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생각나는 선생님들

예전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많이 나아진 것 같기는 하다. 나처럼 피해 받는 사람이 그래도 많이 줄어들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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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 보니까 생각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 년 동안 받은 성적표 보면 패턴이 어느정도 일정하게 나타난다. 1 학기 첫 시험부터 2 학기 중간고사 볼 때까지 정도는 성적이 일정하게 나오는데, 기묘하게 마지막 시험인 기말고사만은 성적이 대폭 하락…. 그러니까 평소에 반에서 1~5 등 정도 하다가 기말고사만 보면 10 등 밖으로 밀려났다. 이 패턴이 7 년 동안 반복됐다. (중2 부터는 3 등과의 성적차이가 크게 나니까 더는 못하고서 3 등으로 떨어뜨리더라….) 이유는 말 안 해도 다 알 듯…

고등학교를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효명고등학교에 가려다가 지역 공립학교로 갔다. 학교 수준차이가 난다는 것이 바꾼 가장 큰 이유였지만, 처음 가려던 학교에 가면 또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 같다는 느낌도 큰 이유였다. 참고로, 중학교 때 체육선생이 원래 가려던 고등학교의 체육선생이었는데,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1 년 전에 학생들이 폭행하는 걸 못 참고서, 졸업식날 엄청나게 조져서 몇 달을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학교를 옮겨온 것이었다고 한다. 뭐 중학교로 옮겨와서 좀 나아졌느냐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하긴…. 학교 선도부들이 폭행하는 것이 학교의 공공연한 룰이었으니, 선생이 때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그럼 고등학교 때는 괜찮았을까? 뭐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공립학교는 원래 관리가 좀 빡빡하기도 하고….. 하지만 한 명은 안 괜찮았는데, 주인공은 별명이 뻥식이라는 교련선생이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우리반 전체를 학교 운동장에 세워두고는, 서울에서는 입시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 선생들한테도 내신 잘 달라며 촌지 싸들고 올 텐데, 이놈의 시골학교에서는 촌지 싸들고 오는 학부모가 한 명도 없다면서 일장연설을 했다. 이후에 촌지 들고 간 학부모가 있었을까?

고등학교 때 가장 열불나는 건 학교가 아니라 경기도 교육청이었다. 물리경시대회와 관련된….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금각초등학교로, 지금은 학생이 너무 없어져서 웃다리문화촌이라는 시설로 바뀌었다. 중학교는 성지중학교로, 학생이 너무 없어져서 지금은 한국관광고등학교로 바뀌었다. 고등학교는 평택고등학교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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