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년 봄에 불꽃사진을 더이상은 찍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8 월의 어느 날, 자려고 누웠다가 어떤 촬영방법이 머리 속에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물론 직접 이 방법으로 찍어보기 전에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있나 검색해봤다. 한 명의 사진이 나왔다. 아쉽게도 그 사람은 이쁘게 찍는 건 실패한 듯했다. 현장에서 불꽃이 터지는 와중에 떠오른 생각대로 찍은 것이어서 방법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로스필터를 아예 렌즈에 부착하고 찍어서 이쁘게 나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사람의 시도가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 이후 3 년 동안 시도해 봤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i) 반짝반짝 아이디어를 떠오린 이유
1. 자연스러운 연기 처리
가장 처음 떠올린 이유는 연기를 처리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기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연기 속에서 불꽃이 별처럼 반짝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2. 보이는대로 찍기
강한 빛이 순간적으로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면 우리 눈에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진에는 그냥 흰 점으로 찍힌다. 우리 눈의 시신경세포는 하나하나가 독립해서 빛을 감지하는 게 아니라, 주변 세포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빛을 얼마나 받았는지 판단하기 때문에 반짝이게 보이는 것 같다. (노안이 오면 수정체나 각막의 특성이 변해서인지, 반짝이는 정도가 좀 더 심해진다.) 사진도 우리가 보는 것처럼 찍히면 이쁘지 않을까?
(II) 준비물
1. ND필터
빛 밝기에 대해 계산해보니 ND6 필터가 필요했다. 기타 부수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ND8 필터를 샀다.
2. 크로스필터
빛이 갈라지는 필터다. 사진에서 빛이 반짝이도록 찍는 효과를 만들어줄 것이다. 빛이 각각 4, 6, 8 갈래로 갈라지는 제품을 살 수 있다. 4 갈래로 갈라지는 필터를 샀지만, 6 갈래로 갈라지는 필터도 좋을 것이다. 8 갈래는 사진이 아무래도 지저분해질 것 같다.
클수록 쓰기 좋다. 지름 82 mm가 판매되는 가장 큰 것이다. 참고로, 테두리가 없는 제품을 구하고자 했지만 살 수 없었다. 사각용 크로스필터도 테두리가 있다.

3. 기타 촬영에 필요한 장비
불꽃놀이는 장시간 노출해서 촬영하는 사진이다보니 이에 따른 장비가 필요하다.
삼각대, 볼헤드, 릴리즈
또 기타 촬영장비 여유분도 필요하다.
배터리, 메모리카드
(III) 카메라 설정 방법
촬영은 불꽃놀이를 찍는 보통 방법대로 하면 된다. 단, ND필터 때문에 어두워진만큼 조리개를 열어야 한다.
1. 장소 선정
크로스필터 효과를 크게 얻으려면 빛이 강해야 하므로, 불꽃에 가까우면 가까운 곳일 수록 좋다. 또 가까운 만큼 렌즈는 광각이어야 좋다. 캐논 크롭바디로 여의도 불꽃축제를 강가에서 찍는다면, 화각 17~20 mm 정도가 필요하다. 부산 광안리 불꽃축제를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찍는다면 14 mm 정도면 된다. 부산 광안리 불꽃축제에 더 넓은 화각이 필요한 이유는 불꽃을 더 넓게 퍼지게 쏘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찍는다면 크로스필터를 안 쓰는 게 좋다. 표준화각으로는 찍어도 별로 이쁘지 않았다. ^^;;
2. ND필터 장착
초점을 맞춘 뒤에 ND필터를 끼운다.
3. 카메라 설정
카메라 설정이 추구하는 바는 ’15 초 정도에 야경을 찍히도록 카메라를 설정한다’는 기본적인 불꽃놀이 세팅 방법과 비슷하다. 그러나 ND필터 때문에 설정값은 조금 다르다. 조리개를 고정한 뒤, 감도로 사진 밝기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조리개는 f/5.0 정도로 설정한다. 이게 선예도가 가장 선명한 조리개값이다. 감도는 iso 100~160으로 하는 게 무난하다. 물론 불꽃이 어두울 때는 320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참, 사진은 꼭 raw로 저장하자….!
(iv) 촬영방법
렌즈 앞에 크로스필터를 댔다 뗐다 한다.
- 짧은 시간 동안 댔다 뗐다 하는 행동을 자주 해야 효과가 좋다.
긴 시간동안 대고 있으면 크로스필터 효과는 잘 안 보이고 뿌옇게 보일 뿐이다. - 노출시간을 조금 짧게 한다. 2~5 초 정도가 좋았다.
앞에서 설정한 세팅 그대로 찍는데, 촬영시간은 짧게 하는 것이므로 배경은 어둡게 나올 수밖에 없다. 불꽃이 별로 없던 경우에만 배경이 밝게 나오도록 길게 노출할 수 있다. 불꽃이 조금만 많아져도 사진은 지저분해진다. 결국 배경도 밝게 찍히고, 불꽃도 이쁘게 나오게 하려면, 배경을 미리 밝게 찍어뒀다가 합성해야 한다. (띄엄띄엄 불꽃을 쏘는 불꽃놀이는 거의 열리지 않으니까…. 2015 년 8 월 14 일쯤에 열렸던 광복 70주년 불꽃놀이가 이랬는데, 그냥 맨눈으로 보기엔 엄청 지루한 불꽃놀이였다.) - 나머지는 보통 방법과 비슷하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냥 경험에 맞춰서 찍는 것일 뿐이다.
(V) 예상되는 결과
불꽃놀이에 쓰이는 불꽃은 종류가 많지 않다. 그 중에 크로스필터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는 불꽃은 진짜 몇 가지 안 된다. 따라서 불꽃놀이를 하는 동안 필터를 언제 얼마나 대고 있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으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할 것 같다.
1. 큰 불꽃이 흩어지는 폭발
작은 불꽃으로 흩어질 때 강하게 빛나는 불꽃이 있다. 이럴 땐 흩어지는 지점에 빛줄기가 생긴다. 그러나 불꽃 종류에 따라 흩어지는 불꽃에 가려서 잘 보이는 경우도,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때는 흩어지는 폭발이 있을 때에만 잠깐 크로스필터를 갖다 댔다가 떼야 한다. 찍을 때 즉각 판단하기는 힘들 것이다.

2. 강하고 길게 늘어지는 흰 불꽃
길고 희게 빛나는 불꽃줄기를 만드는 불꽃은 강한 빛줄기를 남긴다. 때에 따라서 오랫동안 대고 있는 게 효과를 보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한다.

사실 이 사진은 망한 사진이다. 그냥 예시로만 봐주기 바란다.
3. 순간적으로 강하게 터지는 불꽃
순간적으로 강하게 터지고, 궤적을 남기지 않는 불꽃이 있다. 보통 사진에서는 하얀 점이지만, 크로스필터를 대면 찍기는 힘들지만 사진은 무조건 이쁘다. 그러나 터질 때만 대고 있어야 한다. 근데 언제 터질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이런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면 운에 맞기고 비교적 자주 크로스필터를 댔다 뗐다 하는 수밖에 없다.

4. 일반적인 불꽃
사실 일반적인 불꽃에 빛줄기가 생기면 이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냥 놔두고 평범하게 찍으라고 하고싶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이쁘게 찍히기도 하지 않을까?

5. 크로스필터가 안 좋은 경우
필터 테두리가 지나가며 밝고 짧은 불꽃을 가리면, 지나가던 궤적이 끊어져 보이게 찍힌다. 그렇게 되면 불꽃이 여기저기 좀먹은 것처럼 지저분하게 보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 따라서 크로스필터를 쓸 땐 불꽃 종류를 판단해서 써야 한다. 뭐 나처럼 무조건 흔들고서, 잘 나온 것을 소수 건지는 게 더 속편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필터에 따라 색온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더러워지는 건 크로스필터의 테두리 때문이다. 따라서 테두리를 떼어내고 알만 들고 흔들면 더러워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렌즈알을 테에서 빼어 찍으면 보통 불꽃사진을 찍는 것만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그럼 어떤 필터를 사서 알을 빼야 할까?
크로스필터는 기본적으로 렌즈알에 따른 빛갈림 성능 차이가 없다. 따라서 렌즈알을 분리하기 쉬운 것을 쓰자. 렌즈알을 고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고급제품은 나사로 둥근 링을 돌려 고정시키고, 보통 제품은 개스킷처럼 생긴 것으로 고정시킨다. 이중에 개스킷 같은 걸로 고정시킨 게 분리하기가 더 쉽다.
분리한 필터알은 보관하기 힘들다. 82 mm 필터의 렌즈알은 77 mm 필터와 구경이 똑같으므로 77 mm 필터 케이스에 넣으면 된다.
(vi) 주의점
1. ND필터만 쓰면
ND필터를 써보니 좀 더 선명하고 역동적인 사진이 찍힌다. 더군다나 심도면이 얇아져서 심도면에서 벗어나는 연기는 약하게 찍힌다. 따라서 불꽃놀이를 찍을 땐 ND필터를 끼우는 게 무조건 좋다.
물론 ND필터를 끼우면 나쁜 점도 있다. 심도가 얇아져서 초점을 더 정확히 맞춰야 한다.
아무튼, 세팅할 실력만 된다면, 불꽃놀이를 찍을 땐 ND필터를 꼭 쓰자!
2. ND필터 없이 크로스필터만 쓰면
ND필터 없이 크로스필터를 쓰면 조리개를 조여야 하고, 조리개를 조이면 불꽃이 뿌옇게 나오게 되고, 불꽃 스스로 조리개에 의해 빛갈림이 생긴다. 크로스필터가 만든 빛줄기가 별 티도 안 나게 된다. 그렇다고 크로스필터를 좀 더 많이 쓰면 흔적이 지저분해져 보인다. 연기도 보기 싫게 찍힐 것이고, 후보정으로 연기를 잘 안 보이게 만들기도 힘들어진다. 결국 ND필터가 없다면 크로스필터도 그냥 안 쓰는 게 더 낫다.
3. 너무 길게 대고 있지 말 것
크로스필터는 특별한 경우를 빼면, 너무 길게 대고 있지 않아야 한다. 길게 대고 있으면 사진이 개판 오 분 전이 되기 쉽다…..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그걸 모르고 길게 대고 찍었던 사진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ㅜㅜ
4. 크로스필터 방향을 돌리지 말 것
한 사진 안에서 빛줄기가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있는 빛덩이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 필터 돌려봤는데, 결과는 별로 안 좋았다.
(vii) 결과
크로스필터를 쓴 결과를 이야기해보자.
1. 찍힌 사진은 색다르고 이쁘다.
내가 찍은 사진을 살펴볼 때, 결과물은 훌륭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불꽃은 물론이고, 더 잘 활용하면 더 멋진 사진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 촬영에선 렌즈 화각 선택을 실패했었다.
2. 불꽃사진답게, 이쁜 사진은 우연히 찍힌다.
계획하고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그게 꼭 이쁘지는 않았다. ㅜㅜ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흔들어대며 찍은 사진이 더 이쁜 경우가 많았다. ^^;;;

3. 연기는
크로스필터 때문이 아니라 ND필터 때문에 약하게 찍혔다. 불꽃놀이 사진을 찍을 때는 크로스필터를 쓰지 않더라도 ND필터는 끼고 찍자. ^^; 아무튼 그 결과, 애초에 생각했던 성운 같은 모습의 사진을 얻는 건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아무튼 ND필터를 끼워도, 연기와 같이 찍힌 사진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다리에서 불꽃 동시에 터트리는 건 왜 하는지 모르겠다. ^^;
4. 그냥 찍어서 이쁠 장면이 더 이쁘게 찍힐 뿐,
그냥 찍었을 때 안 이쁠 장면이 이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5. 크로스필터의 단점
크로스필터를 쓸 때의 단점….. 물론 많았다.
- 찍을 때 정신 없다.
- 찍을 때 팔 아프다.
-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
- 배경이 어둡게 찍힌다.
- 테두리가 중요한 불꽃을 자꾸 가린다.(물론 크로스필터 테두리를 빼고 찍으면 되긴 한다…!!)
- 크로스필터는 사진 밝기를 0.3 스탑(stop) 정도 어두워진다.
- 크로스필터를 댔을 때와 뗐을 때의 색감이 다르다.
한마디로, 정신 없이 한 팔을 흔들면서 다른 팔로는 릴리즈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필터를 카메라에 들이박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팔아프게 열심히 흔든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음…..
테두리를 뺀 크로스필터를 고정시켜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 물론 회사들이 불꽃놀이 사진 몇 장 찍으라고 그런 필터를 출시하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