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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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뭔가에 끈기있게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혼자서 들판에서 뛰어놀아야 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말벌집이 있으면 한 시간은 들여다봐 말벌이 내가 원래 있던 것인양 할 때까지 봐야 했고….
토끼풀이 있으면 네잎크로버를 하나 찾기 위해 두 시간 이상을 집중해야 했다.
꿀벌이 토끼풀꽃 위에서 꿀을 따면 고무신으로 잡아서 갖고 놀다 쏘이기 부지기수였고…
냇가에 가서는 물 속의 긴 선을 보고 뭔가 살펴보고 상상하다가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이 흔적은 말조개의 흔적이란 걸 나중에 말조개가 지나가는 걸 보고서야 알게 됐다.)
개가 두더지를 잡으면 그거 뺏어 갖다 아버지 드렸더니 아버지가 버리셨다. ㅜㅜ
벼이삭 하나 떨어져 있으면 줍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했고, 그것들을 모으면 평균을 내야 했다. (벼이삭 하나에는 벼가 적으면 100개, 많으면 200개쯤 붙어있다. 그러핟면 벼이삭이 10개만 되어도 평균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세야겠는가?)
해가 지는 서산을 바라보면서 그 붉고 선명한 해를 더 오랫동안 보지 못함을 아쉬워했고….
밤에는 어두운 곳에서 귀신이나 짐승이 튀어나올까봐 이불 속에서 오돌오돌 떨다가….
방에 커다란 벌레라도 날아들라치면 귀신이고 짐승이고 다 잊고 벌레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냇가 갯벌에서 웅어를 발견하고는 두 마리나 잡아다가 세숫데야에 넣어서 세 달이나 넣어놨는데 장마철에 피난갔다 왔더니 어디론가 도망갔더라… (이녀석은 아가미호흡도 하면서 페호흡도 한다. – 정확히 페호흡인지 미꾸라지처럼 창자호흡을 하는 건지는 정확지 않지만..)
당연히 말조개랑 버들붕어, 우렁(우렁쉥이) 등등도 몽땅 잡아다 키워봤으며, 봄이면 개구리알 모아다가 우물가에 잔뜩 모아놨었다. (부화한 다음엔 당연히 다 죽어버렸지…만) 그리고 개구리 쫒아다니면서 잡아다가 뒷다리를 뽑아서(개구리들아 미안~) 껍질을 벗겨 잘 말려서 구워먹기도 했고…..
뒷동산에 올라가 매미 잡다가 쇄기에 쏘여서 하룻동안 퉁퉁 부은적도 있었고….
근처 간척지 갯벌에서 게를 잡으러 다니다가 결국 게를 한 마리도 못 잡고 옷만 잔뜩 버려왔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놀라 맨발로 뛰어나오셔서 내 옷을 벗기고 우물가에서 씯겨주시곤 하셨었다.
밭에서 들깻잎을 따면서 어머니에게 <고향의 봄> 1절을 배웠으며, 바로 옆 모래사장에서 붉은 녹덩어리들을 주워다가 작은 주머니에 꼭꼭 눌러담았었다. (이건 식물이 만드는 것이다.)
기타등등….

열 살도 안 된 내가 했던 일들……
요즘 이렇게 노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나?
이렇게 키우지 못하고 학원에만 보낸다면 어찌 상상력이 좋은 아이들로 키울 수 있겠는가?

– EBS 다큐프라임 <상상력에 빠지다>
제3부 “상상도 배울 수 있다” (2008.11.12)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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