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스타크래프트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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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크게 봐서 두 가지 게임이 존재한다.

그 첫 번째 게임은 바둑으로 대변되는 게임이다.
바둑의 특징은 승패를 떠나서 조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물론 항상 조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실력과 내 실력이 비슷할 때 조화를 맞추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기에 조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두터움과 엷음, 공격과 수비, 실리와 세력 등등……
그래서 바둑을 둘 때는 내가 잘 해서는 이길 수가 없다. 이미 전문 프로기사들의 수준에 오르면 수읽기가 매우 정교해져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프로기사들도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절한 형세판단과 이를 기반으로 해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기방법이다.

두 번째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로 대변되는 게임이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실수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잘 해야 하는 게임이다. 정찰, 건설, 전투의 삼박자에 운도 한 몫 거든다. 내가 뭔가 한 가지를 잘 하면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고, 이러한 것을 몇 가지 하면 게임을 이길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바둑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고, 결국 내가 잘 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경기방법이다. 이것이 바둑과 다른 점이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곰곰히 하다보니 결론은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로 양분되는 세상의 게임들이란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실생활 속에서의 게임들도 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내가 잘 해야 되는 것과 내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어렸을 당시만 하더라도 실수를 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바둑과 같은 세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아마도 IMF 이후인 듯)부터 내가 더 잘 해서 상대방을 꺾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 같이 변해가는 세상은…. 좀 더 삭막한 것이 아닐까?

글 쓴 날 : 2007-08-25 03:37


이 글은 정말 오래 전에 쓰여졌다. 그런데 왜인지 숨김 처리가 되어있던 걸 발견했다. 그동안 스타크래프트는 (어떤 놈이 승부조작을 하는 바람에….) 폭망했고….. 바둑은 인공지능 덕분에 다시 한번 스타크래프트 유형의 게임으로 변했다.

바둑기사는 인공지능에게 두 점을 깔고도 어쩌다 한 판 이기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승률이 반반 정도 되려면 3 점을 깔고도 덤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기력이 강해졌다. (처음 등장한 인공지능인 알파고보다 지금 쓰이는 인공지능들은 치수 1.5 점 정도는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리고 프로기사도 그만큼 강해진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둑기사도 인공지능의 수를 공부하지 않으면 기력차이가 나버리게 됐다. 스타크래프트처럼 각 기사마다 정보량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을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는 바둑기사 사이에서는 모든 정보가 이전의 바둑세계보다 더 평등하게 공개돼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둑기사는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다.

  • 이창호 9 단은 그냥 인공지능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수를 구사한다. 결과적으로 평균점은 낮아졌지만, 최고점은 여전히 인공지능보다 뛰어남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 이세돌 9 단은 한국기원을 은퇴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기원의 모순과 부정을 참지 못한 것이지만….
  • 박정상 9 단은 철저히 인공지능을 연구했고, 지금도 정상급 기사로 통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에 오히려 기력이 더 강해졌다.
  • 물론 가장 강해진 기사는 신진서 9 단으로, 막 인공지능이 등장했을 때 프로가 된 기사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가 생겼다. 일부 신진기사들은 엄청 강해졌는데, 대다수의 신진기사들은 상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건 무엇을 뜻할까?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공부방법도 맞춰서 변해야 하는데, 신진기사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내 생각에는…..
진짜 강한 바둑기사는 앞으로 몇 년 지난 뒤에야 등장할 것 같다.
인공지능 학습방법이 좀 더 효율화되고, 애초에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배운 기사들이 나올 때…..

6 comments on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의 차이점”

  1. 거꾸로 생각해도 딱 맞겠네.. 바둑은 내가 잘해야 하는 게임~ 스타크래프트는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게임~ 결국 그게 그거 아닐지…. ^^

    1. 바둑은 두 기사가 모두 실수를 하지 않으면 승패가 날 수 없는 게임입니다. 정보가 다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승패가 결정되기 위해서는 두 기사 중에 더 적은 실수를 한 기사가 이기는 게임이죠.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는 두 게이머 모두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승부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물론 가끔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게임도 있긴 합니다만..) 한 쪽이 정찰을 적절히 수행한다던지 등등…..

      밑의 pequt님 말씀처럼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두 게임이 반대 성격을 갖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2. 요새 스타크래프트는 초반에 극단적인 빌드를 골라서 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엔 끝장을 본다기보다,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그냥 지지 않는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늘어난다고 하네요.

    점차 바둑처럼 다 알려진 게임 쪽으로 다가간다는 뜻이겠죠 아마도.

    1. 아마도 유리한 상황에서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유닛들 다수 잃고 지는 경기를 하지 않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의의 일격을 대비한채 안전빵의 전략을 세우는 게이머들이 늘어난다는 뜻이겠죠. 바둑도 아직 연구중인 불명확한 부분에서는 프로기사들이라 할지라도 그런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정보가 다 공개된 상황과 공개되지 않은 상황의 차이로 말미암아 두 게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죠. 만약 유리하다고 안전빵을 선택해 버리고, 지는 쪽도 못지않은 대비를 한다면…. 어느 한 쪽도 상대를 밀어버리고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될테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밀어버려야 하는 것이 또다른 차이점으로 작용….

      하여튼 제가 보기엔 두 게임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확연하네요. ^^
      특히 초반에 끝장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둑에서는 초반에 끝장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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