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사망, 내가 바라본 그의 일대기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냥 그렇다.

그래서 그냥 지금 떠오르는 것들을 한번 쭈욱 적어보려고 한다.

이건희는 장남이 아니면서도 아버지 이병철에게서 삼성을 물려받았다. 이병철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위기에 몰렸는데 장남이 외면하자, 이건희가 혼자서 모든 책임을 독박으로 썼다. 사건이 해결된 뒤에, 이병철은 장남을 버리고 이건희를 후계자로 세우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그 이후 삼성가 사람들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직전 일이다.)

이건희는 사업적 수완이 꽤 뛰어났다고 한다.

사실 단기적인, 또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사실 별로였다. 그 예로, 이건희는 오디오파일AudioPhile로 잘 알려져 있다. 1990 년대에 우리나라에 있는 오디오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AV회사를 차린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바로 망했다. 이건희는 자기가 막귀임을 깨닫고 바로 사업을 접어버린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 있던 AV사업의 기반이 몰락해버렸다. 아남, 태광 등의 기존 AV기기 회사들은 삼성이 AV회사를 만들 때 기술자들을 빼았겨서 쪼들려가다가 IMF 때 완전히 망해버렸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이끄는 눈이 매우 정확했다. 삼성이 반도체, LCD 등의 시장을 선도하게 된 것은 대부분 이건희 덕이다. 비록 방법이 저열해서 카피캣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건희가 꼭 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사업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나라는 한참 경제적 풍요로움에 빠졌던 1997 년에 IMF를 맞았다. 사실 IMF는 우리나라의 실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외국계 자본 + 검은머리 외국인계 자본이 우리나라 국부를 빨아먹기 위해서 공작을 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검은머리 외국인 안에는 삼성도 포함돼 있지 않았었을까? 그런데 이 공작의 불꽃이 엉뚱하게 삼성 자신에게 튄다. 각 산업 분야는 사업구조를 간편화하는 압력을 정치권과 언론계에게서 받는다. 이건희는 꼭 갖고 싶어서 돈을 한참 쏟아부어 자동차 공장을 차렸던 차였다. 그런데 사업구조를 간편화 하라는 압력 때문에 자동차 산업을 포기하고, 지었던 공장을 르노에게 넘겨야 했다. (이IMF때 내가 군대에 있었다. ^^;)


이건희의 엇나감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건희는 이때부터 뭔가를 원하는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언론계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수조 원의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걸 정치인, 법관, 검사, 고위관료 등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삼성장학생의 시작이다. (이때 삼성전자가 내게 오라고 손짓했었지….) 이걸로 삼성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삼성은 치외법권으로 남아있다.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은 그걸 이용해서 상속을 편법으로 진행했다.

뭐 물론 그렇더라도, 삼성이 모든 것을 자기 입맛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래 이미지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 삼성이 우리나라 시스템을 미국처럼 만들어 돈을 쓸어담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삼성장학생만으로는 이건희 맘대로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막판에 자기 맘대로 성사시킨 일로는 평창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사실 삼성이 평창 올림픽을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개최하려고 한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소문이 처음부터 파다했다. 심지어 삼성과 일화라는 두 그룹이 평창 일대의 땅을 거의 다 사들인 상태라는 소문까지 난 상태였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이건희와 평창 (이미지 출처 : MK증권)

막판에는 추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래 이미지로 요약된다.

이미지 출처 : 딴지뉴스

그래도……………………….

이건희의 마지막 헌신은 과학계 입장에서는 참 의미 깊을 것이다. ‘쉬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직접 증명하기 위해서 병실에 들어가서는 절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쉬뢰딩거니’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갖게 됐다.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떠올려서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올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명예로운 별명까지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곳 이용자가 내 글을 보고서 별명을 지어줬다.)

이건희가 이그노벨상을 못 받은 채로 죽어서 참 안타깝다.

ps.
누가 이건희 병실의 문을 이리도 빨리 열었단 말인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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