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5 급이던 시절에 네오스톤이라는 바둑 사이트에서 dlq라는 분을 만나서 바둑을 배웠다. 모두 18 판의 지도기를 받았다.(처음 3 판의 대국은 기보가 남아있지 않다. 이 3 판은 전적이 패승패였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판 정도씩 배웠으니까 5 달 정도 동안 배웠다.
dlq 님은 열 명 정도의 사람을 모아서 바둑을 가르치셨는데, 대부분은 같이 배우던 분들의 대국을 보면서 공부했다. 아래 기보를 보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5 급이었고, 마지막에는 1 단이었는데, 마지막에는 실제로 4 단 정도의 실력이 됐었다. 대국수가 워낙 적어서 단급이 별로 안 올라갔던 탓에 실력과 단급은 차이가 많이 났다. (참고로 도중에 한국기원에서 공인 단증을 땄는데, 시작할 때 1 단 정도여서 그에 맞춰서 응모했기 때문에 1 단 단증을 탔다.) 참고로, dlq 님은 강6 단이었고, dlq 님을 지도하시던 씨오라는 분은 5급이셨다. (실제로는 강7 단이었는데, 아마도 프로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 출신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프로보다 더 강한 연구생이 즐비하던 시절이라서….)
대국 방식은 제한시간이 2 시간이었고, 1 분 초읽기가 5 개였나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첫 대국에서 5 점 접바둑을 뒀고, 매 대국마다 30 집 이상 차이가 나거나 불계가 되면 치수를 한 점씩 고치며, 30 집 이내로 차이나는 계가바둑이었을 때는 연속 3 판을 패하거나 승리하면 치수를 한 점 고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근데 난 바둑이 워낙 공격적이어서 계가로 끝난 판이 별로 없었다.)















이 기보를 남겼던 건 기보를 해설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홈페이지 용량이 몇 MB씩 주던 때라서, 기보 하나 설명하는 이미지를 올리지도 못하던 때였기 때문에 포기….ㅎㅎㅎ
dlq 님께 배우기를 그만둔 이유는 바둑에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바둑을 구경하거나 하다보면 다시 배우고 싶어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배우지 않았던 원인은 네오스톤의 과금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처음 유료화를 시도하던 때였다. 서비스를 유지해야 하니, 유료화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에 있었다. 그러니까 무료 사용자는 친구 등록을 해 놓아도 친구가 접속해 있거나 어떤 방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아도 찾아가기도 어렵고, 찾아가도 대국신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료 사용자는 아예 대국신청기능 자체가 막혀 있었다.) 바둑사이트는 기본적으로 SNS 서비스인데, 무료 사용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 유료화를 시도했던 수없이 많은 서비스 중에, SNS인데 교류를 막은 네오스톤과 질답 사이트인데 질문 보고 답변을 다는데도 포인트를 쓰도록 만든 한겨레 DBDic 서비스가 가장 이해가 안 됐다.)
당시에 인터넷바둑 최대 사이트였던 네오스톤이 그렇게 유료화를 시도하는 동안 라이브바둑과 오로바둑이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는데, 이 서비스들은 네오스톤보다 시스템도 더 좋았는데 무료였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이 두 서비스로 옮겨갔고, 나도 라이브바둑으로 넘어갔다. 네오스톤은 서버가 30 개도 넘게 필요한 서비스에서 1 개로도 여유로운 서비스가 되면서 쫄딱 망해버렸다. (나중에 넷마블에 인수되어 사라졌다.)
인터넷은 바둑계에 내린 축복이다.
이때 바둑계에서는 인터넷은 축복이라며, 앞으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고수도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바둑을 조금 둘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든데, 인터넷만 들어가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몰려다니고, 바둑을 배울 수 있는 고수도 즐비해서 좋은 대국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 1 년쯤 재미있게 지냈던 거 같다.
근데 내가 이후 계속 바둑을 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용자가 늘어나자 일베충 같은 놈들이 점점 늘어나서 예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사기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뭐 이것까지는 인간사회 어디나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바둑계였다.
바둑 사이트가 머니 시스템을 도입하는 막장 테크를 타서 종말이 보였다. (재미있는 게, 당시 가장 큰 바둑사이트였던 라이브바둑과 오로바둑 두 곳이 동시에 머니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아마 담합(?)이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머니 시스템이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기본적인 기능은 고수(대부분 프로)들이 대국할 때 사람들이 누가 이길지 머니로 배팅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시스템상 대국자에게 2%의 머니가 가게 되고, 배팅하는 사람들은 결국 머니를 모두 잃어서 빈털털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고수들 대국에 배팅하러 다닐 뿐, 바둑을 두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운영자를 불러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망할 게 뻔하니까 머니를 없애자고 했는데, 운영자가 ‘우리는 성공한 시스템으로 본다.’라고 답변했다. 그래서 아.. 곧 망하겠구나… 하고는 곧바로 바둑을 접었다.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듯이, 몇 년 뒤에 어떻게 변했는지 보러 다시 접속해 봐는데, 내 예상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돈을 모두 잃은 사람들이 고수한테서 머니를 돈 주고 샀다. 그러자 위 링크에서 볼 수 있듯이, 바둑은 두지 않고 포인트만 얻는 홀짝게임 같은 편법이 판을 치게 됐다. 이후에는 계정 사이에 머니를 교환하는 걸 막아버리자 아예 ID를 사고 파는 일이 일상이 됐다. (그러니까 고수가 대국해서 머니를 잔뜩 불린 뒤, 그 계정을 몇천만 원씩 받고서 팔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밑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어차피 대국에는 흥미를 잃은 뒤였기 때문에, 배팅은 안 하고 구경만 하거나 서비스 이용을 그만두었다. 이후에는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 이때 나처럼 바둑에 관심을 접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였던 게, 사이버 세상이었어도 프로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누군지 다 알았다는 것이다. 시스템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그런 짓을 하는 걸 아무도 막지 않았다. 뭐 원래 바둑계가 놀음판에서 출발했던 그 성향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이 바둑계에 축복을 내리려고 했으나,
바둑계가 자기 쪽박을 깨버렸다.
결국 바둑을 두는 사람의 수는 인터넷 초창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어딘가에서 바둑계가 어렵다는 소리가 나온다면, 너희들이 자초한 일 아니냐고 물어보면 된다.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아무튼 하드 뒤지다가 기보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글을 써 보았다.
ps. 씨오 님과의 대국

당연히 대패다!
네오스톤을 이용하던 때의 거의 마지막에 둔 5 점 접바둑인데,…..

사부 님과 씨오 님의 대국…. 이 두 분이 대국을 하면, 거의 항상 이 대국과 비슷하게 몇집 차이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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