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에 대해서….

6 comments

저작권법은 너무도 복잡하고, 기준이 명확지 않을 때는 판사 개인의 의견에 따라서 결과가 결정되는만큼 명확한 기준이란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인용’이란 것은 창작활동에 있어서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저작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용 또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인용은 이정도에서 해 주세요.” 하는 정도의 기준 정도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인용은 “창작의 주된 범위에 속하지 않고, 주된 범위를 위해 꾸며주는 타인의 저작물”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즉 인용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인용 구문을 빼고 저작물을 접했을 때 충분히 그 저작 취지를 알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 이 때 중요한 기준으로 분량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판단기준에 분량이 절대기준은 아니라고 한다.

1993년 『이랜드 사람들』이란 저서의 저작권 소송에 대해서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랜드의 운영진 6명의 연설 등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전재하여 책을 구성하였다. 전재한 분량은 책의 절반을 넘어서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저자측은 두 가지 사항, 저작권 없음과 인용이기 때문에 문제없음을 주장하였다.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그 인용의 범위는 표현형식상 피인용 저작물(여기서는 이랜드 대표자의 강연)이 보족(補足), 부연(敷衍),
예증(例證),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 저작물(여기서는 ‘이랜드 사람들’이란 서적)에 대하여 종(從)의 관계에 있어야 할
것이고, 인용의 방식 및 정도에 있어서도 그 출처를 명시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인용문을 자신의 저작물과 구별되도록 해야 하며,
피인용 저작물을 지나치게 많이 인용하거나 전부 인용하거나 원저작물에 대한 시장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등 그 인용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제한이 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랜드 사람들’이란 서적은 이랜드 대표자의 강연 내용을 거의 그대로 전재(全載)하면서 그 비평이나 연구는 실질적으로
거의 행하고 있지 않아 단순한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으면서 그 출처가 명시되지도 않았고, 자신의 저작물과 피인용저작물이 분명히
구분되고 있지도 않으며, 그 인용 분량이 위 서적 중에서 본문 중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방대한 분량인 점 등에 비추어
정당한 인용의 범위를 넘은 것이라고 판단되며, 아울러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였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피신청인 A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이 판결에서 인용의 조건을 정리해보자면

① 출처 명시
② 저작물과 인용물을 명확히 구분
③ 비평, 연구 등 실질적인 저작활동에 이용
④ 일정 분량 이하로 사용

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이랜드 사람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들을 참고하자면, 이 책은 ①과 ②만 확실히 처리했다면 저작권법 위반은 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여기서 저작물의 주종관계가 상당히 이매하기 때문에 판사에 따라서 그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예를 한 번 들어보자.

1. 짤방
짤방은 저작물 자체와 크게 상관없는 이미지를 첨부하는 형식이므로 인용으로 생각되기 힘들다.

2. 캡쳐화면
드라마, 영화 등의 캡쳐화면은 일반적인 경우 인용으로 사용될 수 없다. 다만 그 대상을 연구, 비판 등의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저작물을 구성하는 경우는 합당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트위트터>의 NG 세 개…^^“에는 스크린캡쳐가 다수 포함되어 있고, anigif 화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저작물의 경우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책으로 출판하려 할 경우 출판사 측에서는 영화사에 미리 사용의 허락을 구하는 편이다.[footnote]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캡쳐화면을 돈을 주고 구매를 한다.[/footnote] 사용권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설명도로 바꿔서 사용한다.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다툼의 승패를 떠나서 길고 지루한 싸움을 대자본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세업체에게는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저작권법에 저촉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짤방으로 캡쳐화면을 사용한다면 위법의 소지가 있지만, NG를 지적하기 위해서 캡쳐화면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안 된다.

3. 자막과 번역물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점이 자막과 번역물일 것이다. 나도 자막을 만들어 공유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영어 저작물을 번역해 올리는 블로거들도 꽤 많고, 심지어는 언론사에서도 외국 언론사의 기사를 번역해 국내 기사로 싣는다.
번역물이나 자막은 2차저작물로 분류되고, 취급될 수밖에 없다. 대충번역으로 유명한 이미도 씨나 홍주희 씨의 결과물이 아무리 질이 나쁜 자막이라고 하더라도 2차저작물로서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
2차 저작물이 2차 저작물로서 인정받으려면 기본조건이 원저작자에게서 허락을 구했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원저작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는 한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는 없고, 오히려 불법저작물이 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사용할 경우 우리나라의 유명 IT블로거들중 절반 이상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언론사의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 싣는 국내언론사들도 저작권법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언론사들에게 많은 기사를 공급하는 [연합통신]이 빈번히 외신을 무단사용하기 때문이며, 결국 이를 받아 사용하는 국내 언론사들도 저작권법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CCL을 적용한 Flickr의 이미지나 저작물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NASA같은 곳의 저작물은 가져다가 2차저작물을 만들어도 된다.

4. 감상문과 소개글에서의 대사, 구절의 사용
2008년에 독후감에 삽입한 인용구를 출판사에서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감상문과 소개글의 경우 연구와 비평이라는 인용의 조건은 충족하기 힘들지만 관행에 의해 사용한 것이므로 출처표시, 명확한 표식에 의한 짧은 인용 정도면 어떤 경우에도 인용할 수 있으므로, 감상문이나 소개글에서도 문제삼을 수 없을 것이다.
음악의 가사는 매우 짧으므로 두 소절 정도만 인용이 허용될 것이다. (음악의 표절 시비에서도 두 소절 이상이 되야 표절로 보는 것을 인용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5. 이미지를 축소하여 사용하는 경우
원래 발표된 이미지를 작게 축소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애매한 경우다. 이에 대해서 법원의 판단은 원본을 보지 않고도 원본을 볼 필요가 없도록 되어있느냐 하는 시각으로 판결한다. 이 판례는 검색엔진에 등록되어있는 이미지들이 저작권법 위반인가에 대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6. 일부 비저작물의 경우
청담동 클럽 사진“에 대한 논란이 한참일 때 청담동 클럽 사진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져나갔다. 이 경우 저작권에는 어떻게 작용할까? 합당한 인용이 될 수 있을까?
재미있게도 이 경우 합당한 인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사진들은 합당한 저작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 이미지들은 음란물이다. -_-;;;; 참고로 이런 경우에도 사진 속 인물들 초상권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 오히려 쇼핑몰을 스크린캡쳐한 이미지가 더 저작권법 위반의 소지가 높다. 다만, 도메인도 이미지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홍보의 의미로 해석되지 않을까 싶어 위험을 무릎쓰고 공개한 것이다.

나도 저작권법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동안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니 대충 이 정도로 인용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나야 사용하지 않지만, 한참 문제되고 있는 음악에서는 어떤 정도가 인용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법적으로 아직 판례도 없고, 음저협 측에서도 기준을 밝히고 있지 않으므로 현재로는 음악을 인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하는 분들 다수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을 모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6 comments on “인용에 대해서….”

    1. 네. 너무 애매해서 지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죠.
      쉽게 풀어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거 해석하는 것이 지들 밥벌이니….

  1. 쉽지는 않네요. :-)
    마하반야님 말씀처럼 법이 너무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위법이 결정된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1. 아마 안 걸리는 블로그는 거의 없을 겁니다. 심지어 100% 자기 글로 만든 블로그라 할지라도 말이죠..

Mr.kkom 에 응답 남기기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