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No comments

생명 진흙기원설
물 속에서 성장하는 판상 점토광물이 있다. 이 점토광물은 쉽게 얇게 갈라지며, 갈라진 점토광물은 물에 의해 여기저기로 떠내려간다. 이 점토광물은 물에 녹아 있는 여러 성분으로부터 점토성분을 추출해서 새로운 점토층을 만들어 낸다. 이 점토층은 점점 커지다가 갈라지고 쪼개져서 다시 처음처럼 되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을 수억 년 동안 반복하면서 점토광물은 추출이 잘 되지 않는 점토 함유량을 점차 줄었고, 대신 성장과 복제가 쉬운 유기물이 늘어나게 되었다. 점토광물이 마지막 점토성분을 토해내던 바로 그 때 우리가 평소 보던 생명이 시작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생물학에 대한 일반과학 책에서 본 내용이다. 생명과 관련된 수준 높은 책이었다. 고등학교 생물2 교과서에 나오던 생명 기원설인 코아세르베이트 설과 비교한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론처럼 생명 기원설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기원설이 있다. 이런 이론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일까?
2008년, 프리온(prion) 때문에 촛불집회가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프리온은 우리 몸 속에 존재하는 단백질인데, 변형되면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 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프리온은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진화(?)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변형된 프리온(이하 그냥 프리온으로 기술)은 생명일까? (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기본전제로 대상이 생명이어야 한다.)
이 이외에도 생명에 대한 다양한 논란거리가 있다. 식물 탄저병 병원균은 흰 분말로 순수하게 추출된다. 이 분말을 식물에 뿌리면 탄저병에 걸린다. 물론 탄저균뿐 아니라 다른 균도 순수하게 추출된다. 그렇다면 추출한 흰 분말을 생명으로 불러야 하는가? 상식으로는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러분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황우석 박사의 인간배아복제에 대한 문제를 밝혀냈었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도 촛불정국 때 프리온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그곳의 많은 사람은 프리온을 생명이 아닌 단백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친구가 내게 프리온에 대해 물었을 때 생명이라는 표현을 썼더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만…..)

프레온이 생명인지에 대한 내 물음에 생물에 관련된 연구소에 다니시는 미투데이 키위양도 생명으로 볼 수 없다고 답변해 주셨었다.

생물학을 연구한 사람이 갖는 생명의 정의에 대한 의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명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자.

생명의 특성
1. 조직이 갖춰져 있다.
(형태에 상관없이) 외부와 구분되는 조직을 갖고 있다. 조직에는 자신을 유지보수하고, 엔트로피를 유지하고, 번식을 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2. 자기복제를 한다.
생명은 영원히 살아갈 수 없으므로 자기와 같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 후손에게 생명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져야 한다.
3.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주변환경의 변화에 대응한다. 그리고 대응은 환경에 영향을 줌으로서 되먹임(이머전스)을 발생시킨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하나의 개체 수준의 반응과 집단 전체 수준의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4. 진화한다.
생명은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진화한다. 진화는 자극에 대한 반응과 다르게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자기복제를 통해 남겨진 후손에게도 전달한다.

물론 생명 특성은 세부 구성요건까지 생각한다면 매우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의 네 가지로 특징지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의 네 가지를 곰곰히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과는 거리가 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에 나와 있는 이야기도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생명의 단위
이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해 봅시다. 홑세포, 곧 세포 하나가 따로 있다면 생명을 지니고 있나요? 우리 몸의 세포가 하나 떨어져 홀로 있어도 살아 있나요? 그런 원생생물이라는 것이 있지요. 아메바나 짚신벌레 같은 것 들어 봤어요? 이들은 세포 하나로 구성된 홑세포생물인데 당연히 살아 있다고 봐야겠지요. 생명의 다섯 가지 속성(주석 : 위에 언급한 네 가지 생명의 특성에 물질대사를 한다는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다.)을 모두 만족합니다. 짜여 있고 물질대사도 하고 번식하고 외부 자극에 대해서 응답도 하며, 변화도 합니다. 그러니까 홑세포도 살아 있는 것 같네요, 동의해요? 그런데 우리 몸의 세포 하나가 떨어져 나가 홀로 있어도 정말 살아 있어요?
그러면 바이러스는 어떨까요? 바이러스도 짜여 있지요. 대체로 디엔에이에 담긴 유전정보와 이를 둘러싼 흰자질 외투로 이뤄져 있습니다. [디엔에이 대신 리보핵산, 영문 약자로 아르엔에이(RNA)를 지닌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보통 디엔에이에서 아르엔에이로 흐르는 정보의 이동을 거스른다 해서 레트로바이러스라 부르는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간면역 결핍바이러스(HIV)가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번식도 합니다. 물론 외부 자극에 응답도 하지요. 변화도 하니까 살아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물질대사는 하지 않습니다. 에너지대사가 없으므로 살아 있다고 말하기 난처하네요. 그래서 환경이 좋지 않으면 유전정보를 둘러싼 흰자질의 결정이 되는데 유전정보나 흰자질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심지어 흰자질 외투도 없이 더 간단하게 리보핵산만으로 이뤄진 바이로이드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냥 분자일 뿐입니다. 수소, 탄소, 질소, 산소 따위가 결합되어 있는 분자이니 도저히 살아 있다고 여길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생체에 들어오면 자기 유전정보를 이용해서 번식하고 일반적으로 생명이 보이는 여러 성질을 대부분 나타냅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생명이냐 아니냐 말하기는 어렵네요.
혹시 여러분 프리온이라고 들어봤어요? 소가 미치는 미친소병(광우병)은 들어 봤지요! 병의 공식 이름은 소해면상뇌증(BSE)이라고 합니다. 뇌가 해면, 곧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개가 미친개병(광견병)에 걸리면 날뛰면서 막 물게 되는데 사람도 이에 물리면 바이러스를 통해 옮습니다. 소도 미치면 (그렇다고 사람을 물지는 않지만) 성질이 사나워지는데 결국 걷지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는 앉은뱅이가 되지요. 그런데 그 소의 뇌나 척수, 그리고 환률은 작지만 피와 고기를 먹으면 사람에게 옮을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식 이름이 변종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인 인간광우병에 왜 걸리는지 이유를 잘 몰랐는데 알고 보면 놀랍습니다. 병에 걸린 소의 프리온이라는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두뇌로 가면 번식합니다. 그런데 프리온의 정체는 다름 아닌 흰자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치 생명체처럼 번식하지요. 프리온이 일단 두뇌에 들어와서 증식하면 두뇌의 신경세포를 마구 파괴해 버립니다. 신경세포가 파괴되면 두뇌가 망가지니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몸의 조절도 하지 못하므로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온은 과연 생명일까요? 프리온은 단지 흰자질입니다. 유전자고 뭐고 없지요. 다른 환자질과 마찬가지로 적절하게 접혀서 고유구조를 가졌을 때는 정상적 구실을 합니다. 나사선처럼 꼬불꼬불한 부분이 많지요. 그런데 변성되면 판 모양의 부분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변성된 프리온은 뇌세포를 치명적으로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런 것이 생기면 주위 프리온을 같은 형태로 변성시키지요. 말하자면 ‘번식’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물질대사는 물론 유전정보도 없으니 아무래도 생명이라 볼 수는 없겠지요.
바이러스나 프레온의 예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대상이 살아 있는 것인지 판단할 때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살아 있음, 곧 생명이란 환경과 결부해서 판단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지요. 이것은 사실 바이러스나 홑세포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살아 있나요? 하나의 개체로 보면 누구나 다 살아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살아 있다는 것은 현재 환경에 국한되어 말하는 겁니다. 만약 그대로 환경이 바뀌어 바다 깊이 들어가든지 달이나 화성으로 가든지 남극 지방으로 간다면 여러분은 살아 있을 수 없겠지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경과 함께 말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홑세포나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는 그 중요성이 명백하지요. 그래서 보생명이라는 표현을 쓰며, 한편 개체 하나하나는 낱생명이라고 합니다. 개별적인 낱생명은 독립적인 생명으로서 기능을 가질 수 없고 보생명과 같이 합쳐서 이른바 온생명을 이룹니다.
– 481~483 쪽

위 인용문을 요약정리하면 생명은 환경을 포함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생각해 보자. 여자 주인공은 프로그램과 결합해서 인터넷 속에서 살아가는 프로그램 같은 존재로 변한다. 이렇게 변한 여자 주인공은 생명인가? 확실한 것은 생명의 특징인 자극, 번식, 조직, 진화의 측면을 모두 만족할 수 있다. 다만 형태가 달라서 기존 생물학에서 정의하는 생명 정의에 주인공은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자주인공은 생명이 아니다.

여기서, 생명의 특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생명은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유전자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DNA나 RNA를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나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면 모든 생명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변 단백질을 자기와 같은 단백질로 변형시켜서 결국 번식과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단백질을 생성하는 DNA는 소나 사람의 것을 이용하는 셈이다. 최무영 교수의 주장대로 생명의 정의를 환경까지 포함해야 한다면 프리온을 생명이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프리온은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연상태에선 소 10만 마리에 한 마리 정도가 프리온에 걸린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것이 인간이 사료를 대량으로 유통하면서 갑자기 번성하게 됐다 프리온 입장에서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에게 알려진 프리온 비슷한 질병도 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포어(Fore)족의 식인(cannibalism)풍습에 의해 전파되는 쿠루(kuru)병이 대표적인 질병이다.(1957년 오스트레일리아 공중보건부의 의사로 있던 빈센트 지가스와 미국 국립보건원의 칼턴 가이두섹 박사가 파푸아뉴기니의 식인풍습이 있던 포어족에서 발견한 질병이다. 이 질병은 조상의 뇌를 꺼내먹는 풍습에 의해 전파되는 감염성 질병이다. 원인이 알려져 식인풍습이 금지되고, 12년 이상 흐르자 구루병은 거의 사라졌다. 가이두섹 박사는 이 발견으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이렇게 프리온이 번식과 진화 등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존 생물학의 기준으로는 생명이 아니다. 하지만 프레온은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동일하다. 생명과 무생물의 중간이라고 이야기하는 박테리오 파아지같은 것은 또 어떠한가?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생물과 공통점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생명과 무생물에 대한 구분은 매우 모호한 예가 많다.
결국 생명에 대해서 현재 생물학계는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의 본질에 대해 오히려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더 활발히 논의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리학이나 수학을 공부/연구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는 못하므로 논의가 제한적인 편이다. 이에 대해서 생물학을 연구하고 계신 분들이 문제를 좀 더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1960년대 들어서야 간단하게 정의됐고, 물리학은 그보다도 더 뒤에 정의됐다. 이처럼 현대에 들어서야 학문의 정의가 이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명도 아주 간단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네 가지나 다섯 가지 기본요건이 필요한 것이 생명의 정의라면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생물학계가 너무 현재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것 같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