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전쟁의 사회경제적 이해타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 괜찮은 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 뿐만 아니라, 헐리웃에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만든 영화조차 제대로 만든 영화가 보이질 않는다. 내가 전쟁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본 영화 중에 전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고작 [굿모닝 베트남] 정도가 ….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고, 북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차상률 이야기와 있을 법한 소설을 섞어 만들어졌다.

휴전협상은 진행된다는데, 휴전되지는 않는 환장할 시간! 한국전쟁 중의 애록고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애록고지….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의 이야기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지, 정상이 몇 m나 낮아졌다고 한다.

무능한 상관들의 삽질 때문에 수많은 전우가 죽어가고, 전사한 전우를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 휴전협정에 체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 막상 전달된 명령서는 12 시간 뒤 발효된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12 시간 안에 한 치라도 더 많이 빼앗으라는 소리…..

마지막 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날이 밝자 남북의 모든 군인은 격돌한다. 살아남을 것인가? 삶은 한 쪽에게만 남겨질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마지막 대화에서 나온다.

싸우는 이유가 뭔데?
내래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근데…… 너무 오래 돼서….. 잊어버렸어.
개새끼….

(무전기 : 정전협정 5 조 63 항에 따라 전 전선의 전투를 중지한다.)

즉….. 싸우는 이유도 없이 싸우는 것이 전쟁….이라는 걸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하나는 마지막 전투에 있다. 왜 휴전협정을 즉각 발효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끝난 이후의 사회를 위한 것이다. 어떤 전쟁이든 전쟁이 끝난 뒤엔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이 문제가 된다. 흔히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때문이다.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은 사실상 둘로 나뉜다. 쓰레기 또는 일반인…. 평화시에 평범했던 사람은 전투에 참여한 뒤에는 PTSD 때문에 쓰레기가 된다. 폭력적이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못하며, 특별한 일을 하지 못하는 쓰레기가 된다. (여기에서 내가 쓰레기라고 한 것은 이들이 진짜 쓰레기라는 말이 아니다. 쓰레기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 다룬 많은 영화가 있을 것이다.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전쟁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계속 살아간다. 바로 사이코패스다.

평상시보다 사회에 특별히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 싸이코패스야 그렇다고 해도, 쓰레기는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래서 막판에 총력전을 벌이게 만드는 것이다.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은 하나라도 더 죽으라고….. 그래서 막판에 양쪽 군인들이 얽혀서 백병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박격포로 그냥 폭격을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더 죽을수록 이후 사회는 더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에….. 이게 거지 같은 전쟁을 지시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으면서도 권력자들의 더러운 계산이다.

이런 연휴로….. 오히려 전쟁터에서 서로 총칼을 맞대고 싸우며 죽이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전투 중간에 나오는 기막힌 연인의 눈빛 교환 장면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별점은…… 5 점 만점에 3.5를 준다.
엄청난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던 장훈 씨가 김기덕 감독을 버리고 따로 나가서 감독으로 데뷔하고는, [고지전]을 찍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비몽] 촬영 사고 때문에 그렇잖아도 잠수 상태였던) 김기덕 감독은 [아리랑]이라는 자전적 영화를 만들 때까지 3 년 동안 스스로 혼자 격리된다. 사수를 버린 장훈 감독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사람들 말 듣고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장훈 조감독이 김기덕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조재현 배우의 부조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ps.
이 영화는… 리뷰를 쓰려고 한 이후 10 년 동안 리뷰를 못 썼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이제서야 리뷰를 썼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은 바뀐 게 없는데, 부대적인 이야기는 참 많이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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