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향을 가장 크게 준 열 권의 책

글 버전 : 2014.10.20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책을 빨리 읽는 축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후부터 책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고1 때, 전파과학사의 블루백문고와 현대과학신서를 읽으면서 그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글을 빨리 읽지 못한다.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대입 국어시험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글을 느리게 읽게 된 이유를 깨달은 건 마지막에 꼽아놓은 [문장강화]를 만나서였다.

교과서, 참고서 등을 빼고, 과학잡지도 빼면(학생과학, 과학동아, 월간과학 같은 잡지도 중2 때부터 대2 때까지 매달 한두 권씩 읽었으니까, 몇백 권은 되겠지만 빼자.),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은 모두 1500 권 정도다. 보통 사람보다는 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내가 책을 읽은 시간을 생각하면 많은 분량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읽는 속도가 느릴 뿐더러, 한 권에 서너 달씩 걸리는 비교적 어려운 책을 자주 읽었던 까닭이다. 근데 지금 목록을 만들면서 보니 읽은데 오래 걸린 책들이 전반적으로 기억에도 많이 남고, 영향도 많이 준 것 같다.

참고로, 이 목록의 책들은 내게 영향을 크게 준 것이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읽지 않고 그냥 버릴 수준의 책도 포함돼 있다.

1. 세종대왕(그림책)

난 언어능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나빠서발달이 느려서 한글을 늦게 깨우쳤던지라 3 학년 초까지 받아쓰기 나머지공부를 했다. 이 책도 많이 어려워서, 읽는데 몇 일 걸렸다. 심지어 한글을 잘 못 읽어서 수학과 자연 시험도 어려워 했었다. (점수가 낮았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2 학년 때 어머니가 이 책을 사다주셨다. 어머니가 직접 사다주신 유일한 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글을 깨우치는 게 너무 늦으니 어머니가 걱정하셔서 이 책을 사다 주셨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 의도대로 이 책을 읽은 뒤에 누나 책에까지 손대며 읽는 습관을 들였다. (이 책은 아직도 갖고 있다. 어머니가 사주신 책으로는 고등학교에 갖 입학했을 때, 어머니랑 서점에 같이 갔다가 계산해주신 [취미의 산야초]라는 책이 또 있기는 하다.)

어른이 된 다음에 이 책을 읽어보니, 지은이는 유교적 편견에 찌든 친일파인 게 분명했다. 이 지은이의 편견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를 지배했다. ㅜㅜ

2. 학생과학백과사전(전집)

국민학교 4 학년 때 부녀회에서 학급문고를 마련해 줬다. 한 반당 250 ~ 300 권 정도였다. 이 전집은 4 학년 학급문고에 끼어있었다. 이 전집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건 <공룡의 세계>였지만, 아이들이 계속 읽어서 끝끝내 내 순서가 찾아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다 읽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도중에 누가 집으로 훔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난 나머지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고, 과학이 내 적성에 맞다는 걸 처음 인지한 계기가 됐다.

3. 원소란 무엇인가 – 블루백문고

초등학교 때 몇백 권의 책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중학교 3 년 동안은 책과 멀어졌다. 집이 가난한데다가 시골이라서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3 년 내내, 학교가 끝나면 들판을 나가 돌아다녔다. 교과서, 참고서를 빼면 내가 그때 읽은 책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책을 안 읽긴 정말 안 읽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 학년 때에 강적을 만났다. 우리 반 반장이자 내 짝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보다 과학을 잘하는 또래를 거의 만나본 적이 없었다. 재미있게도 내가 다닌 조그마한 시골학교에 경쟁자가 몇 명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학교에서는 경쟁자를 찾기 힘들었다. 경시대회에서 만났던 몇 명 정도…..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짝이 나보다 과학을 잘했다. 내가 3 년 동안 책을 읽을 수 없어서 정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충격이 매우 컸고,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용돈은 거의 다 책값으로 나갔다.

이 책 [원소란 무엇인가]는 그때 내가 고른 첫 번째 과학책이었다.

지금 보면 고등학생이 과학을 처음 시작하기에 매우 적절한 책을 골랐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학교 앞에 있는 글벗서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3 년 동안 이 서점에서만 250 권 이상의 책과 70여 권의 잡지를 샀으니, 난 대단한 단골이었다….ㅋㅋㅋ

대학을 졸업한 뒤에 다시 읽어봤는데, 내용도 쉽고, 별거 아닌 내용의 책이었다. 그런데 오역과 오류가 참 많았다. 이 책이 나온 1980 년경에는 책을 내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였기에, 이런 엉터리 책도 출판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난 이 책으로 과학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반 반장은 안타깝게도 수학을 못 해서 문과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교육의 피해자가 됐다.)

4.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이 책으로 관념과학을 접하는 계기가 됐다. 원본은 독일어다. 평행우주론을 다룬 선지적인(?) 책이기도 하고, 당시 김희애가 나오던 드라마에 소재로 등장했었던 책이기도 하다. (당시엔 간접광고가 없었고, 더군다나 책은 광고하지도 않을 때였다. 그냥 주인공은 이런 어려운 책도 읽는다는 의미로 넣은 소재였을 듯 싶다.)

이후 [시간의 역사], [코스모스] 같은 책을 통해 관념과학을 계속 공부했다.

관념과학은 학교 공부와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하다.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관념과학은 많은 도움을 준다. 당연히 논술이나 대학별고사에서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고3 때 경시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던 건 이런 관념과학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국 난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5. 처음 3 분간 – 현대과학신서

처음 양자역학의 영역에 대해 알게 된 책이다. 앞 부분에는 소립자의 성질이나 양자역학이나 상대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주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 이야기되는 우주론의 인플레이션이나 우주배경복사에 남아있는 중력파 흔적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을 우선 이해하야 한다.)

그러나 석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앞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당연했던 거 같다. 양자역학, 특히 소립자론의 스핀이나 수명 같은 개념은 혼자서 끙끙거리며 고민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후 [별의 물리] 같은 걸 읽으면서 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책은 고등학교 물리와 화학 공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 근데 막상 지구과학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6. 어린왕자

초등학교 때 누구나 읽는 동화 [어린왕자]. 난 이걸 고등학교 2 학년 때 처음 읽었다. 그런데 소설이 너무 어려웠다. 이후 네 번쯤 다시 읽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걸 초등학생이 어떻게 읽는 걸까?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은 사람 중에는 결말이 비극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데미안]도 비슷하다. 이것도 고2 때 처음 읽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대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읽다가 포기했다. 성인에게는 맞지 않는 너무 유치한 내용이었다. [연금술사]처럼, 우연이 범벅된 소설이었다.

아무튼 이 책들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7. 변증법과 유물론

아마 이 책이 맞을 거 같다. (정확지 않다는 뜻이다.)

대학교 1 학년 때 교양 과목 교재로 산 책이 있었다. 선배가 그 책을 보고는 리포트를 쓰는데 필요하다며 빌려갔다. 문제는 몇 주 뒤에 선배가 그 책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선배는 미안하다며 대신 이 책을 줬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배 때문에 그 과목 기말고사를 망쳤다. 나름대로 답안지는 채웠지만, 교재도 없는데 시험을 잘 봤을 리가 있나. ㅜㅠ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은 본질과 실체에 대해 처음 고민하고 분석하게 만들었다. 이 고민은 내가 주변의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연관성을 찾고, 비판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 책은 내가 그렇게 변했던 때의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여기에 꼽아둔다.

8. 성공하는 사람들의 7 가지 습관

직장에 다녀서 항상 피곤을 몸에 달고 살다가 우연히 스티븐 코비 박사의 강연이 2003 년 10 월 초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예매를 했고, 어찌저찌 거기 갔다. (근무시간 외에 가는 건데, 직장 상사가 그걸 반대하더라. ㅎ) 강의를 들은 뒤에 나올 때에 이 책을 한 권씩 나눠줬다.

나는 원래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책은 전혀 안 읽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받았으니까, 강연 몇 일 뒤부터 매일 점심시간에 읽기 시작해서, 두어 달쯤 뒤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 읽었다. 1 년쯤 뒤에 직장을 그만뒀다. 만약 이 책을 안 읽었어도 직장을 때려치웠을까 궁금하다.

이 책을 읽은 이후, 2 년쯤은 처세술과 자기계발서에 빠져 살았다. 이전에는 과학책, 문학, 나머지 분야의 삼등분으로 나눠서 골고루 읽는 편이었는데, 이후에는 자기계발서를 절반 이상 비율로 읽었으니까! 그러다가 임자를 만났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만난 것이다. 이 책을 읽고는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책을 읽을 필요가 더이상 없다고 느꼈다. 이전의 독서패턴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최근 다시 읽으려고 펼쳐봤는데, 포기했다. 내용은 여전히 좋지만, 글쓰기가 엉망이더라…^^;

9. 생각의 지도

2007 ~ 2008 년 약 1 년 동안 혜민아빠 님의 주관으로 블로거포럼이라는 모임이 15 차례 진행됐다. 이 모임에서 책나눔이 진행되곤 했다. 책을 다른 사람과 돌려보고 싶은 사람은 한 권을 가져오고, 한 권을 가져가는 형식이었다. (물론 실제로 가져온 사람이 꼭 가져가는 건 아니었다.) 어느때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당시에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마침 다 읽어서 내놓았다. 그러나 다른 책을 집어올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책이 한 권 남았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 몇십 초 동안 서로 이 책을 바라보다가 내가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몇 분 뒤, 화장실을 다녀온 몇몇 분이 이 책을 많이 탐냈다. 좋다고 소문이 난 책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만났다.

이 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의 생각의 차이에 대해 논한다. 이 내용을 영국 BBC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방송됐다. 나중에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도 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방송발전기금이 생긴 뒤에 두 번 더 만들어졌다. (이 두 개는 그냥 돈 타먹으려고 급조한, 표절이라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살펴보니, 내가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교육 관련 글은 모두 동양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책과 [프레임]을 읽은 뒤, 내 생각방식이 약간 바뀌었고, 글의 성향도 조금 바뀌었다.

10. 문장강화

비록 글을 다루던 분들이 내 글은 이미 충분하다며 책을 빨리 쓰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내 글은 나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의 같은 것을 들어볼까 하고 한겨레 글쓰기 강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정보를 살펴보곤 했다. 그 무렵 이웃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고서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 설명한다. 많이 얇고 작다. 많은 정보를 짧은 글로 엮으려다보니 밀도가 너무 높았다. 이는 분명 이 책이 말하는 좋은 글쓰기와 배척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내 글이 뭐가 잘못된 건지를 깨달았다. 그만큼 이 책은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심지어 이 책과 병행해서 읽던 유명한 책의 글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졌다….. 이 글에서 언급한 책 중에도 다시 보려다가 글쓰기 문제로 읽기를 포기한 게 많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 가지 습관],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원소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다. 요즘 출판되는 과학책도 대부분 이 책들보다 글쓰기가 엉망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여러명이 번역해서 출판했지만, 여러 권을 구입해본 결과….. 그 모든 책이 글쓰기가 하나같이 정말 엉망이었다. 문장의 주술관계도 제대로 맞지 않고, 좋은 표현이나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전개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못 읽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 내가 썼던 글도 딱 그 수준이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의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이 공부가 아직도 안 끝나고 있지만…….ㅠㅠ 이공계 학생들이 좋은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엉망인 글만 계속 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만약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투덜거리면서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글을 쓰고, 책도 몇 권 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됐다면 쓰레기를…… 그리고 사진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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