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두꺼운 편이고, 판형도 크지만, 종이가 두꺼워서 그런 것이었고, 262 쪽 분량이므로 원고가 많은 책은 아니다. 사진이 많이 들어있고, 면지도 흔히 쓰는 종이가 아닌 반짝이는 미색지를 쓴 걸 보면 출판사에서도 공을 들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꺼운 속지를 쓴 이유가 아마도 본문에 삽입된 많은 사진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인지 이정도까지 두꺼운 종이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글이 읽기 편하게 잘 쓰여있는 것을 보면, 한영식 글쓴이와 누군지 안 적혀있는 편집자가 엄청 고생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 년이 지난 지금 봐도 글쓰기는 자연스럽다. 20 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한 내 입장에서(올해 11 월 30 일이 내 블로그 20 주년 기념일(?)이다.) 보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흔한 글 뿐만 아니라 책에 쓰인 글도 엄청나게 수준이 높아졌다. 30 년 전까지 시간을 늘리고 살펴본다면, 글쓰기가 좋다고 극찬받던 책들도 대부분 오늘날에 와서는 글쓰기가 별로다.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제공되는 뉴스의 글쓰기는 나빠진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그때의 글이 요즘 책과 비교해서 문제가 없다는 건 당시에 원고를 쓸 때 그만큼의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자료를 많이 모으지 못했기 때문인지 (원고가 쓰였을 2003 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생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제공하는 정보가 좀 뻔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해외와 비교하면 정보가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늘어난 정보를 활용해서 재판을 찍어주면 좋지 않을까. 본문 이외의 글씨 크기가 대체적으로 너무 작고, 사진이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안 좋은 것도 섞여있는,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도 고칠 필요가 있어보인다. 물론 저작권자들이 그동안 딱정벌레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20 년 된 책이라….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자연과 인간 시리즈 #1
한영식 씀, 이승일 찍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262 쪽 190*228mm (498g)
ISBN : 89-8371-525-1 (9788983715265)
22000 원
1 판 1 쇄 : 2004.02.02 펴냄
차례
여행을 시작하며
딱정벌레 왕국 가이드
1. 땅에서 길잡이를 만나다
산길에서 만난 친구 – 길앞잡이
한여름밤의 사냥꾼 – 딱정벌레
딱정벌레 왕국의 화학병 – 먼지벌레
자연의 청소부 – 송장벌레와 반날개
BEETLES’ TIP – 함정 채집법
2. 꽃 위의 작은 친구들
비틀스와 딱정벌레 – 꽃무지
알통 다리 딱정벌레 – 하늘소붙이와 하늘소
꽃잎 위의 작은 친구들 – 꽃벼룩, 왕꽃벼룩, 썩덩벌레, 목대장, 섶벌레, 밑빠진벌레, 홍날개
의병보다 용감한 딱정벌레 – 의병벌레와 병대벌레
BEETLES’ TIP – 쓸어잡기 채집법
3. 잎에 살며 잎을 먹는 딱정벌레
무진장 여객과 딱정벌레 – 잎벌레와 풍뎅이
먹깨비 딱정벌레 – 가뢰
기린만큼 목이 긴 곤충 – 거위벌레와 바구미
풀잎 위의 다이빙 선수 – 방아벌레와 무당벌레
BEETLES’ TIP – 털어잡기 채집법과 관찰 채집법
4. 나무 위의 딱정벌레 왕국
바나나를 좋아하는 친구 – 사슴풍뎅이
코끼리의 작은 친구 – 왕바구미, 소바구미, 나무좀
딱정벌레 왕국의 서울 – 호랑하늘소, 비단벌레, 개미붙이, 털두꺼비하늘소
버섯 황제의 만찬 – 버섯벌레, 거저리, 머리대장, 표본벌레, 수시렁이
BEETLES’ TIP – 유인 채집법
5. 물속을 거니는 딱정벌레
물속의 폭군 – 물방개와 물진드기
땡땡이와 맴돌이 – 물땡땡이와 물맴이
방랑 갑충 물삿갓 – 물삿갓벌레, 여울벌레, 진흙벌레
물속의 걸음마, 물 밖의 사랑 – 애반딧불이
BEETLES’ TIP – 수서 곤충 채집법
6. 밤하늘에 펼쳐진 딱정벌레 왕국
지상으로 내려온 별 – 반딧불이
딱정벌레 왕국의 장군 – 장수풍뎅이와 장수하늘소
낚시로 잡은 딱정벌레 – 사슴벌레
불빛 속의 돌진 – 하늘소, 풍뎅이
BEETLES’ TIP – 등화 채집법
여행을 마치며
감사의 글
참고 문헌
딱정벌레 찾아보기
20여 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을 나는 언제 샀던 걸까? 혹시 누군가에게 받거나 한 건 아닐까? 아무튼 이 책을 1 판 1 쇄로 갖고 있었지만 종이 자른 면이 까매질 때까지 읽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발견하고서 읽기 시작했다. 벌레, 그중에 거미 사진 촬영이 취미였던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책이 늘 반갑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은 수준이 좀 부족해 보인다. 당시 쓰던 필름은 3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는 200~500만 화소였다. 지금은 어지간한 카메라도 2000~6000만 화소일 뿐더러, 각각의 화소 성능도 20 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면 품질이 훨씬 좋다. 물론 화소수가 늘어난만큼 촬영은 힘들어졌다.
이 책은 아마추어의 책쓰기에 대한 text로 취급된다. 책은 수필과 관찰기록이 반반 정도 섞여있는데, 쓸모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단순한 이야기만 있어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12 년 동안 벌레 접사를 찍었기 때문일까? (최근 5 년쯤은 거의 안 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