각된다.
결론
내가 철이 든 뒤에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바뀌는 것을 곰곰히 살펴보면 아이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완전히 모르모트로 여기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것 같다. 그러한 작업은 마치 3년 또는 5년 앞을 내다보고 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현들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백 년을 고려해서 제도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철학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교과부가 아쉽다.
우리나라 교과부엔 교육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 관계자의 친인척이 기술가정 과목 선생일까? ㅋㅋ 이거 부정부패가 하도 많은 나라에서 살다보니 음모론 생성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는듯..ㅜㅜ ↩︎
흠, 쓰던 글을 언능 마무리 해서 트랙백 해야 하겠군요.
도대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콧구멍으로 듣는지orz
음…트랙백을 하려고 봤더니 뭔가 아웃오프핀트인 글을 트랙백하려고 했군요. 뭐…관대하실거라 보고 그냥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좀 긴 글이네요. 언젠가 시간 내서 꼼꼼히 읽어볼게요. 심도있는 글 같아서 그냥 후루룩 읽고 넘기기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