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새덕후 님과 캣맘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는 새덕후 님이 1 월 28 일에 올렸던 한 영상에 대한 것이다. 기사를 이해하려면 우선 영상을 봐야 할 것이다.

캣맘들이 고양이를 불쌍히 여겨 밥도 주고, 물도 주고, 쉴 공간도 마련해준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제대로 된 고양이사랑일까?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밥과 물을 줘서 고양이가 편안해져 좀 더 쉽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이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고양이는 번식을 할 것이다. 처음에 몇 마리였던 게 몇십 마리가 된다. 그러면 이 고양이들은 삶이 평안할까? 당장 먹이터를 점유하는 고양이는 편안한 삶을 살아가겠지만, 이 고양이들이 낳아 키운 고양이들은 결국 먹이터에서 쫓겨날 것이고, 빈궁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캣맘이 약간의 자기만족을 얻고자 고통받는 수많은 생명체를 더 양산한다는 걸로 종결될 수밖에 없다. 그게 생태계의 작동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장 대부분의 캣맘이나 동물보호단체 모두 별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그것 또한 그들도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태계 안에서 고통받지 않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면 번식을 해서 결국 모두 고통받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동물보호단체가 넉넉한 상황이라면, 누군가가 그걸 보고 그와 조금 다른 동물보호단체를 또 만들 것이다. 모두 죽기 직전의 상황이 될 때까지….
기사를 조금 살펴보자.
동물보호단체들은 왜 반발한 걸까요? 비판의 핵심은 그가 길고양이에 대한 오해를 부추기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다는 건데요. 동물권행동 카라는 8일 ‘새도 소중한 동물단체로부터’란 제목의 영상을 통해 새덕후의 영상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대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캣맘(케어테이커)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영상이 비판받는 지점은 다양한데요. 영상의 핵심 내용인 △고양이와 새의 관계 △길고양이 급식 △중성화의 효용성 △보호활동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동무권행동 카라’라는 단체는 영상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덕후 님의 영상은 고양이와 새의 이분법으로 보는 컨텐트가 아니라 캣맘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기본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좀 심한 말을 하고 싶다. 심한 말, 심한 말~)
그렇다면 고양이 밥을 챙겨주면 사냥 행동이 줄어들까요? 고양이에게 영양을 더 공급하면 사냥 행동이 36%까지 감소한다는 해외 논문이 있지만, 국내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짓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일단 밥을 공급받은 고양이가 사냥을 덜 한다는 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그렇게 밥을 먹고서 번식하여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기사에서 언급한 수치대로 36%만큼 덜 사냥한다고 해도, 그 고양이가 번식해서 두 배로 늘어나면 아예 먹이를 안 줄 때보다 더 많은 사냥이 일어날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생태계 문제와 동일해진다. 이렇게 이해도 못하고 기사를 쓰는 건 김지숙(suoop@hani.co.kr) 기자님조차도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혼 없는 기사 채우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기사에서는 중성화수술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분명하지 않아서 지켜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근데 이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중성화수술을 한다고 해도 캣맘들이 밥을 주는 한 나머지 고양이들이 계속 번식할 거다. 당장 그 지역의 모든 고양이를 중성화수술을 해준다 쳐도, 고양이 밀도가 변하지는 않아서 사냥은 계속 일어나며, 당장 번식하지 않는다 쳐도 생태계에서 고양이의 평균수명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결국 번식할 수 있는 개체가 유입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 기사의 이 부분도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것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팀장은 “중성화율이 높아질수록 새끼 고양이의 수가 줄어든 것은 모니터링을 통해 증명된 내용이다. 지자체 중성화 사업 물량만으로 감소한 것이 아니라 돌봄 시민이 자발적으로 중성화에 참여해 실질적인 감소를 이뤄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길고양이전문 뉴스레터 ‘캣챠’도 “중성화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인간과 고양이가 공존하는데 중성화의 공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성화의 공을 이야기하지만, 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중성화의 공은 전혀 없다. 단지 시간을 지연시키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 효과가 있을 뿐이다. 중성화한 고양이가 살아있는 동안 번식속도가 조금 줄어드는…..
다음 부분은 또 어떤가?
카라 역시 “고양이(Felis Catus)는 매우 독특한 생태를 가지는 동물로 각인기의 경험에 따라 사람을 경계하기도 따르기도 한다. 사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양이가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고는 너무 인간중심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너무 인간중심적이라고 비판한다는데, 막상 자기들이 너무 인간중심적으로 되도 않는 소리를 내뱉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 사람들이 생각머리를 갖고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니면 밥벌이를 위해서 자기들도 아닌 건 아는데 그냥 떠드는 건지….
기사를 보면 계속 할 말은 있지만,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겠다.

이들이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 이들의 문제일까, 다른 사람들의 문제일까?
진짜 고양이가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면, 고양이를 본인이 직접 입양해서 자기 통제하에 둬야 하는 것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딱 하나다. 캣맘들이 자기들의 약간의 만족감을 위해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 이기주의는 인간 사이의 이기주의와는 뜻이 다르다….)
항상 논리적인 척 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왜 길냥이 이야기만 나오면 비이성적으로 변하는지, 난 그게 상당히 궁금하다.
ps.
안 그렇습니까, 김지숙(suoop@hani.co.kr)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