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노출시간과 줄바꿈 조절하는 방법

옛날에 잠시 자막을 만들며 논 적이 있었다. 글쓰기를 연습하려는 목적이었다. 몇 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가져다가 수정하면서 공부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습관이나 글을 압축하는 걸 공부하는 데 좋았기 때문이다. 나름 재미있었다. 최소한 WB의 전담번역자 박*훈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최근 OTT 시장이 갑자기 넓어지다보니 자막 만드는 인력이 부족해져서인지, 자막의 품질이 나빠졌다. 그래서 넷플릭스Netflix 등에서 영화를 볼 때 무조건 말을 시작하면 자막이 들어오고, 말을 끝내면 자막이 꺼지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제대로 읽는 건 무리다. 그래서 자막을 수정하던 경험을 적어보려고 한다.

자막 줄을 바꾸는 방법

자막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직역하라는 것은 아니다. 직역한 자막은 하책이다. 의역을 하긴 하는데,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는 빠뜨리지 않고 전부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역하다가 정보를 누락하면 직역보다 나쁘다!

자막을 만들 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읽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는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이 글을 읽을 땐 특정 단어까지 끊고, 뜻을 해석하고, 다음 특정 단어까지 끊고, 뜻을 해석하고를 반복한다. 이때 어떤 특정 단어까지 끊어서 해석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따라서 자막을 만들 때는 관객의 노고를 줄여주기 위해서 글을 미리 적절히 나눠주는 것이 좋다. 엉뚱한 곳에서 나눌 경우에는 나누지 않았을 때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보통 끊어서 해석하는 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주어 – 목적어 – 서술어 등 중요한 문장성분
  2. 수식어 + 피수식어의 어구
  3. 생략된 말이 달라지는 지점

이게 나누는 기준의 기본이다.

1 번의 주어, 목적어, 서술어라는 문장성분은 자막을 받아들일 때 중요하다. 그런데 글에 어구나 수식어나 그런 자질구레한 게 늘어나다보면 어떤 게 중요한 말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주어, 목적어 같은 문장성분 바로 뒤에서 끊어줘서 읽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2 번도 비슷한 의미이다.

3 번은 우리말의 특징에 기인한다. 우리말은 생략이 많은 언어다. 자막이나 대사는 거의 대화체이니까 최대한 압축되어 사용된다. 그래서 주어 등 공통적인 것은 거의 생략된다. 그러다 보니 생략된 것이 바뀌는 순간이 되면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3 번은 이럴 때 나눠줘야 좋다.

나눠주는 방법은 자막이 표시되는 시간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쉼표를 찍거나 줄바꿈을 해줄 수도 있다.

자막 노출시간 계산 공식

자막 번역이 끝나면 이걸 화면에 얼마동안 뿌려줄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쉬운데,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노출시간 = 기본시간 + 어절의 수 × 읽는 시간

여기에서 기본시간과 읽는시간은 진짜 거의 상수처럼 취급해도 된다.

기본시간은 자막이 화면에 뜨면 관객은 자막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시선을 옮기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필요하다. 보통은 0.5 초 정도이다.

어절의 수는 보통은 띄어쓰기를 기준으로 한 글자 덩어리 개수를 말한다. 예외가 꽤 많다. 두세 단어라도 평소 자주 쓰이는 조합이라면 하나로 예외처리해야 할 경우도 있다. 낯선 단어가 나왔거나, 단어는 평범하지만 평소와 다른 뜻으로 쓰인다거나, 평소 쓰이는 단어 조합이 아닐 경우에는 완전히 예외처리해야 할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가 처음 쓰일 때엔 특히 많이 신경써야 한다.

읽는 시간은 각 어절을 해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어절이 너무 길면 두 어절 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보통은 각 어절마다 글자 수에 상관 없이 읽는 데 같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읽는 시간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읽는 시간이 길어진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자막을 최근에 우연히 찾아서 한번 본 적 있는데, 자막 읽기에 바빴다. 어떤 경우에는 멈추거나 뒤로 돌려서 읽어야만 했다. 만들 때는 여유있게 시간을 분배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어렸을 당시를 기준으로 만들어서 시간을 너무 팍팍하게 배정한 것 같았다. ㅜㅜ

ps.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에서는 채팅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나오는 설정이다. 채팅을 번역해 자막을 입히다보니, 읽기에 엄청 난해해져 버렸다. 그런데, 보는이가 자막을 다 읽었건 말았건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 글씨 색깔도 눈에 잘 안 띄고…. 큰 문제다! 그래서 매번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대여섯 번씩 재생을 정지시키고 읽어야 했다. 이건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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