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떨림방지기능과 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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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힙니다.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서 지금 블로그로 옮기면서 많은 부분을 보충해 넣었습니다만) 6 년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당시의 손떨림방지 기능은 발전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성능이 충분히 좋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기능이 좋아졌습니다. 심지어, 캐논 렌즈가 아닌 서드파티 렌즈조차도 이 글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손떨림방지 기능을 안 쓸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다만, 아래 예시 사진처럼 특별한 경우엔 최신기기도 손떨림방지 기능을 쓰기는 어렵다고 추측합니다.


글 쓴 날 : 2014.08.29

캐논 카메라 사용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다.

‘백마와 백마엘의 차이는 뭔가요?’
‘접사를 찍으려고 하는데 백마와 백마엘 중 어떤 게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이런 것이다.

‘우선 is유무가 가장 크겠죠…매크로는 is있음 편하긴 해요…그래서 싼 탐론90마로 ㄷㄷ’


여기서 백마와 백마엘은 모두 초점거리가 100 mm인 렌즈이다. 백마는 필터 지름이 57 mm이고, 가격이 50만 원대인데, 백마엘은 필터 지름이 67mm이고, 가격이 90만 원대이다. 여기에 마크로[접사]기능과 흔들림방지기능이 있고 없고가 가장 큰 차이이다. 흔들림방지기능은 카메라가 흔들려 사진이 뿌옇게 나오는 블러(blur)을 막는 기능으로, 보통은 ‘손떨방’이라고 부른다…. 손떨방의 정확한 명칭은 카메라 회사마다 다르다. 캐논은 IS(Image Stabilizer), 니콘은 VR(Vibration Reduction), 소니는 OSS(Optical SteadyShot)이다. 원리는 카메라 움직임에 맞춰서 일부 렌즈알을 움직이거나(캐논, 니콘의 경우), 센서를 움직인다(소니의 경우).

손떨방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문제를 만든다. 움직임에 느리게 작동하고, 때로는 안 움직일 때도 작동한다. 이러면 사진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몇 m 떨어져 있는 모델을 찍을 때 블러가 몇 px(픽셀) 정도 생긴다.

손떨방의 정말 큰 문제는 이정도 블러가 모든 사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삼각대에 결합해서 찍어도 흔들린다. (그래서 최신 렌즈들은 삼각대에 체결되면 스스로 감지하고서 손떨방을 끈다.) 이것은 시험 성적과 비슷하다. 학생 50 명이 100 점 만점의 시험을 봐서 전체평균 50 점이 나왔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100 점을 받는 학생이 한 명은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전체평균이 높아질수록 만점자가 많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진기를 손으로 들고 찍어도 가끔 한 번씩은 만점짜리 사진, 즉 블러가 없는 사진이 찍힌다. 연습할수록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그런데 손떨방을 켜고 찍으면 모든 사진에서 아주 약간의 블러가 있는 사진이 찍힌다. 모든 학생이 95 점을 받는 것과 같다.

95 점짜리 사진은 작게 인화하거나  장축 1000 px 정도로 줄여서 웹에 올릴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사이트에 올라오는 사진 대부분이 이정도 크기이다. 그러나 접사(Macro) 촬영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떨방이 작동해 생기는 움직임이 10 px 이상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정도라도 대충 쓸 수 있지만, 사진에서 블러를 찾아내시는 매의 눈을 가진 분들이 늘 있다. 반면 손떨방을 끄고 찍은 사진은 블러가 보통 몇십 px씩 나타난다. 하지만 가끔 깨끗한 사진이 얻어진다.

외장플래시를 써서 노출시간을 짧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보통은 좋은 방법이다. 노출시간이 짧아지면 손떨방에 의해 생기는 블러가 확실히 줄어든다. 그러나 손떨방을 꺼도 블러는 똑같이 줄어든다. 노출시간이 1/200 초만 되면 블러가 없을 확률이 1/3은 되고, 1/300 초면 거의 모든 사진이 블러가 없다. 즉 손떨방을 켜고 찍어서 약간씩 흔들린 사진을 얻을 필요가 없다.

피사체에 따라서는, 또는 찍기를 원하는 사진에 따라서는 노출시간 1/20~1/30 초를 유지해야 한다. 카메라를 흔들며 찍어야 할 때도 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찍어도 안 흔들린 사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손떨방을 켜고 찍으면 안 흔들린 사진을 얻을 확률은 ‘0’으로 수렴한다.

결론을 내보다.
전시할만한 수준의 사진을 원한다면 손떨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진실력도 늘지 않으니 오히려 독이다.
대충 쓸 사진이 필요하면 손떨방이 매우 효과적이다.


내가 초보였을 때 찍었던 사진 한 장을 살펴보자.

큰명주딱정벌레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큰명주딱정벌레 사진과 이 사진의 차이점을 비교해본 뒤에 아래 글을 읽어보자.

큰명주딱정벌레는 덩치가 꽤 크다. 그래서 확대촬영을 할 필요가 없다. 촬영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딱정벌레는 등딱지에 오목한 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홈 밑바닥에서 형광빛이 난다. 아마도 구조색일 것이다. 문제는 저 형광빛을 사진에 담으려면 등딱지 겉면이 홈 바닥보다 밝으면 안 된다. 등딱지가 검정에 가깝지만, 형광빛은 주변 빛이 밝아져도 일정정도 이상 밝게 빛나지 않기 때문에 검정 등딱지에서 반사하는 빛이 형광빛보다 쉽게 더 밝아진다. 홈 바닥만 밝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므로, 결국 이 형광빛을 사진에 담으려면 직광을 비추는 대신 노출시간을 길게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진은 플래시를 터트려도 노출시간을 짧게 만들 수 없다.(이 말은 플래시의 발광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카메라와 플래시와 피사체의 관계에 따라 결과가 매우 쉽게 틀려지므로 자동으로 설정할 수도 없다. 직접 찍어보면서 플래시의 적절한 밝기를 찾는 수밖에 없다. 즉, 형광빛을 사진에 담겠다고 결정한 순간 촬영 난이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더군다나 손떨방을 켜면 흔들려서 절대 찍을 수 없다.

이 사진의 촬영정보를 살펴보자. Canon EOS 7D 카메라로 M(Manual) 모드로 촬영했다. 개방시간은 1/60 초, 감도(ISO)는 이 카메라의 최대유효감도인 640이다. 조리개는 F/4.5이다.
촬영 당시에는 내 촬영실력 문제로 개방시간 1/60 초로 찍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지금이라면 노출시간을 1/20 초로 찍었을 것이다. 감도도 지금 쓰는 카메라라면 1250으로 찍을 것이다. 이렇게 해도 저 카메라를 감도 640으로 찍을 때보다 잡음이 더 적다. 이렇게 설정을 조금 더 극한으로 밀어붙여 얻어낸 여유를 조리개를 조여서 활용할 것이다. 위 사진을 보고 느꼈겠지만, 심도가 아무래도 좀 얇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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