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은 지식과 지혜의 공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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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학과 물리학만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예술, 사회과학, 스포츠, 게임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두루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의 학교 교육을 위해서 무척이나 많이 투자한다. 반면 부모 발전을 위한 투자는 무척이나 인색하다. 이 글에는 한 개인의 지식과 지혜가 나아지는 과정과, 자녀가 나아지려면 왜 부모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적는다.

빈서판 이론의 허와 실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 마음은 백지와 같다”는 이론을 빈서판 이론이라고 한다. 유명한 이론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마음에 없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기능도 없을 것이란 문제 때문에 아주 오래전에 사장됐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무엇인가 기록하는 장치와 커다란 백지가 한 장 들어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배울 준비가 된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새 이론의 주요 골자다.

처음 태어나서 배우는 순서는 거의 정해져 있다. 처음엔 울기밖에 못하던 아기들은 몸을 가누기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을 위한 몸짓을 배우고, 걷기와 언어를 배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무조건 배운다. 물론 주변 환경과 타고난 능력에 의해서 사람마다 배우는 언어와 기술에 차이가 생긴다.

언어를 익힌 다음부터는 언어능력에 크게 의존해 다른 것을 익힌다. 언어가 배우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게 되는지를 언어능력이 결정한다. 물론 어떤 언어를 쓰느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여러 가지 실험과 사고에 의해서 이미 증명되었다.

아이 언어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언어에 의존해서 발전한다. 접하는 어휘가 풍부할수록 풍부한 어휘를 배우게 마련이다. 오늘날에 가장 중요해진 언어환경은 TV나 비디오 같은 미디어다.

미디어에 나오는 말은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지나치게 빠르다. 말을 어느정도 배운 아이에게도 한정되고 반복적일 뿐만 아니라 소통 없이 시청자에게 밀어내기만 한다. 그래서 주로 미디어를 통해서 말을 배운 아이들은 어휘가 빈약하다. 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를 보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상대적으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해 주는 간단명료하고, 소통을 위한 말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Critical Period

사람 아이들은 대여섯 살 정도까지 모국어를 배우는 시기가 제한된다. 학자들은 이렇게 언어를 배우는 한계연령을 크리티컬 페리오드Critical Period라고 부른다. 들은 말을 특정 음절로 분해하고 이를 따라하면서 단어를 구사하고, 단어를 열거하면서 문법적 구조를 익힌다. 이런 과정을 모국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여섯 살 이전에 접한 언어는 배우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

크리티컬 페리오드Critical Period 시기까지 어떤 언어도 배우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거의 모든 언어를 배우지를 못한다. 이는 늑대에게 길러지다 크리티컬 페리오드를 넘어선 뒤에 발견된 사람들에 의해 증명돼 있다.

반대로 어렸을 때 여러 가지 언어를 접하면 모든 언어를 모국어로 인식하게 된다. 20여 년 전에 키메라(김홍희)의 어린 딸 멜로디가 납치1987년 11월에 다섯 살의 키메라의 딸 멜로디를 납치하고 몸값으로 230억 원을 요구했던 사건이다. 1996 년 영화 [랜썸Ramsom]의 모티브가 되었다. 되었을 때 언론은 3 살짜리 아이가 4 개 국어를 한다면서 천재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천재여서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환경에 접했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여러 언어에 노출되면 그 아이의 언어능력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접한 모든 언어를 혼합해 인식하면서 발음과 단어 선택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관리해 줄 수 없다면 모국어는 한 가지만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이런 문제는 둘째 아이에게 많이 생긴다. 첫째 아이에 맞춰서 외국어 교육을 할 때 둘째 아이가 얼떨결에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둘째 아이는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알아듣기 쉽게 분명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이 언어에 부담을 느끼면 다른 분야의 발전에 지장을 받게 된다. 이는 언어와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예술분야나 절차적 지식을 사용하는 논리분야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본고사로 대학교 입시를 치를 때 논리적인 학과의 학생을 선발할 때도 언어능력을 중요한 선별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물론 논리적인 내용을 공부할 때는 본능과 언어적인 능력만으로는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주변의 어른과 또래집단이 학습의 폭과 질에 영향을 준다. 물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학습패턴도 점차 복잡해지므로 정확히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단조로운 생활(학원과 학교에만 얽매여 생활한다던지….) 속에서 성장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인간의 기본 능력 vs 현실적 실력차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교과과정까지 학습할 능력은 타고난다.(극히 예외적으로 성장이 늦거나 타고나지 않은 분야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실력이 천차만별이고, 한 사람이 갖는 능력도 각 분야마다 천차만별이다.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관심의 차이로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못하는 것들은 점점 더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못하는 부분을 잘하는 것으로 보강하는 방법을 익힐 수도 있다.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방법을 찾아야 하고, 이런 면에 대해서는 주변 어른들의 모범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중요한 이유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외워야 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이 있고, 어려운 내용도 나오게 된다. 외워야 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은 책상에 앉아서 책만 보고도 해결할 수 있다. 보통 공부는 이렇게 하며,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을 아무나 해결하지 못한다. 단순히 외우고 책을 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려운 것이라고 하겠지…) 공부의 위기는 바로 이때 – 어려운 내용을 만났을 때 – 온다. 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게임 등도 마찬가지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잠시 돌려보도록 하겠다.


초자아

※ 이 꼭지에서 말하는 ‘초자아’는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자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으면서 부모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경험한다. 물론 그것들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에 대한 분위기나 어머니의 기분변화를 정확히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태어난 뒤에도 주위 어른들의 습관과 생활을 배운다. 특히 부모들의 습관은 유전과 후천적으로 답습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줘서 아이들의 성향을 결정한다. 끈기있게 노력하는 성향의 부모 밑에는 성장한 아이들은 당연히 끈기를 배운다.(한 문제를 몇 일씩 고민하여 해결하는 부모를 본 아이는 자기도 그렇게 해결할 것이다. 물론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더 크다.) 반사적인 성향의 부모 밑에는 반사적인 성향을 아이들이 배우기 마련이다. 부모가 매일 싸운다면, 아이도 결혼한 뒤에 매일 싸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모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부모와 비슷한 성향(행동유형)이 아이들의 성장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부모가 혀를 끌끌 차며 누굴 닮았냐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할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초자아가 하는 일이다. ‘초자아’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능력이다. 초자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나’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이어서 ‘나’에 반대되는 ‘외부‘(타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는 발견하기 힘든 능력이며, 초자아를 찾지 못한 어른도 있다.

사람은 초자아를 통해 자기 실력을 판단할 수 있다. 초자아는 개인의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초자아가 형성되는 기간은 두 번 있는 듯하다.

첫 번째는 3~7 살생후 6개월만에 형성된다는 학설도 있다. 정도에 오는 것 같다. 그때 아이들이 무수한 질문당연한 것을 물어서 어른들이 아주 답답해하는 질문들 –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를 “미운 일곱살”이라고 부른다. 물론 대답에 있어서 답답하다고 생각된다면 어른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겠지만을 하는데, 어른들이 답변을 얼마만큼 충실히 해주느냐에 따라 초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가 결정된다.

두 번째는 15 세 전후의 사춘기에 오는 것 같다. 어른과 같은 사고방식이 완성되는 시기다. 사춘기는 어른의 부조리도 곧잘 발견하지만,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항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학습(자아성찰)의 영향으로 내부로부터 초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

첫 번째 기간는 주로 ‘나’를 발견하는 시기이고, 두 번째 기간은 ‘외부’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시기다. 뭐 종종….. 첫 번째 기간에 외부라는 개념을 형성하기도 한다. (나는 안 그랬다.)

일단 초자아가 형성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발견할 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초자아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 것은 아니다. 풀이에 대한 대처능력이 강해지고, 유연해질 뿐이다. 당연히 문제가 어려울수록 풀 기회가 줄어드는데, 너무 어려운 문제는 스스로 풀기보다는 주변 어른이나 친구로부터 배우거나 끊임없이 관찰함으로서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문제가 안 풀리면,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만한 네 주변 사람이 어떻게 풀지 상상해 봐라.“

실제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단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어떻게 풀까 생각하기만 해도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그 사람의 지혜를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접근하는 사고방식과 풀이기법이 어려워진다. 요즘 한참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창의성’이 필요한 때는 문제풀이의 처음이다. 하지만 창의성은 학습에서가 아니라 ‘초자아’를 기본으로 한 주변 사람들에게서의 자극과 스스로 풀이했던 경험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성을 우리는 ‘학습에서의 지혜’라고 부른다. 그래서 창의성을 가지라고 명령해도 창의성은 생기지 않는다. 주변환경과 그걸 바라보는 초자아에 의한 각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명령이 있다는 것은 환경이 그대로라는 것을 말하니까, 창의성이 나올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공명

위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식과 지혜의 형성과 발전의 한 면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지식수준이 일정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지혜가 생겨나지 않고, 지혜가 일정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지식을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한 발이 앞에 있으면 뒤쪽에 있는 발을 앞쪽으로 옮기지 않는 한 전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수준에 맞는 지식을 쌓고, 그 지식에 맞는 지혜를 쌓고, 다시 그 지혜에 맞는 지식을 쌓고….

성장은 지식과 지혜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겉으로 드러나므로, 아이들의 발전은 계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몸이 S자형으로 발전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래서 나는 지식과 지혜의 반복된 교환을 ‘공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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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가르치기…!!!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중요한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1. ‘초자아’ 형성

아이들이 일찍 초자아를 형성한다면 발전하는데 유리하다. 물론 초자아 자체가 발전의 모든 것은 아니다. 초자아가 형성되는 첫 번째 시기인 3~7 살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직접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 시기는 유치원에 보내기보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게 더 좋다.

2. 부모들의 모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본받는 사람은 부모다. 부모 행동은 아이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가 진심으로 집에서 책도 열심히 보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이라는 것을 부모들이 우선 깨달아야 한다.

3. 존경하는 사람

여러분은 존경하는 사람멘토이 있는가? 아이에게는 멘토가 중요하다. 평소에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 학교 은사나 부모면 좋다. 위인전에나 나올만한 분은 존경한다고 해도 미디어를 통해서 접할 뿐이지 실제 모습을 알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좋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4. 창의적 학습 환경

창의적인 학습 환경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떠한 창의력 학습지나 교수에 의한 강압적인 방법으로 형성시킬 수 없다(약간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주변의 어른들의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맹모삼천지교’처럼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이 강남 8학군 같은 틀에 짜여진 환경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초등학교까지는 두메산골 같은 곳에서 학교만 다니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관찰할 대상과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마을 사방 2 km 안에는 산도 건물도 없고 완전히 들판 한가운데였다. 2 km를 걸어서 통학을 했는데, 등교시간은 40 분쯤 걸렸고 하교시간은 보통 1~2 시간 정도 걸렸다. 요즘 부모들이 본다면 학원에 가야 하는데 놀면서 집에 왔다고 혼낼만한 하교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가 산(生, live) 공부를 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원에 다니는 것 이상으로….

5. 부모의 관찰

아이들에 따라서 학습의 속도는 차이가 심하게 나지만, 학습의 최종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빨리 학습해서 아주 깊은 심화과정까지 스스로 깨닫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빨리 접근하는 사람보다는 느리게 접근하는 사람이 더 깊은 심화과정까지 깨우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느리게 접근하는 사람은 보통 수 년 정도 필요하게 되는데, 아쉬운 점은 느린 학습 속도를 갖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학원에 보낸다는 것이다. 또 빠른 학습 속도를 가진 아이는 더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학원에 보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원이 아니라 배운 지식을 하나라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자유시간이 없는 아이들은 결코 심화학습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것이 아니라 학습을 시킬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의 관찰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초등학교 6 학년 여름방학이 보편적인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크다.

6. 선생의 관찰

선생 중에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시지만 실력이 부족한 놈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해 주지 못하는 선생도 있다. 그러나 답변을 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서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은 모르는 것이 있을 경우 솔직하게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같이 답을 연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답을 연구하는 과정 또한 학습인지라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하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모르는 것이 있는 선생님은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7. 과감한 투자

앞에서 이야기한 여섯 가지를 어느 정도 갖춘다면, 아이의 수준은 이미 같은 학년 중에서 많이 앞서갈 것이다. 성적이 상당히 나쁘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갈 준비는 다 갖췄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면 그때는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아이의 재능을 파악한 후 몇 과목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목들은 아주 잘하는 과목과 아주 못하는 과목이어야 한다.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 ‘종합반’ 학원은 최악의 선택이다.학습까지 봐주는 태권도 학원? 이건 더 최악이다.

6 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하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학교 3 년만 하더라도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일 년 만에 자기 인생을 바꾸는 아이들도 많다.

8. 부모의 발전을 위한 투자

아이들은 발전해 가면서 처음에는 부모에게, 두 번째는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의존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발전하면 할수록 부모와 선생님의 한계를 보면서 실망하여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면 그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교육적으로는 늦다. 공부를 제 시기에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공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항상 공부할 필요성이 있다. 어른도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항상 공부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또 진정으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개강연회 참석이라든지, 대학원에 진학하든지, 이게 불가능하면 특정 학원이라도 가서 공부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자신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만 공부하라는 어불성설은 정말 최악의 모습일 테니까?!

마치면서…

실력이 부족할 때의 지식이 훗날 실력이 풍부해지면 지혜가 되기도 하고,
실력이 부족할 때의 지혜가 훗날 지식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옳다고 믿던 것도
실력이 늘어가면서 틀렸다고 깨닫는 경우도 있다.
절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며,
지식과 지혜의 경계도 완전히 뚜렷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때때로 이런 혼란 속에서 아이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그 아이를 이끌어주기 위해서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고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지식과 지혜가 공명을 잘 이루었을 때
아이들이 멋진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부모 스스로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글 쓴 날 : 2005-02-27 19:07

ps.
이미 이야기했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의 우리나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방임이 최선의 교육방법이 될 수 있음을 언젠가…… 깨우칠까?

PS. 다른 아이들을 나무라다가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모습에 뜨끔한 생각을 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사실은 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글쓴이의 지루한 글이었다.

ps. 윗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의 우리나라…. 너무 안타깝다.

ps. 추가 : 2021.08.30
이 글을 16 년만에 교정해 보았다. 음….. 재미있다!

2 comments on “발전은 지식과 지혜의 공명이다.”

  1. ㅎㅎㅎ, 참으로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빈 서판’인가 하는 책을 읽어봤습니다만, 솔직히 참으로 답답한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 다소 들기도 했습니다.

  2. 작은 엘루의 경우…
    입을 떼자마자 못하는 말들이 없었어요…
    특히 조사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지요…
    그러던 아이가 지금은 엉망이네요…–
    어디서부터 잘못 한 건지…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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