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딕. 그 이름을 추억하며… too

한겨레 신문사에서 운영하던 DBDic이라는 사이트에 대해서 이전에도 한두 번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우연히 정타임 님의 글에서 DBDic에 대한 글을 읽고 저도 한번 아련한 옛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DBDic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방문한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2001 년 중순쯤이라는 것과…. 발견하고 묘한 매력에 즐겨찾기에 추가했다는 것이 기억에 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PC통신 천리안 하드웨어동호회(chc)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 년 전에 그만두고 나우누리 파워유저모임에서 활동하던 때라서 그곳의 존재는 곧 잊혀지게 됐었죠. ^^;
당시에는 영화 ftp를 돌리기도 하고 사용기 사이트에서도 활동하고 아무튼 바쁘던 때였습니다. ^^

그 뒤 2002 년 4 월 초 저에게 다시 DBDic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뭔가 어려운 내용을 질문할 꺼리가 있었는데 물을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발견했었다고 생각납니다. 그리곤 즐겨찾기에 추가하려다가 이전에 즐겨찾기 했던 것을 재차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주구장창 DBDic에 눌러앉아 활동을 하기 시작했었죠. ^^;


당시에 활동하던 아이디가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에 나지는 않지만 현재 이 블로그에서도 사용하는 ‘goldenbug’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엠파스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마 맞을겁니다. – 정확지 않습니다. -_-) 제가 주로 활동하던 곳이 컴퓨터와 과학 카테고리였습니다. (이미 PC통신 하이텔 OS동에서부터 천리안 하드웨어 동호회까지 주구장창 활동하던 이력이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PC통신에서와 같이 답변 올려주는 것 자체에 재미를 붙였다가… 곧 점수제를 발견하고는 점수올리기에 매진….

정타임 님이 언급해주신 선착순 퀴즈는 한참 후에서야 알게 되어 저도 한참(약 한 달 정도)을 동참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착순 퀴즈는 각 분야에서 전날 올라온 정보 중에 몇 개를 뽑아서 객관식으로 푸는 문제였는데 정말 어려워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맞추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검색을 마구 하면서 답을 찾아서 체크하여 답을 올리고, 그 답을 러브디빅 자유게시판에 올리면 그거 베껴다가 그대로 답변하곤 했었습니다. 문제 푸는 데도 시간제한이 있어서 검색에 능숙하지 못하면 절대 풀 수 없는….

또 사용자가 여론조사에 관련된 궁금한 점을 질문으로 올리는 폴(Poll)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올린 폴은 점수에 도움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금한 점을 간이 앙케이트 할 수도 있었고, 좋은 폴은 메인화면에 노출도 시켜줌으로 꽤나 매력적인 서비스중 하나였습니다. 회원들이 잘 몰랐던 좋은 폴 올리면 한 달에 한 명 뽑아서 상품도 줬습니다. ^^ 거기에 올렸던 폴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사랑니가 어느 위치에 몇 개가 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러브디빅에는 당시의 20대(물론 저도 20대였…. -_-) 사용자가 정말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물론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중년도 많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교수, 의사 등등에서부터 초중등학교 학생까지…. 직업 및 연령층은 매우 다양했었지요.
지금도 이곳에 올렸던 내 질문중 기억에 나는 것은 “왜 아침이면 잠을 못 자게 새들이 나무에 모여서 지저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

6 월에 고래지기 인터뷰를 해 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4 월부터니까…. 두달 조금 넘는 시점에 인터뷰 메일을 받다니…^^; (하지만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죠. -_-)
7 월에 점수 포탈 순위 100 등 안에 들었었고, 매일 점수 상승 랭킹 발표에 top5 안에 거의 들었었던 걸 보면 참 징~하게도 활동했었던 것 같습니다. ^^;

2002 년 붉은 물결이 금수강산을 휩쓸던 그 한 달간의 기억을 저는 그렇게 고래들과 함께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축구 규칙들에 대한 지식을 쌓은 것도 이때였습니다. (근데 축구지식이 많아지면 축구가 재미없어지더군요. -_-)

또…DB오류는 왜 그렇게 많던지….
답변을 달았는데 답변이 사라지거나 질문을 달았는데 정상적으로 질문이 등록되지 않으면 운영자한테 달려가서 사라졌다고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또 글을 읽다가 엄한 글을 발견하면 역시 운영자한테 말해야 했죠. DBDic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DB에 오류가 심각했던 것입니다. -_- 운영자는 잘못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DB를 검색해서 오류를 수동으로 고쳐야 했는데, 그런 글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5 달이 지나가고…..
9 월 초 약 일주일간 집에 내려갔다가 올라와보니 DBDic은 초토화가 되어있었습니다. (정타임 님의 지적으로 고칩니다.)

사용자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갑작스런 유료화 발표….
돈을 내지 않으면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든 그 황당한 시스템…..
돈을 내지 않으면 질문을 읽을 수 없게 만든 그 황당한 시스템….. 2
유료화 정책에 따른 반발에 기초한 열혈 회원들의 전격 탈퇴!!

심지어 열혈 회원들은 차라리 회비를 내겠다며 유료화를 철회할 것은 한겨레 신문사에 요구하였지만(1 년 운영비를 고려할 때, 열혈회원들이 1 년에 1만 원씩만 내도 충분한 정도였습니다.), 한겨레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열혈 사용자들이 거의 떠나가고, 하루에 올라오는 질문 수 2000 개는 거의 변함이 없는데 답변수는 하루 평균 8000 개에서 200 개로 감소. 답변을 찾아볼 수 없는 질답사이트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저도 시골에서 올라온지 몇 일만에 탈퇴할 수밖에 없었네요.

당시 네이버와 야후가 DBDic을 벤치마킹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DBDic은 사라져갔습니다.

2003 년 봄에 DBDic이 엠파스로 넘어가 ‘지식거래소’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엠파스에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만……
운영자도 그대로였지만 DBDic은 이미 그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겨레의 DBDic은 한겨레의 DBDic이고, 엠파스의 서비스는 엠파스의 서비스일 뿐이었죠.

제게 약 5 개월이라는 추억과 선물 3 가지를 남기고 DBDic은 그렇게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엠파스에서 검색하면 가끔 당시의 내 글들이 보일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럴때면… 아련한 기억이 새록새록 쏟아날 때도 있습니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많은 고래들은…..
지금 그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뱀발 :
러브디비가 아직도 유지되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 정타임 님 덕분에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뱀발 :
그러고보니 그냥 고래지기 할껄 그랬어요… -_-

뱀발 :
그때같은 정겹고, 답변자의 정성어린 답변을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없을까요?
네이버 지식인 같은… “무턱대고” 복사위주의 답변 말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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