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구테타와 민주화운동

2019 년 1 월…. 미얀마에 갔었다. 당시에 미얀마와 우리나라 정부는 협정을 맺어 1 년 동안 무비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후에 다시 1 년을 연장했었다.) 미얀마가 외국인에게 문호를 별로 개방하지 않은 나라여서, 동남아를 가는 김에 미얀마까지 한번에 가보자 생각했다.

막상 태국에 도착한 이후에 후회를 참 많이 했다. 7 년 전에 태국에 갔을 때 다시는 안 가겠다고 했던 이유가 태국 방콕 공항을 딱 나서는 순간 떠올랐다. 더위….ㅜㅜ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냥 참을만 했다. 그 몇 일 뒤에 또 다시 후회했다. 좋았던 기억이 있던 곳 중 한 곳에 갔는데, 좋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7 년 전에 갔던 곳은 다시는 안 가기로 했다. 그래서 태국 북부 등은 모두 pass~~ 했다. 거창, 꺼사무이 부근 등도 마찬가지…. 일주일쯤 뒤에 다시 후회했다. 끄라비 등을 갔는데 작은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그래서 일정을 조금 당겨서 미얀마에 조금 일찍 들어가기로 하고는 미얀마 꺼따웅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태국은 마지막까지 기대(?)에 부응했다. 꺼따웅에 가기 직전의 태국 도시 라농에 2 박을 할 계획으로 갔는데… 첫날 밤에 생난리를 치고는 빨리 짐 챙겨서 미얀마 꺼따웅으로 바로 넘어갔다. 이 숙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빈대였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빈대에 물려봤다. ㅜㅜ 그래서 국경 출국장으로 가는데, 거기에도 어떤 사기꾼이 따라붙었다. ㅎ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라농에서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다!

미얀마 꺼따웅은 별로 좋은 곳이 아니었다. 볼 곳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연이 원체 좋기 때문에, 아래의 사진 정도는 쉽게 담을 수 있었다.

꺼따웅에서 찍은 해넘이
이게 사기친 식당에서 나온 음식
음식은 괜찮았는데, 시키지도 않은 뭔가를 넣었다면서 돈을 2 배로 받으려고 했다.

사기치려는 식당 때문에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원래 어느나라나 국경도시는 사기꾼들의 천국이니까… 내가 거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3박4일을 지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_- 그 뒤에 간 곳이 메르귀다. 지리적으로 꺼따웅과 실질적인 미얀마의 수도 양곤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그곳도 특별히 보거나 할 곳은 없었지만, 최소한 사기꾼은 없었기에 빈대 물린 곳을 긁으며 다니면서도 기분은 나아졌다.

메르귀는 항구도시다.
여행객이 할 것은 배 타고 섬 구경가는 것 뿐….!

이곳에서 사업을 하시는 한국인 한 분을 만났는데, 현지에 대한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미얀마는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숙소에서 각기 비상발전기를 돌린다는 것(어쩐지 깜빡깜빡 하더라…).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하려 하는데, 메르귀에도 SK가 진출해 발전소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었다. 더불어 아주 커다란 담장을 가리키며, 군인의 집이라고 하면서 미얀마 헌법, 국회의원 수에 대한 문제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다.

그분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랄까…. 평화가 임시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고, 머잖아서 피 터지는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수치 여사의 로힝야 족 처리 방법에 대해 상당히 안 좋게 보고 있어서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특별히 뭐라 하기는 힘들었다. 뭐 그러나 그 피 터지는 사건이 2 년만에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이집트는 다녀온 지 딱 1 년만에 아랍의 봄 사건이 터지더니…..)

내가 메르귀를 계획보다 하루 일찍 더난 이유는 중국사람들 때문이었다.
지금 저기가 국립공원인데….

샴프를 가져다가 열심히 목욕을 하고 있었다. 더 심한 건, 저 샴프를 들고 있던 사람이 베개만한 산호를 주워다가 자기 가방 안에 넣어가지고 갔다. ㅎ-

이후에 미얀마를 다니는 동안 별로 나쁘다는 인상은 없었다. 딱 한 곳….만 뺀다면…
바간의 택시들이 사기를 아주 거하게 치고 있었다. 바간에서 택시들이 여행객들에게 사기를 치려고 이전에 다니던 버스를 도중에 못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숙소까지 대략 2 km를 택시 1 대당 1000~1500 짯인가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인당 3000~5000 짯식 달라고 했다. (흥정을 해보려고 했지만, 다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냥 택시를 비싸게 타고 가버렸다. 그래서… 택시 안 타고 남은 사람은 나와 다른 두 명뿐….) 세 명이서만 그냥 짐 끌고 버스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처음 만난 택시를 1500 짯에 타고 숙소까지 갔다. ㅎ 아무튼…. 바간 가시는 분들은 택시 사기 꼭 주의하시길 바란다.

만달레이에 있던 어떤 짜웅…..
미얀마엔 이런 사원이 참 많다! 너무 많아서 질려서, 나중에는 더는 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바간의 이름모를 사원
해돋이와 해넘이 명소를 따로 찾지 않아도 이렇게 즐길 수 있다.

이후에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은 것 많이 구경하고 돌아왔다.
지금도 미얀마의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웃음이 생각난다. 미얀마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이 미얀마 사람들의 웃음일 것이다.


아무튼… 나중에 집에 돌아온 뒤에 로힝야 족에 대해 찾아봤다. 뭐랄까….. 미얀마에서 로힝야 족은 우리나라에서라면 일제시대 때의 매국노 같은 존재였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아웅산 수치 여사처럼 탄압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원래 영국이 져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민중 입장에서 이런 사태는 되도록 시작을 늦추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군부세력이 제 발이 저려서 일을 벌여버린 것이니 민중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시작이었지만, 일단 시작됐으니 끝까지 밀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나라의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중국의 천안문 사태처럼 피만 뿌리고 끝나더라도, 그 피는 언젠가 자유로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부디… 미얀마가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