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과 2009 년에 썼던 글 두 개를 합친 것이다.
최근 우리말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이 각별한가보다. 단어 하나하나 틀리는 것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행동으로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 좀 지나치다 싶다. 특히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틀리다‘와 ‘다르다‘를 살펴보자.
이 논란은 이제는 자료를 찾을 수 없는, KBS가 2004 년 겨울에서 2005 년 봄쯤에 방송한 장애인을 위한 캠페인에서 이 두 단어의 뜻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이 표어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리라 생각한다. 몇 달 뒤에 우리가 잘못 사용하는 말들을 다루는 TV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고, 그 뒤부터 ‘틀리다’라는 단어를 ‘다르다’의 뜻으로 쓰는 사람들의 글에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뒤에 아래 내용이 추가됐다.
첫 번째, 국어사전에서 ‘다르다’와 ‘틀리다’의 뜻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국어사전대로라면 틀리다와 다르다는 분명 공통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언중 대다수는 틀리다를 다르다의 뜻으로도 쓰고 있고, 대다수는 그것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사람은 국어사전에 두 단어의 뜻이 명확히 다르게 나오므로, ‘다르다’와 같은 뜻으로 쓰는 ‘틀리다’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역으로 살펴보자면 국어사전이란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국어사전에 맞지 않으니 맞춰서 쓰자는 말은 국어사전 내용을 언어에 역으로 대입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실수가 포함될 수도 있고,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항상 변하므로, 국어사전은 우리말의 정확한 모습을 담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 따르는 언어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서 사회적/언어적인 의미에서의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근시안적인 걱정거리일 뿐이다. ‘장애자/장애인/장애우’ 와 같이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회 구성원의 생각이 바뀌어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식이 바뀌는 것이듯…. 언어도 문제가 있다면 언중의 생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면 해결될 것이다. 오히려 국어사전이 우리 언어생활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짜장면’과 ‘개발새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어학자들이 이 두 단어를 국어사전에 등재할 때 ‘자장면’과 ‘괴발개발’로 등재한 것은 현재의 언중을 무시하고 최소한 십수 년 전의 언어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맞춤법이 개정된 지금도 짜장면을 사용해야 하는지, 자장면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이 둘은 이후에 맞춤법이 바뀌었다.)
더 황당한 변화들도 우리는 이미 수용한 전례가 있다.
‘파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파리의 어원은 다들 아시겠지만 (아래아를 사용한) ‘팔’이다. 팔은 황당하게도 주격조사 ‘ㅣ’가 붙어서 ‘파리’로 표기된 것이 그대로 하나의 단어로 굳어졌다. 이처럼 언어의 변화가 일부 불합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언중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 불합리를 해결할 방법을 결국은 찾아낸다. 다만 변화가 너무 급격히 일어나면 언어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면 언중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므로(터키의 언어개혁을 참고하자.) 피하는 게 좋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큰 변화를 몇 차례 겪은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몽골어의 영향이 컸던 몽고침략기, 사회적 변화에 의해 언어적 혼란이 야기됐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본어의 영향이 컸던 영향일제침략기, 그리고 영어에 영향이 컸던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대 전환기 때 우리말은 크게 변했다. 그런데 이미 언중이 쓰고 있는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낱말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게 언어적 대변환일까? 천만에…..
두 번째, 일본어 違う가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뜻을 모두 갖는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제식민지 시절에서 일본어가 우리말에 영향을 주었거나 광복 후에 일본어 서적이 많이 번역 소개되면서 우리말에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영어의 ‘differ’라는 동사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현재 전체 언중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해서 쓰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혼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실렸던 ‘틀리다’ 항목을 살펴보자.

마지막 항목을 보면 [월인석보]에서도 틀리다가 다르다의 뜻으로 쓰였다. 국어학자는 이걸 보고는 발끈해서 잘못됐다고 써놓기는 했지만…. 이 한 줄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일본어나 영어의 영향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민족은 ‘틀리다’를 ‘다르다’라고 쓰고 있었던 것이다. 월인석보는 한글로 작성된 거의 최초의 문서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틀리다’를 ‘다르다’라는 뜻으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 20세기에서 15세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월인석보]를 썼을 수도 있다. (응?))
그리고 이 논쟁에서 또 한 가지 의문점이 존재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섞어쓰면서도 이 두 단어의 뜻을 전혀 혼동하지 않느냐는 문제다. 누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검토조차 해보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인지, 사람들이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틀리다’는 기본적으로 동사다. 그런데 ‘다르다’와 같은 뜻으로 쓰일 때는 목적어가 필요없는 형용사다. 몇 가지 예문을 살펴보자.
- 나만 틀린 옷을 입고 있다.
- 나만 다른 옷을 입고 있다.
- 나만 틀린 문제다.
- 나만 다른 문제다.
1번 예문은 2번 예문과 뜻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 때 ‘틀린’의 정확한 뜻은 “다른 옷과 틀리다.”처럼 목적어가 전혀 필요없는 형용사다. 그러나 3번 예문의 ‘틀린’은 “문제를 틀리다.”와 같이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는 동사다. 품사가 다르니 뜻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틀린’ 대신 ‘다른’을 넣으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뜻할까?
‘틀리다’에 다르다라는 뜻의 형용사 용법이 원래부터 있었는데, 반세기 전에 국어학자들이 단어의 뜻을 정리하면서 ‘틀리다’라는 뜻을 누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용은 변화가 아니다. 원래 우리말이 그랬던 것이다.
더 많은 주장이 계속 추가됐지만 내용은 이 두 가지와 비슷하다. 참고로, kbs의 장애인 캠페인 이전에는 서울대의 어떤 국어학자와 그 제자들만 이런 주장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다른 국어학자나 언중은 이 주장에 관심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중요한 주장도 아니고, 사실상 틀린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국어생활을 너무 사전에 억매여 따지면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의 뜻이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게 행하는 것을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ps. kbs 장애인 캠페인에 대해서….
대략 2006 년경에 겨우 알아낸 이야기이며, 2008 년에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땐 아무런 자료도 못 찾았다. 혹시 찾겠다는 분이 계실까봐 언급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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