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무엇인가가 옮겨놓기 이전에는 항상 제자리에 있을 것 같은 금속이라는 물질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런데 금속도 계속 증발한다. 이에 대한 몇몇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1. 백열전구 필라멘트의 증발
에디슨이 필라멘트를 처음 발명해서 (그가 정말 필라멘트를 발명했는지 정확지 않지만…) 실험에 성공했을 때, 48 시간이 흐른 뒤에도 꺼질 생각을 하지 않자 일부러 전압을 올려서 필라멘트가 끊어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필라멘트의 수명은 이론적으로 무한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전구들을 보면 특별히 전압을 올리거나 한 것도 아닌데 곧잘 끊어진다. 왜 그럴까? 고온의 필라멘트에서 원자들이 튀어나오면서 필라멘트가 점점 가늘어져 부분적으로 저항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정 부분에서만 저항이 늘어나면 그곳에서의 발열량이 증가해 온도가 더 높아지고, 필라멘트가 더 빨리 증발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필라멘트는 일반적으로 금속 중 녹는점이 가장 높은 텅스텐(W)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변화에 최대한 녹지 않고 버티게 만들지만, 증발이 가장 많이 일어난 특정 부위는 영원히 버티지 못하고 녹아서 끊어진다.
필라멘트를 구성하는 금속원자의 증발은 증기압에 따라서 속도가 달라질 수가 있다. 증기압은 필라멘트를 구성하는 금속이 이외의 기체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초기 에디슨이 개발한 전구는 진공이었지만, 그 후 개량된 전구는 질소(N2)나 0족 원소인 네온(Ne), 아르곤(Ar) 등으로 채워져 있다.
2. 오래 쓴 형광등의 흑화현상
형광등을 오래 쓰면, 형광등 필라멘트의 양 끝에 검은 점이 생긴다. 이런 현상을 흑화현상이라고 부른다. 검은 점은 검어질수록 점점 더 빨리 검어지며, 결국에는 필라멘트가 끊어진다. 필라멘트가 형광등 가운데에 위치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흑화현상이 더 쉽게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자연광이라고 불려지는… 삼파장램프도 예외는 아니다. 도대체 왜 형광등에는 검은 점이 생길까?
하나의 형광등에는 필라멘트가 두 개 있다. 두 필라멘트에 다른 전압이 가해지면 한 쪽의 필라멘트에서 튀어나온 전자가 전기장을 따라서 반대쪽 필라멘트로 날아간다.
그런데 형광등의 필라멘트도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보다는 낮지만 마찬가지로) 온도가 높아지고 가열된 필라멘트에서는 금속원자들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튀어나온 금속원자들은 열에 의해서 금속 표면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방향성 없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필라멘트는 길쭉한 모양이다. 이런 모양 때문에 필라멘트에서 튀어나오는 금속원자가 날아갈 때 특정한 방향성이 없더라도 전체적으로 튀어나가는 금속원자 필라멘트의 길이 방향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튀어나간 금속원자는 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형광등 내부의 기체분자나 중력의 영향에 비교적 자유롭게 똑바로 날아간다. (형광등 내부에 형성되는 전기장의 영향도 받지만, 전자보다 수십만 배 무거운 금속원자는 영향을 적게 받는다.) 결국 튀어나온 금속원자들은 형광등의 유리벽에까지 날아가서 그곳에 달라붙는다.
원래 형광등 유리벽에는 형광물질이 칠해져 있지만, 금속원자가 유리벽에 많이 충돌할 수록 형광물질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전자들이 형광등 속의 기체분자와 충돌하면서 만든 자외선이 형광물질에 충돌하는 양이 적어진다. 겉에서 볼 때 그 부분은 서서히 검게 변한다.
필라멘트 양 끝이 검게 변할수록 필라멘트에서 더 많은 금속원자가 떨어져 나온 것을 뜻하므로 필라멘트는 굵기가 불균일해지고, 백열전구의 필라멘트와 마찬가지로 특정 부위가 녹아서 결국 수명이 끝난다. (그러나 백열전구보다는 온도가 훨씬 낮아서 필라멘트에서 증발하는 금속원자가 적으므로 그만큼 형광등의 수명이 길어진다.)
원리상으로는 검은 점이 안 나타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형광등 제조업자들은 검은 점이 나타나지 않게 보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작단가가 올라가 비싸지고, 수명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서, 그렇게 만들 필요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외려, 검은 점을 보고 사용자들이 형광등을 교체할 시기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게 장점일 수 있다.
ps. 2021.11.14 추가 : 댓글의 짱구아빠 의견에 대해서
짱구아빠 님의 Sputtering 현상에 대한 댓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아르곤(Ar)이 관계된다는 점을 빼면, 맞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점은, 필라멘트에서 원자가 떨어져 나오는 이유를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현상과 짱구아빠 님이 말씀하신 현상은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물론 형광등에서는 아르곤이 아니라 수은이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가 결과에 더 많이 기여할 것인지는 판단이 쉽지 않다. (실제로 계산해보지 않는 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 후, 긴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짱구아빠 님이 말씀하신 Sputtering 현상이 더 많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됐다. 그 결과는 형광등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걸 잘 설명해준다. (근데 검은 점이 생기는 흑화현상은 설명할 수 없다. 내가 Sputtering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ps. 형광등은 왜 깜빡이는가?
형광등에 걸려있는 전기장은 전력회사에 의해 제공되는 교류에 의해서 형성되므로, 교류의 전압 방향이 바뀌면 형광등 속의 전자의 운동방향도 바뀐다. 운동방향이 바뀌어도 형광등이 빛나는 것은 똑같다. 다만 전기장의 방향이 바뀌는 동안 전기장이 약해지고, 그 시간 동안은 전자가 가속되지 않으므로 형광등이 빛나지 않는다. 빛을 내지 않는 시간은 교류가 한 주기를 거치는 동안 두 번 있게 되므로, 교류 주파수보다 두 배만큼 형광등이 깜빡인다. 이 깜빡임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형광등 밑에서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 손이 끊어져서 보인다.
삼파장램프 또는 자연광램프는 시력보호를 위해서 이 깜빡임을 줄인 제품이다.
3. 진공에서의 Lenz의 성능 저하
우주 같은 진공에서 사용하는 굴절망원경식 렌즈를 생각해보자. 렌즈를 금속 통으로 고정시키고 그 끝에 광학 감지기를 설치한다. 관측된 빛은 렌즈를 통해 입사해서 광학 감지기를 통해 전기신호가 되어 지구로 전송된다.
그런데 우주에 올라가 있는 망원경의 금속은 원자들이 조금씩 계속해서 증발하고 있다. 이 증기가 우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겠지만, 통 안에서 발생한 증기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변의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다. 망원경의 렌즈 표면에도 금속원자가 달라붙는다. 결국 시간이 오래 지나면 망원경의 성능이 전체적으로 저하될 것이다.
실제 우주공간에서 사용되는 망원경은 굴절망원경이 아니라 반사망원경이다. 하지만 반사방원경도 광학 감지기 부분에 유리가 사용될 것이므로 금속 증기가 달라붙는 현상(증착)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점차 그 감도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망원경의 거울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 영향은 상당히 미미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주공간에서 30 년도 넘게 작동한 허블 우주망원경도 연료 공급, 수선 등을 수차례 받았지만 금속원자가 달라붙는 현상의 영향은 측정되지 않았다. 이는 금속 증기가 많이 증발하기에는 비교적 온도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4. 금속의 냄새
옛날에 도둑을 소재로 한 프랑스 영화에서 도둑이 귀중품을 찾으면서 금의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혀끝에 착 달라붙고, 쫀득쫀득한 느낌의 냄새가 난다구 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일반인들은 냄새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므로 알기 힘들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금속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 있으려나? 나는 쇠, 특히 철(Fe)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 마치 피 냄새 같다! 철은 향이 강해서, 철 도막이 막 잘린 곳을 코에 대면 쉽게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금속은 냄새를 맡기가 힘든가보다.
5. 수은의 증기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형광등 안에는 수은 증기가 들어있다. 수은은 증기압이 다른 금속보다 높아서 형광등에 넣어도 주변의 다른 물질과 결합하지 않고 증기 형태를 계속 유지한다.
형광등을 켜면, 필라멘트에서 떨어져나온 전자는 전기장을 따라 가속되다가 일정한 속도 이상을 갖게 된 뒤 수은 증기의 원자와 부딪히면 수은 원자 내부에 있던 전자를 떼어낸다. 물론 원래 날아가던 전자도 같이 튕겨져 나온다. 이렇게 하나의 전자는 수은 원자와 부딪힐 때마다 두 개의 전자가 되고, 형광등 길이만큼 이동하는 동안 서너 번 이상 수은 원자로부터 전자를 떼어낸다. 이렇게 전자와 수은원자가 충돌할 때 자외선도 함께 방출된다. 충돌하면서 전자의 속도가 줄어들면,그 운동에너지 차이를 다른 전자를 떼어내는 데에 쓰고, 나머지를 전자기파(빛)로 방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방출된 자외선은 유리관 표면의 형광물질에 쪼여지고, 이때 형광물질은 가시광선을 방출한다.
수은 원자를 형광등 안에 넣지 않는다면 전자가 직접 형광등 벽이나 형광물질에 부딪히면서 방출되는 빛만 보이게 되므로 수은원자가 들어있는 경우보다 수~수십 배 어두울 것이다.
참고로, 수은은 우리 몸에 매우 유독해서 형광등을 분리수거 해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하자. 수은에 중독되어 미나마타병에 걸리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ㅜㅜ
맺음말
물리학의 보제-아인슈타인 통계에서 금속원자와 성질이 비슷한 보존은 낮은 확률일지라도 충분히 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보존들 사이에 있던 에너지가 확률적으로 하나의 입자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이 증발하는 것도 금속 덩어리 속에 분포하던 에너지가 하나의 금속원자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큰 에너지를 갖는 원자가 금속 밖으로 튀어나가면, 이 원자가 금속 안에 머물게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금속 원자와 같은 원리로, 자유전자도 금속 외부로 튀어나올 수 있다. 자유전자는 보존이 아닌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금속원자와 성질이 다르지만, 페르미온이 따르는 통계인 페르미-디렉 통계도 보제-아인슈타인 통계와 비슷하게 한 입자에 큰 에너지를 몰아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실생활에서 빈번히 사용된다. TV 브라운관의 전자총도 고온으로 달궈진 세슘(Cs)이 자유전자를 밖으로 방출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기기이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 전에 쓰였던 진공관도 마찬가지.
그러나, 금속의 녹는점이나 끓는점 등을 고려하면, 실온에서는 기체로 증발하는 걸 바로 알기는 거의 힘들 정도로 증발하는 양은 매우 적다.
가끔 이렇게 올라오는 과학포스팅..ㅋ
좋아해요. -ㅅ-/
과학 월간지 보는 느낌…ㅎㅎ
고등학교때는 학교에 비치되어있어서 자주 봤는데;
감사합니다.
과학글은 사실 쓰기도 힘들고, 소재, 주제를 잡는 것도 힘들어서 별로 못 쓰고 있답니다. ㅜㅜ
작은인장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역시 좋은글이네요..ㅎ..이건 별 상관없는 애기인데..냄새맏기가
아니라 냄새맡기가 옳은 표현 ㅡㅜ::암튼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관심이 있어서 글을 자세히 읽어 보았더니, 잘못된 부분이 좀 있는것 같습니다.
일단 형광등의 양끝단의 검게 되는부분은 백열전구와 형광등의 원리가 전혀 틀리기 때문에 백열전구의 현상을 적용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형광등의 양끝단이 검게 변화하는것은 cathode부분에 이온화된 Ar입자가 Sputtering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적인 조명시설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으며,
백열전구와 같은 필라멘트 전류를 흘려보내서 열복사를 일으켜 밝게
형광등은 위에 적은 것과 같이 방전(discharge)을 통해서 밝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