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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친 날 : 2020.06.01
엄청 예전…..
그때 나는 물리학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던 때였다. 길거리에 [패왕별희] 포스터가 붙었고, TV에는 빨간색 복장을 한 장국영이 공연하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뭔가 상(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데,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엄연히 물리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장에 가서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8 년이 지났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신작 개봉이 대부분 미뤄지고, 사람들이 극장에 찾지 않자 고전명작을 재개봉하기 시작했다. [시네마천국], [로마의 휴일] 등 정말 다시는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이 개봉됐다. 그에 맞춰서 나도 열심히 극장에 갔다. (그래도 한참 극장에 가던 2006 년보다는 덜 갔지만….)
결국 유명한 중국영화 [패왕별희]를 (ku시네마테크에서)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재미있었다. 장국영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지금의 중국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 당시에 이 영화를 찍었던 첸 카이거 감독은 이제는 중국의 국뽕영화나 공산당 홍보영화를 찍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영화는 망했다. 참고로 중국영화 중에 최근 가장 흥행한 영화가 [유랑지구]라는 건데, 중국내에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봐줄만한 건 cg뿐이고 작품성은 바닥이다.
이 영화가 참 좋았지만, 그러나 또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리 때문이다. 챙챙거리는 중국 고유의 악기 소리… 이 소리 자체가 싫거나 한 건 아닌데, 이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귀가 아프다. 내가 중국사람이었으면 한평생 고통 속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귀가 아파서 결국엔 이어폰을 귀에 끼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귀가 꽤나 아파 겨우 봤다.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주인공 청뎨이는 창녀의 아들로, 엄마는 더는 돌볼 수 없자 강제로 경극 배우를 키우는 학교에 떠맏긴다. 그때부터 강제로 경극을 배우는 주인공…. 하지만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부르려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순응하고 따라부른다.
그 뒤부터 우희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는 청뎨이…. 항우 연기를 하는 돤샤오러우와 함께 배우로서 승승장구한다. 당시 시대가 시대인지라 집권권력층이 수시로 바뀐다.
국민당 – 일본군 – 국민당 – 국공내전기 – 공산당
공산당이 집권한 뒤로도 1966 년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가뜩이나 꼬일대로 꼬여있던, 청뎨이를 비롯한 경극배우 전체의 인생이 더더욱 꼬인다.
이후…. 1977 년이 되어 문화대혁명이 거의 끝난 뒤, 청뎨이와 샤오러우는 다시 패왕별희를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둘은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연습을 하러 갔다. 그때 황우를 연기하던 샤오러우는 청뎨이가 어렸을 때 틀리게 부르려고 고집피우던 특정 대사에 대해, 네가 그랬었다는 걸 환기시킨다. 추억을 떠올린 둘은 틀린 대사로 연습하면서………… 우희가 패왕의 검을 뽑아 자살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청뎨이가 검, 자기에게 길흉화복을 줬던 그 검을 뽑아서 자기 목을 그어버린다. 샤오러우는 혼자서 연기를 마무리한다.
영화 자체는 인생과 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 주관이 뚜렸하던 청뎨이는 심한 학대를 받으며 세태에 순응하게 된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경극을 공연하던 청뎨이는 영화 마지막에 공연연습을 하면서 샤오러우의 지적을 받아 예전에 주관을 고집하던 자기가 어땠었는지 떠올린다. 되짚어보니 자기 인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무의미한 인생… 더 살아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