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꽤 좋은 출판사 행성:B에서 『나도 잘 쓰고 싶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기념이벤트를 했다. 나는 이전에 이런 쪽의 책을 여러 권 읽었으나, 아직도 글쓰기가 한참 부족하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나와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벤트에 응모했다. 그리고 운 좋게 뽑혀 책을 받았다. 그렇지만, 책을 배송받자마자 여행을 떠나서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처음 펼쳤을 때, 글을 잘 쓰는 방법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았다. 그렇지만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국엔 잘 쓰도록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 독후감은 책의 특성상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 전반적으로 욕설에 가깝다. 그런데 그게 꽤 길다. 그러니까 꼭 독후감만 읽고 싶으시다면 ‘책을 살펴보는 말’로 바로 넘어가길 바란다.
1. 여는 말

이런 사람에게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
나도 잘 쓰고 싶다.
어렸을 때는 어휘만 풍부하고, 맞춤법만 잘 맞추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게 어휘력이 풍부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 년쯤 전에 적성검사를 하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언어능력이 10 점 만점에 5 점 정도인 다중지능검사 시험에서, 소설가의 평균 언어능력은 4 점 정도라는 것이다. 이 검사 자료를 그대로 믿는다면, 소설가는 보통 사람보다 언어능력이 안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소설을 쓸 때는 단어나 어구나 표현을 조금 더 아는 것보다 이야기를 잘 구성하고, 알고 있는 단어를 적확하게 쓰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글쓰기도 비슷하다. 그러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꼭 어휘력을 길러야 한다는 책은 버리는 게 좋다. 어휘야 평소 내가 쓰던 것만 잘 쓰면 되는 것이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몰라도 프로그램이나 편집자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 말이다. 물론 어휘를 많이 알면 글쓰기가 그만큼 더 유리한 건 분명히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글쟁이들이 어휘를 수집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휘를 많이 알아도, 그 뜻을 잘 모르면 어휘를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십 중 팔구는 쉽게 난독을 일이킨다. 말의 뜻을 정확히 모르니까 결과적으로 난독증을 일으키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실 최근 뿐만이 아니라 먼 과거에도, 또 먼 미래에도 역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 잘 쓸까?
어렵다…..!!
2. 책을 살펴보기에 앞서 하는 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뒤에는 거의 한 달 동안 이 책만 팠다.
특히 깊이 읽게 된 이유 중에는 클래지콰이 복컬 호란과의 맞춤법 논쟁(?)도 있었다. 호란은 페이스북에서 서로 친구를 맺고 있었는데, 이 여자도 이상하리만치 맞춤법에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은 맞춤법을 신이 내려주신 말씀[성전]인 것처럼 철저히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인지는 몇 가지 떡밥을 던지면 100% 검증이 된다. 호란에게는 ‘헤깔리다’ 떡밥(맞춤법 규정에는 ‘헷갈리다’나 ‘헛갈리다’를 표준어로 규정하고 있고, 대다수 국민이 쓰고 있는 ‘헤깔리다’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웃기지 않나?) 이 이외에도 ‘다르다/틀리다’ 떡밥, ‘바라다/바래다’ 떡밥 등이 있다. 예전에는 내 블로그의 제목에도 썼었던 ‘개발새발’ 떡밥도 던지곤 했는데, 이건 2011 년에 표준어로 채택되는 바람에 떡밥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다.)을 던져봤는데, 여지없었다. 호란은 내 주장이 신빙성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도중에 내 댓글을 모두 지웠다. (내가 말해주는 것보다 직접 국립국어원에 전화해서, 맞춤법에 대해 하나라도 물어보고 답변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게 그렇게 신빙성이 없어보였나??)

ps. 이 글을 쓴 뒤, 얼마 있다가 호란과 있던 일을 추가하자면….
이후에 한동안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호란이 국어병신체를 쓰는 사람들을 까는 포스트를 올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찬성하는 댓글을 달았는데, 또 그것에 토달기 시작했다. 결국 서로 차단하는 걸로 끝맺어졌다. (그리고 훨씬 나중에 그 글을 캡쳐하려고 찾아봤는데, 지웠더라….. 그리고 나에 대해 언급하는 듯한 글을 하나 남겨뒀다. 이 사람이 이해가 잘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의문이 명확히 정리됐다.
- “같은 단어를 여러 개로 표기한다면 사전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170 쪽)
- 국어사전은 왜 한 뜻을 갖는 낱말을 하나만 등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동의어란 말은 왜 있는가?
- 국어사전에 실을 낱말과 싣지 않을 낱말을 국어학자들이 임의로 선택해도 괜찮은 것인가?
- 국어사전에는 충분한 어휘가 올라있고, 올라있는 낱말은 모두 정확히 설명되어 있는가?
- 우리말은 충분히 연구돼 있는가?
우리말은 언중, 즉 우리나라 사람이 주체다. 국어사전은 언중이 쓰는 말, 즉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언중은 항상 변하므로, 국어사전은 여러 이유로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말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항상 연구하여 국어사전에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국어학자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언중에게 국어사전에 맞춰서 언어생활을 하라고 강제한다면, 이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KBS <마른 말 고운 말> 같은 방송이나, 호란 같은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도 갖고 있는지 주객이 전도되는 행태를 보이곤 한다. 이 책의 저자만 해도 그렇다.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거나, 사전에 안 나온 말을 찾으면 잘 적어두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막상 국어사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것을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그대로만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이거야 말로 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언중이 맞춤법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그에 앞서 맞춤법을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맞춤법이 충분히 잘 만들어져 있더라도,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변하는 것이니까, 맞춤법이 우리말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가 쓰는 맞춤법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확언한다. 그 이유 중 몇 가지를 아래의 우리말 특성에서 살펴보자.
우리말 맞춤법의 불합리한 몇 가지 예
- 시늉말(의성·의태어)에 맞춤법을 정해야 하는가?
- 다수의 국민이 쓰는 ‘이쁘다’, ‘바래다’ 같은 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보조용언과 본용언의 띄어쓰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사실상 ‘잘하다’와 ‘잘 하다’ 같은 경우 발음상 차이는 전혀 없는데도 띄어쓰기는 다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정한 게 최선인가? 똑같이 쓰고, 영어의 숙어 같은 개념으로 정리하는 게 더 낫지 않나? - ‘며칠’과 ‘몇일/몇 일’ 중에 어떤 게 맞는 말일까? ‘다르다’와 ‘틀리다’ 논쟁은 어떠한가?
- ‘독일어/프랑스 어’, ‘메밀밭/팥 밭’처럼 ‘-어/-말’이나 ‘-밭’ 같은 표현이 쓰인 말은 모두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띄어쓰기를 확인해야 하는가?(203 쪽)
사실 이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맞춤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의 글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남이 좀 틀린 표현이나 사투리를 썼을 때,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심지어 이 책 『나도 잘 쓰고 싶다』에서도 국어학자들조차 맞춤법을 모두 지킬 수 없다고 적지 않았나! 이런 거 생각하는 게 귀찮아지기 전에는, 글쓰기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 봤다. 근데 답을 못 찾았다. 그때까지 내가 한 생각은 이렇다.
글을 쓸 때 맞춤법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우리말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말 특성에 대해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내가 우리말에 대해 국어학자들만큼은 모르지만, 그래도 몇 년 동안 혼자서 숙고해서 이 정도의 우리말 특성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말의 특성
- 환경에 따라 뜻이 상당히 심하게 바뀐다.
- 용언(동사와 형용사)이 발달해 있고, 체언(명사)이 빈약하다.
- 어미, 조사, 보조용언에 따라 뜻이 매우 미세하게 바뀐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힘든 점)
- 어미와 시늉말(의성어·의태어)은 변화가 다양하고, 모음조화가 나타난다.
- 모든 것이 쉽게 생략된다. 특히 소유격 조사[토씨] ‘의’와 주어는 매우 빈번히 생략된다.
복수의 주어가 생략된 경우, 복수접미사 ‘들’이 다른 문장성분에 붙을 수 있다. -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에 소유격 조사가 붙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대신 ‘내’, ‘네’, ‘너희’, ‘저희’ 같은 낱말이 따로 있다. - 기존 단어들이 결합하여 합성어와 파생어가 쉽게 만들어진다.
- 어미나 조사가 축약된 형태로 쉽게 합쳐진다.
- 체언의 단·복수가 같다.
- 중국, 일본, 몽골, 미국에서 전해진 외래어가 아주 많다.
보통 교정교열을 볼 때, 이런 것을 기본으로 적용한 뒤에, 내용을 고려해서 글을 고친다. 말하자면, 위의 것들은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맞춤법은 이런 우리말 특징이 반영되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4 번의 시늉말이다.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던 ‘개골개골’ 울던, ‘깨굴깨굴’ 울던 다 자연스러운 우리말인데, 맞춤법은 오직 하나만 쓰라며 강제한다. 그 덕분에 시늉말 표준이 바뀌면 그에 해당하는 다른 말들도 모조리 바뀐다. 예를 들어 깡총거미/깡충거미 이름 문제가 있다. (우리말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시늉말은 하나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대표어’를 하나 정하긴 하되, 다른 표현도 모두 허용해야 한다.)
시늉말의 다른 재미있는 점은 같은 말을 반복 사용해서 시늉말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 번의 명사가 빈약한 것은 색깔을 뜻하는 우리말이 ‘검정’, ‘하양’, ‘노랑’, ‘빨강’, ‘파랑’밖에 없다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더 극단적인 경우로, 개화기 이전에는 모든 나비를 ‘하얀나비’, ‘노란나비’, ‘호랑나비’로 분류했다고 한다. (사실은 호랑나비가 아니라 ‘범나비’라고 했다. 이게 일제강점기 때에 범 대신 호랑이라는 잘못된 표현이 쓰이면서 우리말이 이상해졌다. 해방 이후에, 국어학자들이 고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맞춤법을 만들 의지가 없어서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북한에서는 범나비라고 부른다.)
7 번의 단어가 쉽게 결합된다는 특성을 이용해서 우리말이 발달한 용언과 기존 체언을 묶어 새로운 단어(또는 어구)를 계속 만들어 썼던 것이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는 ‘개나리’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예를 들어, 파란 색의 장미가 개발된다면, 외국에서는 새 이름[명사]을 하나 만들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푸른 장미’나 ‘파란 장미’ 정도로 부르면 끝이다.(이걸 붙여써도 된다.) 이렇게 해서 명사가 부족해도 언어생활에 별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9 번의 체언의 단수와 복수가 같다는 이야기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복수접미사 ‘들’이 쓰인 문장 대부분은, ‘들’을 지워도 뜻이 똑같다. 그런데도 ‘들’이 많이 쓰이는 것은 영어의 영향을 받은 번역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 중에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우리들’, ‘너희들’, ‘여러분들’ 같은 것이 있다.
현행 맞춤법 하에서는, 우리말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는 맞춤법을 파괴하는 법을 우선 배워야 하는 아주 황당한 아이러니를 겪어야 한다. 현실이 이러니, 맞춤법을 성전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우리말을 잘 쓰려는 사람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논쟁은 국어학자들의 실수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기왕 시작한 것, 내가 교정교열 할 때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것들 몇 가지도 살펴보자.
발음과 표기에 대한 특성
- 글은 대부분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
그러나 어미 등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는 말은, 뜻을 알기 쉽도록 변화 이전 형태를 밝혀 적는다. - ‘ㄹ’ 받침 뒤에 오는 ‘ㄱ’, ‘ㅈ’은 된소리로 소리난다. – 예) 할게요[할께요], 날자[날짜]
- ‘ㅅ, ㅈ, ㅊ ㅉ’을 초성으로 만난 중성 ‘ㅑ, ㅕ, ㅛ, ㅠ’는 ‘ㅏ, ㅓ, ㅗ, ㅜ’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예) 적지 않은 → 적쟎은 → 적잖은 (186 쪽) - 다른 단어[어절]끼리는 발음이 간섭을 일으키지 않는다.(그러나 빈번히 지켜지지 않음)
띄어쓰기에 대한 규정
- 단어와 단어 사이는 띄어쓴다.(조사만 앞 단어와 붙여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몇 가지 경우엔 붙여쓸 수 있다.- 한 글자로 된 단어가 연이어 올 경우엔 가독성을 고려하여 붙여쓸 수 있다.(실제로는 좀 더 긴 단어들도 붙여쓰곤 한다.)
- 뜻이 한 뭉치인 말 타래는 붙여쓸 수 있다.(이런 말 대부분은 맞춤법에 한 단어로 규정되어 있다.)
예) 그곳, 이자리, 접때, 요맘때, 그즈음 등 - 본용언과 보조용언은 붙여쓰는 걸 기본으로 하지만, 띄어쓸 수도 있다.
다만, 한 꼭지 안에서는 한 가지 방법만 쓴다.
- 단위는 항상 띄어쓴다.
다만, ˚, ‘, ” 같은 단위는 붙여쓴다고 따로 규정한다.(맞춤법이 아닌 국제표준용례의 의해서…) 그리고,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일 경우 붙여쓴다.
예) 일주일
예를 들어보자.
-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 있는 유명한 논쟁
‘틀리다’를 ‘다르다’의 뜻으로 쓴 기록은 조선 초기에도 있다. 현행 맞춤법에서 ‘틀리다’에 ‘다르다’의 뜻이 포함되지 못한 건, 처음 맞춤법을 만들 때 단순히 누락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고는 조선시대 기록을 오기라고 한다.ㅎ
2003 년에 KBS의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라는 장애인 캠페인이 방송되기 전까지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구분에 관심 가졌던 사람이나 국어학자는 거의 없었다.(물론 명백히 구분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어학자가 딱 한 명 있었다.)- ‘며칠/몇일/몇 일’은 많이 쓰이는 어휘이니만큼 좀 더 다양한 자료가 남아있는데, 개인적으로 이걸 추적해 보려고 했다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국어학자들이 머리 박터지게 싸우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몇 년’, ‘몇 달’, ‘몇 주’, ‘몇 요일’, ‘몇 시(간)’, ‘몇 분’, ‘몇 초’ 등과 통일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했을 때, ‘몇 일’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보인다. (이 말들은 1988 년 이전 맞춤법에서 ‘몇 일/며칠’로 나누어 쓰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 같은 측면에서 ‘헤깔리다/헷갈리다/헛갈리다’ 문제도 있다. 국어학자들은 왜 국민 대다수가 쓰는 ‘헤깔리다’만 국어사전에 싣지 않은 것일까?
- ‘바라다/바래다’ 문제도 있다. 사실상 혼용되던 두 단어를 ‘바라다’ 하나만 쓰고 ‘바래다’는 쓰지 말라는 건 병신이나 할 짓거리 아닌가? 더군다나 그렇게 쓰리고 하는 이유가 아주 웃기다. ‘바래다’는 햇볕에 색이 바뀐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낱말이니 ‘바라다’만 쓰라는 것이다. 그럼 ‘바라다’를 명사화시켜볼까? ‘바람’….. 이거 주장한 사람은 병신이 분명하다.ㅋㅋㅋ
- 보조용언의 띄어쓰기 문제
‘띄어쓰기/띄어 쓰다’와 ‘붙여 쓰기/붙여 쓰다’에 대한 붙여쓰기 변화에 대한 규정은 헤깔린다. 어미변화가 일어나면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걸 모두 맞춰 쓰려면 각 단어마다 최소 수십 개를 외워야 한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낱말마다, 경우마다 다른 걸 다 외워서 쓰라는 건가? 미친 소리이다. - 파생어와 합성어 문제
‘독일어/프랑스 어’, ‘메밀밭/팥 밭’ 등의 띄어쓰기는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는 띄어쓰기를 해서라도 국어사전에 맞추라고 한다. 그러니까 컴퓨터로 입력할 때 빨간 줄 안 생기게 만들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우리말은 쉽게 합성어와 파생어를 만든다.(우리말 특성 7 번 : 띄어쓰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띄어쓰기 규정을 정해놓고서 정확히 지키라는 것 자체가 우리말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마도 어떻게든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에 끼워맞춰야 한다는 관념이 작용해서 나타난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말 특성 때문에 어지간하면 붙여써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설명 안 해도 다들 아실 것으로 믿는다. - 우리말의 표준화와 획일화에 대한 문제 (161 쪽)
표준화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정하는 일을 의미한다. 언어는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개인에 따라서도 매우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남자주인공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 런던의 어떤 골목에 사는 지까지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사회 계층이나 직업, 성별, 종교적인 차이 등을 줄여 표준을 정하는 일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이에 비해 획일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만 쓰도록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화는 필요하지만(2020.09.12 추가 :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표준화도 그리 필요하지는 않다.) 획일화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준화와 획일화는 처음부터 양면성을 갖고 있다. 온갖 은어와 사투리까지 포함한다면 어찌보면 소통이 어지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아니, 이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 169 쪽을 보면, 우리말이 표준화되는 과정이 정리되어 있다. 우리말에 대한 연구는 1907 년 국문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고 나온다. 그런데 일제 영향력이 엄청나던 그때 한 작업은 제대로 됐을 리도 없고, 그 이후에 이 작업을 이어서 한 ‘조선어학회’는 친일단체였으니, 우리말 특징을 잘 정리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표준을 정해야 하므로 한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를 써야 한다’는 일제의 ‘내선일체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말을 연구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변화가 엄청나게 심한 우리말을, 변화가 없는 일본말 특징에 끼워맞추려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말 특징이 아닌 일본말 특징에 맞춰진 맞춤법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게 강제로 표준화를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한 내 추측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맞춤법 연구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돼 왔는데, 다른 곳의 연구자들이 논문을 써서 가져가면 한번 볼 가치도 없다면서 보기도 거부했다고 한다. 서울대는 친일파 양성소였던 ‘경성대학’이 그 뿌리였고, 서울대 국어학자들 대부분도 경성대학에서 연구하던 국어학자와 그들의 제자다.)
표준화와 획일화 사이에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말에는 무엇이 있을까?-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시늉말은 모두 이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더군다나 시늉말 중에 긴 것은 맞춤법 규정 때문에 우리말의 특징인 모음조화가 파괴되고 있다. ‘깡충깡충’이 좋은 예. (이걸 따라서 생물학회에서 ‘깡총거미’를 모두 ‘깡충거미’로 바꾼 삽질은 덤!) - ‘바라다/바래다’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바라다와 바래다가 섞여 쓰이고 있었는데, 국어학자들이 바라다만 쓰기로 했으니, 바래다는 쓰지 말라고 해서 안 쓰는 꼴이 아닌가? 비슷한 예로는 꼼수/꽁수가 있다. (영어는 ‘center/centre‘처럼 모두 쓰도록 인정하는 편이다.)
-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시늉말은 모두 이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이런 기본사항을 고려해서 아래의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읽어 줬으면 좋겠다.
3. 책을 살펴보는 말

[나도 잘 쓰고 싶다]
허재영 지음 / 행성:B / 13800 원
초판1쇄 발행 2013.01.10
ISBN 978-89-97132-26-3 13710
이 책은 총 아홉 장으로 구성돼 있다. 글 읽기에 대한 8 장과 문장 쓰기에 대한 9 장을 제외한 앞 일곱 장은 맞춤법과 외래어 규정 등의 표기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문장을 잘 쓰자는 일반적인 글쓰기용 책과는 다르게, 『문장강화』처럼 맞춤법을 잘 지키자는 취지가 실려있다. 인터넷에 자주 글을 쓰고, 특히 150 자로 제한된 글만 쓸 수 있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트위터 같은 SNS 서비스가 각광받는 시대이니만큼, 긴 글보다 맞춤법에 대해 설명하는 컨셉은 적절한 듯하다.
좋은 글은 화려한 문체나 그럴 듯한 인용과 예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이라는 점입니다.
– 315 쪽
이 문장이 이 책에 나온 이야기 중에 가장 공감가는 내용이다. 나는 여기에 ‘글은 한 글자라도 짧아야 읽기 좋다.’라는 말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라면, 요 두 문장만 명심해도 글쓰기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나는 7 년쯤 전에 이 두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앞에서 말씀드린 우리말의 특성 같은 것을 완전히 무시했고, 글쓰기용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 번역체나 부적절한 어휘가 빈번히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예를 조금만 살펴보자.
- 단어와 어휘가 부정확했다.
- 번역체가 빈번히 쓰였다.
책 전반에 걸쳐서 ‘나의’, ‘자신의’ 같은 번역체가 너무나 자주 쓰였다. 복수접미사 ‘들’을 너무 많이 쓴 것도 눈에 띈다. 70 쪽에는 수 관념이 발달하면서 ‘우리’와 ‘우리들’, ‘너희’와 ‘너희들’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실상 번역체일 뿐이다.
사실 다른 종류의 책이라면 무시하거나 번역체가 좀 있어서 아쉽다 정도로 평이 끝날 내용이지만,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책이니 만큼, 가장 큰 단점일 수밖에 없다. - 숫자와 단위를 붙여썼다.
수사든 숫자든 모두 단위와 띄어써야 하는데, 이걸 모두 붙여썼다. 사실은 붙여써도 된다는 맞춤법의 예외규정이 있다. 따라서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붙여써도 된다는 것이 주된 규정에서 예외규정으로 빠졌다는 건 시간이 지난 뒤에 사라질 규정이라는 뜻이고, 실제로도 띄어쓰는 게 더 나으니까 모조리 띄어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 ‘하다’의 쓰임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하다’는 목적어로 쓰이는 말이 앞에 올 경우에 붙여쓰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대화를 할'(70 쪽)의 경우 ‘대화할’로 줄여쓰기가 가능하고, 이렇게 줄여쓰는 걸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중국인 학생이 쓴 글을 교정한다면서 ‘이야기하면서’를 ‘이야기를 하면서’로 바꾼 것을 볼 수 있다.(53 쪽) 물론 ‘이야기하면서’는 여섯 글자라서 긴 편이니까 나누는 게 편할 수도 있지만, 둘 중 하나를 고집하는 건 기본적으로 바른 교정은 아니다.
- 번역체가 빈번히 쓰였다.
- 위험하고 불분명한 내용이 있다.
- 20 쪽 : 인간 언어의 특징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설명하고 있는 인간 언어의 특징은 고래 언어도 대부분 갖고 있다. 이건 이 책 원고가 완성된 뒤에 발표된 연구이니, 고쳐야 할 내용이라 적어놓고서, 넘어가자. - 22 쪽 : MBC 다큐멘터리, <말의 힘> 인용
두 유리병에 밥을 담아두고, 각각 ‘고맙습니다’와 ‘짜증나’라고 말하면, ‘고맙습니다’라고 했던 유리병에 든 밥은 누룩이 피고, ‘짜증나’라고 했던 유리병에 든 밥은 까맣게 썩어버렸다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사과학이다. 누룩은 혐기성, 까맣게 썩게 만드는 균은 호기성이니까, 특정한 균이 우연히 들어갔던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균들이 언제 병에 들어갔을까? 실험이 조작된 것일 듯하다. 유사과학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면 이런 꼭지를 넣으면 안 된다. - 33 쪽 : 유대인의 인사말은 ‘샬롬’
몇천 년 동안 전쟁 속에서 살아온 유대인은 인사로 평화라는 뜻의 ‘샬롬’이란 말을 쓴다는 내용은 어떤가? 유대인의 고난했던 삶에 동조하는 이 글에 대해서는 뭐라 할 생각이 없지만, 최소한 최근에 중동의 깡패국가가 된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는 넣기 거북한 표현이다. 유대인은 ‘평화’라고 인사하며 전쟁을 일삼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하는 민족 아닌가? - 177 쪽 : 나는 1987년 추운 겨울에 태어났다……
정보를 전달해야 할 자기소개에 감성적인 내용을 넣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틀린 이야기다. 사람은 모든 정보를 처리할 때, 감정적으로 결과를 정해놓고, 그 결과를 지지하기 위해 정보를 해석한다[조작한다]. 이는 같은 내용의 질문이라도 형태가 바뀌면 답도 바뀌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더 자세한 건 내가 이전에 썼던 글을 살펴보기 바란다. - 수능 문제 풀이 방법에 대한 내용도 문제가 크다.
지은이는 수험생이 문제를 먼저 읽고서 지문을 읽는 것을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지은이가 현실을 잘 몰랐기 때문에 한 말이다. 많은 교사·강사나 학생이 지문보다 문제를 먼저 읽는 건, 그런 방법으로 시험을 보는 게 점수가 더 잘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능에 나오는 문제들은 지문 전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 일부분을 정확히 이해하는 걸 더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제는 지문 전체를 보지 않아도 풀린다. 더군다나 해를 거듭할수록 시험에 제시되는 지문이 점점 길어져서, 지문 전체를 읽겠다고 달려드는 학생이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만약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수능 출제의원으로 들어가서, 지문 전체를 먼저 읽어 이해한 다음에 풀어야 하는 문제로만 출제해 주기 바란다. 나도, 문제를 먼저 읽으며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입시험을 준비하면서 정말 누군가가 지은이가 말하는 그런 문제를 주로 내 주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 북한의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 남한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내용(164 쪽)은 빼야할 내용이다. 기껏해야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이름 읽을 때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게 다른 점인데, 그게 중요한 기틀은 아니지 않나?
- 쓸데없다
많이 쓰여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한 묶음으로도 쓰이는 말들이 꽤 많다. (꼭 국어사전에 등재돼지 않았더라도, 띄어쓰기 규정 1.2 번 때문에 붙여쓸 수도 있다.) ‘쓸데없다’가 대표적인 경우이고(202 쪽), 아마 ‘다시한번’도 곧 그렇게 묶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쓸데없다’를 설명하면서 ‘쓸 데 있다’란 표현을 쓸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생각해보면 쓸 데 많다.
‘저 나무는 떼지 마라. 쓸 데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말(닭도리탕)에 들어 있는 ‘도리’가 일본어라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말의 ‘도리다’가 합쳐진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239 쪽)(이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도 중복시킨 표현이라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아직도 답을 찾기 어렵다.)
‘도리’가 우리말에서 온 것이라면 ‘도리다'(흔히 ‘도려내다’로 쓰임)란 말과 닭도리탕이 연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연관짖기는 매우 어렵다. 그보다는 ‘역전앞’처럼 외래어와 고유어를 중복시키는 것으로 보는 게 더 합당하다.- ‘왜냐하면 일부 전문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는 일상의 언어로 변화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 과연 그럴까? 개발자들 사이에서 쓰이던 ‘~향’, 게이머들 사이에서 쓰이는 ‘각’, 패션 관계자들이 쓰던 보그 병신체를 보면, 이 말에 찬성하기 힘들다. - 266 쪽 : ‘학여울’은 [ 항녀울]에 해당하는 ‘Hangnyeoul’로 적어야 합니다.
→ 이렇게 발음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나와 읽는 방법이 달라서 SNS에 물어봤는데, 이렇게 읽는 사람은 드물었다. - 313 쪽 : 글을 쓰는 과정은 읽는 과정과는 달리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 (글쓴이가 앞에서 하던 이야기와는 논조가 좀 틀려졌다.) 읽는 동안 수동적이거나, 행간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에 쓰기보다 쉽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제대로 읽으려면, 글쓴이만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 20 쪽 : 인간 언어의 특징
- 글쓰기에 문제가 좀 있었다.
- 접속사[접속부사]와 쉼표 사용에 약하다. 이런 거 약한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 137 쪽, 307 쪽 꼭지처럼 이 때문에 이야기가 엉뚱한 내용으로 갑자기 바뀌거나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 291 쪽 ‘물론 앞으로’로 시작하는 문장은 앞뒤 문장과 직접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므로 괄호를 쓰거나 주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 내용상 괄호를 넣거나 빼야 하지만, 그냥 써 놓은 경우가 많았다.
-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하고 튀는 부분이 있었다.
- 294 쪽 13 줄을 보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내용의 문장이 있다.
- 288 쪽 7 줄에 ‘있는데 일종의’ 사이에 쉼표를 쓰고,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 244 쪽 외래어 띄어쓰기에 대한 결론은 어디로 갔을까??
- 286 쪽 마지막 문장에서 갑자기 ‘문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주어가 등장해서 엉뚱한 결론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꼭지는 완전히 지워야 한다.
- 304, 307 쪽 전개에 점프가 있다.
- 비문이 쓰였다.
- 201 쪽에는 ‘~ 말로 쓰이기도 하고, ~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로 쓰고 있어서, 같은 표현이 아닌 걸 대등하게 나열하고 있다.
- ‘A는 A이다’ 형식의 비문이 많았다.
예를 하나만 소개하자.- 여기서 우리는 유능한 필자는 많이 알고 있는 필자가 아니라 적절하게 표현하는 필자라는 사실에 주지해야 합니다. 실제로 쓰기에 필요한 내용을 아무리 많이 생성할지라도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여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내용은 모두 쓸모없게 됩니다. 유능한 필자는 많이 알기보다는 아는 것 또는 조사한 것을 적절하게 버리고 적절하게 선택하여 쓸 수 있는 필자입니다. – 316 쪽
이 짧은 부분에서 ‘필자는 필자다’ 형식의 문장이 두 개나 있다. 더군다나 이 문장들은 뜻을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쉼표도 조금쯤 써야 좋을 것 같다. 이런 문장이 꽤 많이 보였다. - 심지어는 앞에서 가장 공감가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던 문장도 비문이다.
- 여기서 우리는 유능한 필자는 많이 알고 있는 필자가 아니라 적절하게 표현하는 필자라는 사실에 주지해야 합니다. 실제로 쓰기에 필요한 내용을 아무리 많이 생성할지라도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여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내용은 모두 쓸모없게 됩니다. 유능한 필자는 많이 알기보다는 아는 것 또는 조사한 것을 적절하게 버리고 적절하게 선택하여 쓸 수 있는 필자입니다. – 316 쪽
- 접속사[접속부사]와 쉼표 사용에 약하다. 이런 거 약한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 불분명한 어휘나 표현이 쓰인 곳이 많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84 쪽)는 피동 표현을 잘못 쓴 경우인가?
이때 쓰인 ‘되다’는 ‘(때나 시기가)오거나 이르다.’, ‘상태를 이르러 유지하게 하다'(출처 : 네이버사전)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지, 피동의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문으로 옳지 못하다. (근데 사실 저게 일본어 번역체다.) - ‘결코 운에 따라 좋은 글이 나쁜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312 쪽)
→ 결코 운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 비문법적인 문장을 가려내는 방법에 대한 꼭지(67 쪽)의 2, 3 번 예시가 안 좋았다.
나는 돈이 없다.(88 쪽) - ‘영어에서는 쌍점을 쓰지 않는 대신 쌍반점을 씁니다.'(224 쪽)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 ‘》’에 대해 ‘엄밀히 말하면 이 표시는 문장부호로서 명칭조차 없는 셈입니다.’라고 적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겹꺾은괄호’라고 부른다.) - 독서란 무엇일까?
276 쪽을 보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하면서 정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근데 왜 지은이가 저 말을 정의라고 생각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같은 쪽에 ‘독자에 따라 구성하는 의미는 다릅니다.’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이는 잘못 쓰인 문장으로,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릅니다.’로 써야 한다. 재미있는 건 뒤이은 277 쪽에 ‘그러니 독서를 단순한 취미쯤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라는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이 갑툭튀 문장은 왜 취미로 여기면 안 되는 건지도 알 수 없고, 다른 부분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84 쪽)는 피동 표현을 잘못 쓴 경우인가?
그러나 이런 작은 문제들은 무시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동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1. 사이 시읏 문제
발음과 표기법에 대해서는 꽤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꽤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이 시읏 규정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는 못하겠다. 간단히 개요만 말하자면 이렇다.
예를 들어 이 책 189 쪽에는 [핸님]으로 발음되는 말을 ‘햇님’으로 쓸 것인지, ‘해님’으로 쓸 것인지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합성어냐 파생어냐에 따라서, 즉 ‘-님’이 접사냐 명사냐에 따라서 시읏이 들어갈 것인지 아닌지 결정된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논란이 될 수 있다. 사이 시읏이란 것에 대해 논하려면 우선 모든 사람들의 발음이 똑같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이 시읏과 관련된 발음은 개인적으로 쓰이는 것이라서 사람마다 상당히 따라 다르다. 덕분에 사이 시읏 규정은 발음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 암기에 따른 표기가 되어버린다. 이런 암기해야 할 부분을 최대한 줄여야 좋은 규칙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사이 시읏은 맞춤법에서 아예 빼버리는 게 낫다.
실제로 몇 달 동안 사이 시읏을 완전히 빼고 글을 써 보았는데, 낯선 느낌이 든다는 것만 빼면 문제는 전혀 없었다. 딱 하나, 반대로 맞춤법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수학의 ‘소수’ 만큼은 문제가 있었다. 소수점을 찍는 소수인지, 약수를 찾아봐야 하는 소수인지는 엄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립국어원이 생기기 전에 쓰던 ‘솟수’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결국 맞춤법을 이해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준법정신을 기르는 일과 같다는 주장(171 쪽)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런 문제가 없더라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2. 국어사전의 어휘 선택 문제
218 쪽에는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계시겠습니다’ 중에 앞의 것 하나만 국어사전에 싣기로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로 쓸 경우에, 높임 주체는 ‘말씀’이지 주어가 아니므로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주어 높임은 ‘말씀’을 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라는 표현도 별로 좋은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둘 다 거의 안 쓰이고,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정도가 쓰이고 있다.
결국 국어학자들이 선택한 어휘를 언중이 모두 버리고 더 나은 새 표현을 쓰게 되는 이런 예를 이 책에서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언중이 쓸 어휘를 언어학자가 인위적으로 선택하는 현행 맞춤법은 문제가 있다 정도로 결론지을 수 있었다.
3.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규칙
외래어 표기법은 그 언어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쓰는 게 기본 규칙이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의 세부 규칙은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문제가 아니라, 이 규정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생각됐다.(258~259 쪽)
- 외래어 표기법은 중국인 이름만, 현대 인물은 중국어 표기법으로 쓰고, 과거 인물은 한자를 우리식으로 읽어 표현한다고 예외로 처리하고 있다. 과거와 현대를 나누는 기준은 대략 갑오개혁(1895) 전후다. 그 결과는 어떨까?
“임진왜란은 이여송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이다.” 이런 표현이 돼 버린다. 이게 뭔가? ㅜㅜ
중국의 어떤 인물을 부르려면 그 사람의 연대기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ㄷㄷㄷㄷ 중국 사람 발음 문제가 심각한 것은, 50 년만 지나도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일본 사람 이름 등은 일본어사전만으로 발음을 알 수 없고, 그 사람을 만나봐야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외국어 표기법은 일본어에 적용할 수 없다. ([한글의 탄생] 참고) 따라서 이와 관련된 이 책 설명은 틀렸다.
- 바다, 섬, 강, 산 등의 지명을 부를 때, 우리말에는 붙여쓰고, 외래어에는 띄어써야 한다. 그러나 사전에 실려있는 외래어는 붙여쓰고, 안 실려있는 외래어는 띄어쓴다.
이게 합당한 말 같지만, 심각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모든 외래어를 사전에 등재하거나 빼기 전에는 모든 걸 다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외래어를 사전에 등재하는 것도, 빼는 것도, 외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 매우 심각한 문제는 왜 생겼을까? 그건 바로…. 외래어 표기법이 우리말 특성을 무시한 규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특성을 고려한다면, 지명 뿐만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라도 앞이나 뒤에 붙여써야 한다.
ps.2021.08.27 추가 : 근데 실제로 이렇게 써보니,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빈번히 생겼다. 모조리 띄어써야 한다. - 253 쪽의 ‘프레젠테이션’은 미국 발음(프리젠테이션)과 영국 발음(프레전테이션)의 혼합인건가? ㅎ
4.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빨리 읽고 핵심을 파악하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283 쪽)
이 말은 284 쪽에서 ‘일반적으로 독해능력의 핵심은 글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는 데 있습니다.’라고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글을 빨리 읽는 건 무척 위험하다. 빨리 읽으면, 기술해 놓은 표면적인 내용 자체는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행간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또, 사람의 기질에 따라 적절한 읽기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읽기 속도를 논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속독법이 엄청나게 보급됐을 것이다.
5. 국어사전 예찬
책 전체에서 국어사전을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너무 신봉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우리말 특징을 다룰 때 이야기했었다. 즉 우리가 흔히 틀리는 것 중 대부분은 국어사전이 문제인 것이지, 언중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자.
즉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비로소 국어를 올바르게 쓸 수 있습니다. (98 쪽)
이 말은 두 가지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첫째, 이 문장대로라면, 우리말과 국어사전의 선후관계가 바뀐다. 결국 국어사전이 우리말을 지배할 것이다. 둘째, ‘올바르게’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사투리나 은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닌데, 지은이는 그게 나쁘다고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다.
6. 띄어쓰기가 어려운 이유
한편, 우리말 띄어쓰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전 편찬을 위해서는 통계 조사가 필수적이나, 오늘날처럼 전산 처리 방식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전 편찬자들의 직관에 따라 기준이 설정된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직관과 사전에 실려 있는 것 사이에는 괴리감이 발생할 수 있다. (99 쪽)
그 결과, 사전마다 실려있는 어휘가 달랐고, 한 사전 안에서 같은 걸 다르게 적은 경우도 많았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져 사용되던 것을 1988 년에 정부에서 엉성하게 통합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전 편찬자를 만족시켜야 했으니까!) 이게 오늘날의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엉성한 부분적인 이유다.
국립국어원에 전화해서 이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답을 듣게 될까? 그거야 뻔하지 않은가? “이전 기관에서 넘겨받은 자료가 없어서 모르겠다”는 답을 들을 수밖에….. (내가 예전에 들었던 답변이다. 근데 국립국어원이 맞춤법을 다루는 첫 번째 기관이다. 이전 기관이라는 건 뭘까?)
7.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의 문제점
오늘날에는 한자어를 모두 한글로 써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습니다. (138 쪽)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은 유명하지만, 원래 뜻을 알던 사람이 아니면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엄밀히 따지자면 ‘악화’, ‘구축’은 일본식 한자어다.) 이와 비슷한 말은 많다. ‘최고’의 뜻은 무엇일까? 한자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진다. 이처럼 한자어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많은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문제다. 그래서 많은 한자어는 아직도 옆에 한문을 적어넣어야 뜻이 분명해진다. 한자어 사용을 줄여야 할 당연한 이유!
한자어를 한글로 써도 괜찮다고?
아무튼 이 책을 이렇게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표준법의 정의에 등장하는 ‘교양 있는 사람’은 혹시 국어학자만을 뜻하는 게 아닌가?? 만약 내게 이 책을 고치라고 이야기하면, 난 이 책 절반을 덜어낼 것이다.
4. 맺음말
〈보그〉로 대표되는 패션잡지를 보면 정체불명의 외래어와 외국어만으로 채워진 글을 볼 수 있다. 어떤 분이 이런 문체를 ‘보그 병신체’라고 부르기 시작하셨다. 알고 지내던 지인께서 내게 이런 말을 하나 만들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 그래서 고민 끝에 하나 만들었다. ‘국어책 병신체’…….. 어색하게 책을 읽는 사람에게 “국어책 읽냐?”라고 묻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크래지콰이 호란이나 이 책 저자 허재영 씨처럼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쓰는 말글을 앞으로 국어책 병신체로 부르기로 했다. 처음 생각했을 때와는 달리, 이 말은 쓰임새가 상당히 많을 것 같다.
마지막 고친 날 : 202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