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인들이여 각성하라! (2주년 기념 포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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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 2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각 독립적으로 쓴 3 부작 중 마지막 글이다.


1. 왜 이공계 기피현상이 생길까?

우리 사회는 지금 실력 있는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이 문제는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끔 발표되는 기사를 살펴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적으로 잘 산다는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잘 사는 나라일수록 이공계를 기피할까?

개인의 의견으로는 이공계 공부가 인문계 공부보다 좀 더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아예 재능이 없는 어문학 계열을 제외한다면 지금 살펴봐도 인문계 공부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인문계 대학원 교제나 과제를 살펴봐도 용어가 어렵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용어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기만 한다면] 크게 어렵지는 않다.

이공계 공부가 힘들어 기피하는가?

그렇다면 이공계 공부가 힘들어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려운 것을 공부한 뒤에 느끼는 기쁨은 세상의 그 어느 기쁨과 견줘도 작은 기쁨이 아니다. 이러한 기쁨을 경험해 본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공계를 기피한다.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 불확실한 미래

예로 병역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이공계 연구직 인력이 적은 가장 큰 이유는 병역 때문이다. 일단 병역의 의무를 마친 뒤에는 수학 감각이 크게 떨어진다. 수학 감각이 떨어진 이공계 연구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이공계에게 수학은 말과 같아서, 국문학의 한국어와 같다.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이공계를 연구하는 것은 한국어를 쓰지 말고 국문소설을 쓰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이러니 이공계 진학과 병역문제가 엮이면 미래가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병역문제만은 아니지만…..

ⓑ 경제적인 손해

이공계 학과는 인문계 학과보다 등록금이 10% 이상 비싸다. 그런데 졸업 뒤에 더 나은 경제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통계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첫 직장을 갖게 된 사회 초년생 평균만 따진다면 이과인 월급이 훨씬 높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봉 이야기일 뿐이다. 당신 주변을 둘러보면 고액연봉을 받는 이공계 출신이 얼마나 있는가? 사실상 거의 없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한다. 대학 졸업생 중에 회사에 취직한 사람을 대상으로  평균임금을 조사했을 때 서른 살 미만의 이공계 졸업자 평균연봉은 다른 계열 졸업자 평균연봉보다 훨씬 높지만 서른 살을 넘은 졸업생 평균연봉은 훨씬 낮다는 통계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 고용불안

1997년, IMF를 겪으면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을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 된 수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몰렸다. 그런 와중에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현상이 있었는데, (구조조정한 사람이 문과 출신이어서인지) 이과 출신이 더 많이 실직했다. IMF 이후 성장한 학생이 진학한 해인 2002년 이후 이공계 진학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 취직의 어려움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을 생각해 보자.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의 경쟁이 평등하게 진행될까? 7급 공무원 임용시험에서는 여섯 과목을 시험보는데, 국어, 국사(한국사), 영어, 행정법, 경제학, 헌법이다. 저 과목을 갖고 시험을 보면 이공계 출신이 유리할까 인문계 출신이 유리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5급과 9급 임용시험도 마찬가지다. 10급 특정 별직만 전공별로 시험을 치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이 해소된다. 그런데 이 현상이 꼭 공무원 시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모든 분야에서 이과생보다 문과생이 더 유리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하나하나의 기술보다는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지고, 그래서 마케팅, 대행업 등이 성황을 이루게 된다. 아마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이공계가 기피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공계가 없는 국가일수록 재정은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경우 1년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나라 정부 예산 규모(100~200조 원)에 이를 만큼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 이공계를 기초로 한 직접적인 생산 활동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공계를 활성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이공계의 단점을 보완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이공계를 나왔지만, 이공계 공부가 힘들기보다 고생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기피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대책으로 학자금 보조나 하는 근시안적인 대책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1

2. 왜 이공계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문과출신일까?

대학원에 있을 때 자주 듣던 이야기가 있다. 좋은 교수가 되는 것은 연구를 잘 따와야 하는 것이고, 연구를 잘 따오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책임자를 잘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구비 집행 책임자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비를 따기 위해 준비하는 서류에는 온갖 뻥과 치장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실력이 있다는 교수도 실제로 실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1 년에 한두 번 있는 학회의 발표장에서 발표하는 것은 교수가 아닌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이다. 왜 교수가 직접 하지 않을까? 실력을 떠나 일단 학회 참가자가 질문할 때 답변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평생을 거쳐 연구한 것이라도 분명 알지 못하는 점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계산과 실험을 다 해 본 것이 아닐 바에는 분명 모르는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답변을 못 할 경우 ‘쪽팔리니까’ 그런 곳에서 발표하지 않을까? 물론 그래서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런 곳에서 답변을 못 하면 그 소식은 돌고 돌아 연구비 집행 책임자 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연구비 집행은 연구 가치와 연구자 자세와 실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충 있어 보이는 것에 집행된다는 뜻이다. 소문이 나쁘면 연구비가 집행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게 과연 진실일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연구비 집행 책임자가 연구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이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장관 중에 이공계가 하나도 없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꼭 연구비 집행에만 이런 문제가 연관될까? 온갖 분야에서 정책 입안자, 집행자 중에 이공계 출신이 얼마나 되나 살펴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온다.

3. 왜 이공계 서적은 제대로 출판되지 않을까?

물론 이공계 서적 출판이 적은 것은 아니다. 대학 전공서적과 중고등학교 참고서까지 포함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서적을 제외하고 살펴보면 출판물 차이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매장을 방문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매장의 약 20% 정도에 이공계 서적이 진열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대학 전공서적이다. 일반인을 위한 서적이 진열된 매장은 모두 합쳐도 열 평이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외국 책 매장의 반도 안 되는 넓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출판사에는 이공계 출신이 거의 없다. 상식으로도 어문계열 출신이나 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로 출판계에 취직하려고 여기저기 다녀보니 “왜?”라는 의문을 달 수밖에 없다. 전공지식은 1 년쯤 공부하면 처리할 수 있는데, 우리말은 어려우니 문과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책을 인문계 출신이 잘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선배 노트필기를 베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여러 차례 복사된 것이었기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곳도 너무 많고, 분량도 워낙 많아서 여름방학 두 달 내내 베껴야 했다. 개학한 뒤 선배가 내 베낀 노트를 보고서 한 말이 있다.

“어떻게 안 보이는 것까지 다 베꼈는지 모르겠다. 대단하다. 그런데 수식에서 꼭 필요한 것을 경험부족으로 빠트린 것이 많다.”

이 이야기를 좀 자세히 말하자면 수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차원(Dimension)같은 것이다. 수학/과학을 전공했으면 큰 의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맞춰줄 줄 아는 요소이지만, 대학교 1학년이라서 경험이 부족해 오류를 많이 낸 것이다. (대학교 고학년만 되면 보기만 해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걸 문과생이 한다면 잘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시작도 할 수 없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만약 출판사 관계자의 말대로 1 년 공부해서 처리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냥 다 나가 죽어야 할 것이다.

출판사에는 당시 1 학년이던 나보다도 실력이 못 미치는 편집자가 과학책을 편집하고 있다. 사소한 오류를 걸러내는 것도 힘드니 제대로 된 과학책이 나오기 힘들다. 그런 과학책을 보고 공부하는 학생도 오류를 그대로 물려받는 것은 당연하고, 또 그런 과학책이 잘 팔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또한 과학책을 기획/제작할 수도 없다.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획/제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책을 내지 못하고, 외국 서적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일에 매진한다. 과학책에 번역서가 얼마나 많은지는 서점에 나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4. 신문은 정치/경제/가십 이야기만 인기다?

전두환 정권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만든 것은 국민들을 우민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우!민!화!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은 정책에 실패한 것 같다. 6.10 민주항쟁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군사정권을 이어가겠다던 포부가 꺾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은 그 후 10년이나 더 연장된다. 그런데 쥐박이 정권이 하는 짓거릴 보면 군사정권 때랑 비슷해 보인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가 성공한 것인가?)

그런데 요즘 신문을 들춰보면 신문 전체는 정치, 경제, 가십거리 기사들로 넘쳐 난다. 왜일까? 개인적으로 우민화를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그것은 튀는 발언으로 자기들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는 세력들이 언론을 이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튀는 발언을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정치인은 무조건 튀는 발언을 해야 한다. 그 발언이 좋은 발언이든 나쁜 발언이든 상관이 없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도 정치인으로 변하자마자 튀는 발언을 쏟아낸다2. 시간이 지나면 대중은 어렴풋한 기억만 갖게 된다. 그 결과 친근한 정치인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그랬고, ‘전여옥’이 그랬다. 고문기술자 ‘정형근’도 역시나 그렇다. ‘노무현’이 그랬고, ‘유시민’이 그랬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적당한 발언을 했는지 망언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고, 결과적으로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그래서 그들은 언론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튀는 발언을 계속해서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경제인은 무조건 정보를 언론에 흘려야 한다. 물론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최근 엄청난 바람이 불었던 펀드를 살펴보자. 내가 펀드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2004년이었다. 자세히 듣지는 못해서 투자를 하지는 않았다. 내가 투자 권유를 받은 이후 몇 달 지나서 언론이 펀드를 다루기 시작했다. 내가 펀드에 대해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은 2006년 후반부였다.

하지만 내가 펀드를 처음 소개받을 때 (펀드를 권해줬던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펀드를 타면 막차를 타게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 이후 투자한 사람 중에 펀드로 재미를 본 사람도 꽤 되지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다행인 상황이 된다.

그럼 왜 경제인은 펀드에 대한 정보를 하필 그 때 언론을 통해 흘린 것일까?
경제인은 그때가 발을 뺄 적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수익을 올린다는 소문이 이미 너무 많이 펴져있었기 때문이에 돈이 몰려서 규모가 커지는 시점이었다. 가격이 급등하여 수익을 내기 좋고, 규모가 커지면 투자가치는 반드시 떨어진다. 이해가 되는가? 신문 경제면을 볼 때는 누가 왜 그런 정보를 제공했는지에 대해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0개 중 99개 정보는 정보 제공자 이익을 위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 나머지 1 개는 쓰레기 정보다.

연예인은 반대로 언론이 정보를 생산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보자. 마약투여, 음주운전, 뺑소니 같은 사고만 아니라면 언론이 생산한 정보에 의해 보통 연예인이 스타로 도약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2006년 남규리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스타로 최고자리에 오른 뒤에도 어느 정도는 꾸준히 정보를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은근슬쩍 가십기사 소재를 흘리는 것이 연예인에게는 최상의 전략이다. 그게 잘 안 되면 염문설이라도 뿌려야 하는 것이 연예인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이름값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연예인들 아닌가? 좋아하던 연예인도 노출 빈도가 떨어지면 관심이 사라지는 법이다.

이렇게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은 시시때때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언론과 같이 한다.
그렇다면 이공계인은???
이공계인이 언론과 같이 하는 것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간단하게만 짚어보고 넘어가자.

이공계인이 망할 4가지 요소

1. 눈높이를 못 맞춘다.3
2.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데 서툴다.4
3. 대인관계에 서툴다.
4. 자신이 하는 (사소하지만 대단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5

밑에 몇 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1. 황우석 사태

2005년을 들썩이게 했던 황우석 사태는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황우석 박사는 그 연구의 결과를 떠나서 대중적인 스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위에 적은 이공계인의 망할 4가지 요소를 모두 피해나가니 말이다. 황우석 박사가 실수한 것이 있다면 연구가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진실을 추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왜 아무 말도 못 했는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를 지켜보던 사람 중에 유독 브릭(BRIC) 회원만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문제를 발견했을까? 처음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유전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일단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는 대체적인 진실을 추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법적으로 현재도 사건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건 문과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발견한 사람들은 왜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을까? 나도 거의 읽지는 못했지만, 전문가가 안 이야기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하지 못해서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왜 깊은 생각을 하고 글을 쓴 다른 사람을 공격했나?

전문가가 아닌 나도 당시 몇 번 공격을 당했지만, 어제 다시 읽어봐도 내 글에는 크게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인다. 당시에 모든 사람이 타인을 황빠와 황까로 양분하려 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내 글을 공격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안 그래요, 이규영 씨???)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그들의 말 중에 누구의 말이 옳았는가? (결국 누구의 말도 옳지 않았다. -_-;) 결국 이러한 일은 감정이 이성을 넘어서서 억제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민 분위기는 진실과 얼마나 연결되나?
때때로 대중의 분위기는 누군가 왜곡하려 하는 이야기를 꿰뚫는 통찰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만 본다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그 누군가에게 농락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다수의 대중이 사태를 주도해 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해당 전문가가 전문적인 이야기가 사태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가 ‘망할 4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2. 광우병 사태

광우병에 관련해서 살펴보면 “국가 간에 거래되는 모든 소는 광우병에 안전하지 않다.” 현재 국제교역을 고려한다면 미국산 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너무도 조용하다. 전문가가 모두 정부의 눈치를 본다거나 하기 때문에 조용히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왜 조용한 것인가?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자신의 뜻을 실어 펴낼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공계인은 왜 대중적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가?


1.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자.

ⓐ 남에 의한 조명은 한계가 있다.
글쓰기가 불가능하면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글쓰기를 부탁해야 한다. 현재 언론사 기자와 이야기해 보면 드는 생각은 ‘글은 참 잘 썼지만, 내 생각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써도 그런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남 생각을 어떻게 똑같이 글로 옮길 수 있겠는가? 애당초 남이 내 생각을 글로 옮겨주길 희망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래서 언론사에 의해 내가 조명 받는 것은 자체가 이미 한계를 지니고 있다.

ⓑ 자기들끼리의 리그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람끼리는 어떨까?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는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 수도 있을 테니 대화는 훨씬 쉬워진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뭘 하겠는가? 두 권투선수가 관중도 없는 링에서 서로를 때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두 권투선수가 실력이 뛰어나서 세계챔피언과 도전자라고 하더라도, 관중이 없으면 그 경기는 세상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리그에서 내려와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어떻게 자기 리그에서 내려올 것인가?

ⓒ 과학자끼리도 서로 이해시키지 못한다.
과학자는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서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 경우가 발생할까? 그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언어도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6. 이공계 용어는 매우 엄밀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 다른 뜻의 단어가 조금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표현력이 약하면 서로 뜻을 전달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초기에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큰 차이로 변한다.
결국 과학자 사이에서 수식으로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수식은 서로 간에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수식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으므로, 과학자들 간의 의사소통은 언제나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

소통을 못하는 예 (출처 : MBC 뉴스 후+ <애플의 공습> 편)

ⓓ 글을 아예 쓰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말도 못한다.
사실 나도 아직 그렇지만, 맞춤법과 표현력이 완전히 엉망이다. 이 글만 하더라도 무미건조하고 대충대충 구성된 글이다. 그나마 내 글은 일반적인 이공계인 글보다는 조금 낫다고 자부한다. 사실은 정말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글을 하나라도 남겨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읽기 힘들어 하거나 지루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른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신 농군인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버지의 지식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아버지 지식을 이용하려고 해도 아버지가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해서 협조하시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저 “애들 장난하지 마라.” 정도로 말씀하신다.

이과인도 우리 아버지와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행동, 취미생활 등등이 상당히 독특하거나 호감을 살 수 있는 일이어서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물론 연구에 시간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연구만큼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인데,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한 좋은 소재를 충분히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다 날리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

2. 극복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문제는 Communication이 안 되기 때문이다.”

ⓐ 이공계인도 글쓰기를 가르쳐라.
문제는 이공계 교육과정에서는 글쓰기가 너무 일찍 끝나버린다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나마 요즘에는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논술을 가르치기 이전 세대인 나는 글쓰기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중학교~대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배워 봤다면 그나마 행운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2020 년에 추가 : 실제로 제대로 된 글쓰기는 지금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쓰기를 몇 년 해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이것을 엮어서 무언가를 가시적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데,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꾸준히 교육시키는 것이 적성을 발견하고, 발휘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기간에 배울 수 없다. 위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지 4 년 반이나 됐는데도 아직 글쓰기가 많이 부족한 것을 보면 글쓰기 연습은 한 10 년쯤은 해야 쓸 만한 능력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사진/동영상 촬영, 미술, 음악 같은 것도 기초적인 부분만큼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입시과목이 아니라고 내팽개쳐지는 그런 과목이라서 고등학교 진학 이후 실질적으로 배우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이것을 공부해야 한다. 전공 이외에 이런 것을 접하면 전공에서는 익힐 수 없는 그 무언가의 깨달음을 분명히 얻을 것이다.

이공계 대학교 과정에서 글쓰기, 사진/동영상 촬영, 미술, 음악 등과 같은 과목을 (그냥 참관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직접 결과물을 만드는 과목을 개설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도 교양필수 과목으로 해야 하며, 1~4학년 전 학기에 하나씩 넣어야 한다. 이러한 과목은 나중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졸업논문 대신 단행본 출판을 시켜라.
외국에서는 대학교 졸업논문으로 노벨상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교 졸업논문은 그냥 통과의례일 뿐이다. 아무 가치도 없다고 하면 지금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에게 실례가 될까? 하지만 이건 사실이고, 내 졸업논문 또한 그랬다. 그렇다면 왜 꼭 졸업논문을 쓰는가?

그래서 난 졸업논문 대신 단행본을 출간시키라고 주장한다. 단행본이 형식적인 졸업논문보다 쓰기가 힘들다. 한 가지 주제(또는 컨셉)를 갖고 책을 한 권 쓰는 것은 어렵고, 시간도 훨씬 많이 든다. 그만큼 공부하는 양과 노력이 많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출판사에 의해서 정식 출판되는 등 진짜 활용될 수도 있다는 면에서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졸업논문보다 졸업생의 미래에 훨씬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철학을 가르쳐라.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 한 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7 철학은 품위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생각의 효율을 높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마 책을 저술하는데도 철학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결국 개인의 효율, 사회의 효율, 결국 국가의 효율이 높아지게 만든다.

그러나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는 교양과목 교재로 나눠준 철학책마저 배울 기회가 없었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교가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리포트를 폐지하라.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저학년 때는 리포트를 써서 친구에게 많이 보여줬다. 과 동기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리포트의 절반 이상이 내 리포트였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내가 리포트를 보여주는 것이 나와 동기의 경쟁력을 망가트린다는 것을 알고는, 리포트를 보여주지 않게 되었다.

이 문제를 교수나 조교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 리포트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고쳐서 내는 걸 막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근절되지 않을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포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포트를 베낄 수 있는 이유는 리포트를 제출한 뒤에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제출자와 확인자 사이에서의 일이며, 제출자의 양심과 확인자의 노력에 맞겨진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제를 Blog Post처럼 아예 공개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과제를 절대로 복사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만천하에 공개되는 과제물을 베껴 낼 수 있을까?

cf) 미국의 이공계 교육은?
자세한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지만 미국의 MIT, UCLA 등의 내노라 하는 공대에서는 필수적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전공 지식을 갈고 닦는 만큼이나 지식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이공계도 붕어빵 같은 고만고만한 인재들을 찍어내기보다는 좀 더 실력 있고 개성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

이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은 경제적 부를 추구한다.
2. 이과인은 남을 설득하는 표현을 잘 못 한다.
3.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4. 이과인은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설득을 하지 못한다.
5. 그래서 이과인은 부자가 적다.
6. 멘토가 없기 때문에 이공계 기피현상은 필연적이다.
7. 그러므로 이과인도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주석)

  1. 출산율 감소의 대책으로 돈 몇 푼 쥐어준다고 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로 근시안적인 정책일 뿐이다.
  2. 사실은 정운찬은 교수 시절에도 별의별 튀는 발언을 많이 했었다. 그걸 고려하면 타고난 정치인이 교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3. 내 이야기 같네..ㅜㅜ
  4. 일반인 또는 언론인과 수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5.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이 엄청나게 떠벌릴 일도 모르고 지나친다.
  6. 사실은 일상생활의 말들도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철학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건 나의 고집 때문이다. -_-

16 comments on “이과인들이여 각성하라! (2주년 기념 포럼 #3/3)”

  1. 저같은 문과 출신이 읽어도 이해가 되고 재미있을 정도의 과학 이야기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가 김영사에서 오래전에 출간한 <재미있는 물리여행>이죠. 경제/경영/자기계발 주류인 시장에 나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얼마나 쉽고 재미있느냐인데… 이게 어렵겠죠?

    1. 쉽고 재미있는 것들만 생각한다면 이공계의 발전은 완전히 발목을 잡힌 꼴이 되죠. 분명 쉽고 재미있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그것만이 전부인 건 곤란하지 않을까요??

  2. 당연한 말씀이고, 좀 더 대중적인 이공계 기술과 사회나 역사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영문으로는 좋은 책들이 많은데 번역된것들은 쉽게 찾기 힘들죠..
    외국의 좋은책을 능력 되시는 분들이 많이 번역을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일겁니다.
    그런데 이공계에는 어릴적부터 인문학적 글쓰기가 안되서, 주제파악하고 이공계로 가는 사람도 꽤 되죠.. 물론 글쓰기가 안된다는것이 노력 없는 핑계일 수 도 있습니다만… :)

    1. 아.. 인문학적 글쓰기 자체가 어패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어교육의 허상일 뿐이지 실제적으로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대가들 극소수만 존재할 따름입니다.

      인문학적 글쓰기의 최대의 허접은 『연금술사』에 있지 않나 십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중국 고전 『삼국지』같은 경우 인문학적 글쓰기 요소를 발견할 수 없죠.

  3. 이공계라고 해도 물리학이나 화학같은 순수학문과 공학같은 응용학문은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米국같은 경우도 공학에 온통 외국인투성이어서 문제지만요…

    1. 물론 그 특성이 많이 다르니 구분해야 하긴 합니다.
      문제는 그 특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런지요?

  4. 1. 고등학교때 문/이과 구분이 대부분 대학까지 이어 집니다. 이때 이과를 택하는 많은 이유가 ‘국어’ 때문 이므로, 글쓰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ㅡㅡ.;

    2. R&D 자체가 연구를 하다보니, 다른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적습니다. 문과는 토론이 수업의 중심이지만 이공계는 지식의 전달이 주축이죠. 태생적 한계인 것 같습니다.

    3. 무엇보다도 왜? 설득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모르냐고 하소연 할 뿐이죠…

    1. 1. 글쓰기가 힘들다고 안 가르치니 못 쓰는 것이 아닐까요? 어렸을 때 못한다고 계속 안 해서 성장한 뒤에 능력이 갖춰졌음에도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2. 이과도 토론수업을 할 수 있고,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문과만 토론수업 중심이고, 이공계는 지식전달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네요.
      3. 그래서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5. 레포트 폐지와 블로그 포스팅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말이 리포트지 초등학교때 하던 ‘숙제’와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번주 수요일에 무릎팍도사에 나오셨던 배철수씨는 이런말을 하시더군요. 음악을 많이 들어야 감성을 키우고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는 음악적 대화가 수월해진다고… 마찬가지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써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런것은 논문을 쓰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뉴턴보다 더 일찍 중력을 발견했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체계적인 연구와 설득력있게 논문을 작성할 능력이 없었기에 알려질 수 없었던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현대 생활에서 과학이 일상의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되게 됩니다. 물론 미래에는 더 범위가 더 넓어지고 영향도 커질테고요. 그만큼 이공계의 미래는 전혀 어둡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것을 상업화 또는 연구를 하지 않을 뿐이죠.

    이러한 문제는 창의력 결핍에서 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창의력은 결국 문화생활을 통해 발전하고 개발될 수 있는 것이기에 작은인장님이 말씀하신 문제들은 결코 단순히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만류귀종’이라하지만 한분야만 파다보면 오히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게 될 경우도 높고… 아무래도 고집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 때문에 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_-;
    다양한 분야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문제해결을 남들보다 더욱 빨리 해낼 수 있을뿐만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로 한획을 그을 수도 있을겁니다.

    주제넘게 말이 길어졌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끄적이고 갑니다. ;)

  6. ps. 저도 글은 잘 못쓰지만,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글이 지루해지고 읽기 어려운 것은 시각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글자크기가 장문을 읽기에 작고, 문단과 문단 사이, 그리고 들여쓰기가 안되있어 그런것 같습니다.

    글자크기를 9pt 에서 10pt 정도로 키우고, 숫자 목록 외에도 제목에는

    테그를 사용해서 작성하면 더욱 좋을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style.css 에서

    .articles .entry h3 { font:bold 12pt ‘맑은 고딕’,dotum,’Trebuchet MS’,Tahoma,arial; }

    와 같이 정의한뒤에 글 작성시 [속성]에서 골라주면 됩니다.
    (articles 나 entry 등은 물론 스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단은 3-4줄 마다 한줄씩 띄워주면 좋구요, 들여쓰기는 blockqueote(TT에서 인용아이콘)을 이용해서 할 수있고 따로 편집을 해서 쓸 수 있습니다.

    .aricles .entry blockquote.indent { margin-left:15px; }

    선언하고 글 작성시

    로 한다거나 .indent 를 쓰지않으면 TT 편집모드에서 ‘인용’아이콘을 눌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좀더 긴 장문의 경우 아예 간략한 목차를 페이지 상단에 적어두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7. 많은 공감을 얻는 글입니다.

    가장 먼저 컴퓨터 미디어 아트가 떠오르는군요, 창조성으로 대표되는 예술을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컴퓨터에 의해 구현된 예술은 일종의 양 학문간의 통섭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본분에서 밝힌 많은 문제점들이 바로 이런 통섭교육의 부제로 인한 사고의 부제가 불러온 현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한국에선 이과와 문과에 대한 경계를 두고 있으며 이과생의 경우 왜 철학공부를 해야하는지, 문과생은 왜 수학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 통섭교육을 실시하려 했지만,정부에선 좌향 교수가 실시하기 때문에 빨갱이 교육이라 부리며, 대안이나 대책도 없이 수업을 패강시킨 경우들을 살펴보아도, 한국사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일은 어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 여러 가지로 답답하네요.
      우리나라에서 교육에서의 일본물을 언제쯤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공감 100%네요.
    졸업논문 대신 단행본을 내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상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 되고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과제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었습니다.

    1. 에구…뭘요..^^;
      지금 읽어보니 글을 다시 다 뜯어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이 많네요. 전 아직 멀었네요.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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