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 어중간한….

두 대통령의 연설관을 지낸 강원국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던 경험을 책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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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메디치미디어

ISBN : 9788994612959

반양장/328 쪽

1`6000 원

나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다가, 내 생각(아이디어)이 잊혀지는 게 아까워서 컴퓨터로 하나하나 메모했다. 이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러나 컴퓨터 안에 써 놓은 글이 많아지자, 파일을 실수로 자꾸 지워먹었다. 이걸 막고자 2003 년 11 월부터 친구가 다니던 회사에서 만든 블로그 서비스(iblogyou.com)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5 년 동안 매해마다 글을 천 개씩 썼다.

이때 내가 썼던 글은 글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다. 글씨로 쓰여졌고, 읽을 수도 있었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기는 무척 힘들었다. 그걸 보면 글씨가 나열돼 있다고 글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글쓰기란 뭘까?

글쓰기를 위해서는 소재와 주제에 대한 지식과 지혜 뿐만이 아니라, 맞춤법과 띄어쓰기, 우리말의 특성, 읽는이의 특성, 사회 분위기, 문체 등을 알아야 한다. 웹에 쓰는 글이라면 커뮤니티 특성, 눈동자의 동선, 변형되는 판형에 따른 글자의 위치 변화, IT 전문가 영역인 SEO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걸 다 고려해야 한다. 트위터 같은 커뮤니티라면 글자수 제한에 따른 축약적 표현에 많이 신경써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걸 다 안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만의 글을 쓸 수는 있게 된다.

만약에 내가 글을 쓸 줄 모르던 옛날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영영 글을 쓸 용기를 못 냈거나, 뭐 그런 쓸데 없는 걸 따지고 있냐고 무시하며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앞에서 말했듯이 5 년 동안 5천여 편의 글을 블로그에 썼다. 이때까지 (책을 일주일에 한 권 이상씩 꾸준히 읽기는 했지만) 글쓰기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은 거의 없다. 근데 글을 워낙 많이 써서인지 글쓰기가 무엇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이후에 <좋은 문장 나쁜 문장> 같은 글쓰기책을 몇 권 읽었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진행한 ‘한 권의 책쓰기’ 같은 교육과정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조금밖에 안 됐다. (마인드맵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최고의 수확이랄까??)

이 책 <대통령의 글쓰기> 편집후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누군가 그랬다. 하루 세 시간씩 10년을 일하면 1만 시간. 그러면 책 쓸 자격이 있다고.’

나는 어땠나? 보통 글 하나 쓰는데,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면 몇 일, 글씨를 타이핑하고 수정한 시간만 단순히 따져도 대여섯 시간은 걸렸다. 글 하나를 두 시간씩 걸렸다고 쳐도, 글을 쓰는데 1만 시간은 넘은 샘이다. 그럼 책을 쓸 자격이 생긴 건가?? (물론 1만 시간 어쩌구 하는 이 말이 별 의미 없다는 걸 잘 안다.)

사실 그렇잖아도 글쓰기책이나 써볼까 하고 자료를 많이 모아두기는 했다. 그러나 블로그 글쓰기로 잔뼈가 굵어져서인지, 긴 글은 잘 안 써진다. 무의식적으로 블로그 포스팅에 적절한 A4용지 5~10 쪽 정도 분량에 스스로 맞춘다. 이 글 정도의 분량 말이다. (긴 글을 쓰는 것은 새로운 뭔가의 도전이 될 것 같으니, 언젠가 한번 해봐야겠다.)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 시절까지 8 년 동안 대통령 연설보좌관을 맡았던 강원국 씨가 썼다. 대통령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연설문을 쓰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책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는지 잘 느껴진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 각료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다는 걸 보면 특히 더 그렇다. 세종이 500 년 전에 한글을 반포한 취지를 다시 이 땅에 불러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이 책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블로그에 싸질러놓은 비중 없는 의견마저도 정책에 반영하셨으니, 아마 이런 대통령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이후 대통령이 된 이명박은 아마 글쓰기 관련 부서를 아예 없앴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이명박 이름으로 독립유공자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보고서, 날림으로 적힌 글쓰기에 깜짝 놀랐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서는 연설이라는 게 거의 자취를 감췄다. 연설 대신 수첩이라도 읽으면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수첩도 제대로 못 읽는다. 상왕이라도 있는 걸까? 지금 우리가 독제국가도 아니고, 절대왕정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하긴, 공대 나와서 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테니 씨부리면 다 되는 줄 아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글이 아닌 연설문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연설문은 말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므로, 글로 읽히기 위해 쓰이는 보통 문장과는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알면 이미 글쓰기 초보는 아닐 터! 초보를 위해 이에 대한 설명 등을 적어놨으면 좋았을 거 같다. 제목도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대통령의 말하기>가 내용에 더 잘 맞을 듯하다.

내용을 떠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자면, 잘못된 문장이나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책이 보통 책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글쓰기책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느껴진다. 교정교열이 두세 번은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표지나 본문 디자인 같은 나머지는 마음에 든다.

 

이제 결론짓자.

이 책은 초급책이라기엔 어려운데, 그렇다고 고급책이라고 하기엔 깊이가 너무 얕다. 글쓰기책이라기엔 의당 포함됐어야 할 내용이 많이 빠졌다. (물론 맞춤법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지은이와 출판사가 조율을 실패한 거 같다. 대통령들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게 주된 주제는 아니다. 강원국 씨 스스로의 글쓰기 철학 같은 것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여러모로 철학 같은 분야로 보기도 힘들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기에도 어중간한 책이다.

글쓰기를 배우시려는 분들께는 추천하지 못하겠다. 예전 민주정부 시절의 대통령이 그리워지면 한 번씩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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