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도중에 찍은 사진 보내주기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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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작년에 동남아 여행을 다녀올 때 찍은 사진이다. (비가 오는 우중창한 날 뒤로 걸어가며 찍은 것이었으니, 사진이 흔들린 건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것을 이메일로 보내주다가 생각나서 이 글을 써본다.


여행을 하다보면 서로 사진을 찍게 되고, 사진을 찍으면 보내주기 위해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여행이 끝난 뒤에 보내주게 된다.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테고, 나도 당연하길 바라는데,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여행하는 와중에 만난 분들의 사진을 찍게 되는 경우는 다양하지만, 대략 세 가지가 가장 많다.

첫째는 내 주변에 그냥 있어서다. 길을 가는데 내 앞이나 뒤에 그 사람이 있으면 사진을 찍게 되거나.. 내 사진 안에 그 사람이 들어있는 건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둘째는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을 발견해서 찍어도 되냐구 묻고 찍는 경우다.

셋째는 그냥 같은 관광상품을 이용하는 경우다. 계속 같이 다니게 되니까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는 이상 사진을 안 찍히기 힘들어지며, 보통 수십 수백 장을 찍게 된다.

이럴 경우 나중에 사진을 보내줄 테니 연락처를 달라고 이야기하거나, 또는 상대방이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해오는 경우가 대략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근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통계가 나온다.

  • 상대가 여성인 경우 거의 100% 연락처를 준다. (연락처를 안 준 경우는 손안에 꼽힌다.)
  • 상대가 남자인 경우 거의 100% 연락처를 안 준다. (연락처를 받아본 게 몇 번 안 된다. 생각해보니 나도 날 찍은 사람에게 보내달라고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근데 연락처를 준 경우에도 받은 적이 없네…ㅜㅜ)
  • 상대가 연인인 경우 100% 연락처를 준다. (안 준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바로 한국에 사는 한국인 여성이었을 경우……

  • 찍지 말라고 강하게 거부감 표명….. (외국인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을 지우라거나 하는 경우…. (가능하다면 지워준다.)
  • 몰래 사진을 찍었다며 관리자에게 연락하는 경우….

내가 한국인 남자여서 그런지, 이런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분 중에 가장 재미있는(?) 반응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을 잘 다녀왔다. 같은 일정을 짜서 몇 일 같이 다닌다거나…. 그렇게 다니면 하루에 찍은 사진 크기가 (jpg로 변환한 것으로) 몇 GB를 넘어버려서 메일로 보내주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나자고 한다. 예전에 파노라마 합성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글에서 올렸던 사진(아래↓)도 그래야 했던 사진이다. 당시 카메라가 아무리 크롭바디(Canon EOS 7D)였다고 해도, 48 장을 합성한 사진이라면 3층 건물 벽면을 채울 정도의 크기가 되니까 용량이 몇백 MB가 된다. 저 당시 사흘 동안 같이 다녔기 때문에 몇 GB의 사진을 보내줘야 했다. 당시는 대용량메일 서비스가 막 생기던 때라서 메일로 보내는 것은 무리였다. 한 열 개쯤으로 분할압축하여 하나씩 업로드하여 메일로 보내고, 지우고 다시 업로드하여 보내고를 반복했으면 가능했으려나? 지금도 이정도 용량의 사진을 그냥 보내는 건 힘들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나자고 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나온다면 내가 usb메모리를, usb메모리를 가지고 나온다면 내가 노트북을 갖고 나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이 왔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찍은 48 장짜리 파노라마
  • 사진을 작게라도 만들어서 보내주고, 사진을 지우고, 지운 증거를 보내달라.

사진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서 그냥 연락을 끊어버렸다. 대용량메일이 일상이 된 지금도 가끔은 사진을 보내주다가 실패한다. 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실패해서 다시 보내드린다고 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분이 떠오르네…. 찾아서 보내줘야겠다.^^;)

나중에 이런 반응을 보인 여성을 한 명 더 만났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는 걸 보면 이런 여성이 꽤 많은 것 같다.ㅎㅎㅎㅎ



그냥 웃고 만다.

이런 기분이 좋지 않은 경험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사진에 찍혀도 상대가 한국 여성이라면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않고, 연락처를 받아도 어지간하면 사진을 보내주지도 않게 변해간다.

ps.
참고로, 여행중에 만났던 해외에 사는 한국인 여성은 외국인과 반응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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