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이상향 : 시민을 찾아오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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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 동막골 촌장의 재미있는 정치철학이 나온다.

이 상위 :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거….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촌 장   : 뭐를 많이 메겨야지.

촌장 정치철학은 부락민들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작은 촌락의 이야기일 뿐이고, 수만 명만 되도 이렇게 단순히는 정치를 이끌 수 없을 듯 싶다. 그러나 규모가 커져도 그 본질은 같지 않을까? 이러한 정치철학은 중세시대까지의 일이었고, 시민의 자의식이 성장한 현대사회에서는 이보다 좀 더 복잡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민주정치의 세 가지 필수요소

현대 정치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신뢰·타협·평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① 신뢰는 선거를 통한 간접정치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로 한다. 자신이 선택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의 기준이 신뢰이기 때문이다. 신뢰의 기준은 한 번 한 말은 책임감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다. 신뢰받는 정치인의 공약은 유권자가 믿고 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신뢰성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선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살펴본 내용인 ‘대중의 건망증’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선거를 방해한다.

② 타협은 이해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이견을 좁히는 행동이다. 타협할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통된 목표를 당사자들이 갖기 때문이다. 타협의 다른 모습은 정치의 장에서는 다투고 있더라도 정치를 떠나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란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법을 다투는 과정에서의 다툼은 있을지언정 일단 결정이 되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더라도 지지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결과에 승복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결과가 결정되는 과정이 모두 납득할 수준이 되야 한다.

③ 평등은 사람 개개인의 평등이 아닌 의견 하나하나의 평등을 뜻한다. 이는 당장 눈 앞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먼 미래상을 그리며 의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소수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는 반드시 사람이 아닌 의견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수가 많은만큼 수없이 많은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이러한 의견 대부분은 짧은 소견에 의해 도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견을 잘 수렴하는 정치인을 뽑고, 그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대리시킨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의회민주주의 또는 간접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원리를 갖는 민주주의 정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허약한 체질을 지니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하는 이유

정치인에게 장기적 안목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과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2년 바둑계의 예를 살펴보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
바둑계는 이를 매우 환영했다. 바둑은 다른 오락에 비해서 배우기 힘들고, 실생활에서 비슷한 기력자를 찾기 힘들었지만, 인터넷에서는 배우기 쉽고 경쟁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바둑계는 “인터넷은 바둑계에 축복이다”라고 평했고, 실제로
2001년까지 바둑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때 네오스톤이 몰락하고,[footnote]네오스톤의 몰락은 (부분)유료화 실패 때문이다. 유료화를 하면서 무료
사용자는 친목도모에 꼭 필요한 기능인 친구찾기와 대국신청 기능을 못 쓰게 만든다. 결국 무료 사용자는 다른 사용자와의 교류가 불가능해지자 어쩔 수 없이 이탈했다.
40개가 넘던 서버는 몇 달만에 한 개만 유지할 정도로 사용자가 줄어든다. 네오스톤 운영자들이 자기 서비스인 바둑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결과다.[/footnote] 한국기원이 직접 운영하는 사이버오로와
조훈현 프로가 운영하던 타이젬라이브바둑이 새로 등장하면서 양강체제가 된다.

이러한 축제분위기를 변하게 만드는 사건은 2001년 말 두 대표 바둑사이트가
경쟁적으로 도입한 사이버머니와 배팅대국이었다. 배팅대국이란 7단 이상 고단자들의 대국에 사이버머니를 거는 가벼운 사이버
도박이다. 인터넷 고스톱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배팅대국이 시작되자 바둑사이트 이용자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한 쪽은 소란을 피해
조용히 바둑을 두는 학구파였고, 한 쪽은 배팅대국을 위해 고수들의 방을 드나드는 배팅 중독자들이었다. 그리고 배팅 중독자들은
“프로보다 형세판단이 정확하다”는 평가를 프로에게 듣는 수준까지 발전했으나 바둑은 멀리했고, 학구파들은 2003년 경부터 서서히 바둑사이트를
떠난다. 그리고 급기야 고수들마져 바둑을 두지 않고 배팅대국 수수료[footnote]배팅대국의 승자는 걸린 사이버머니의 2%를 수수료로 받았다.[/footnote]만 챙길 여러 가지 편법을 만들면서 바둑사이트는 교란되었다. 한국기원에서 인정하는 프로들은 배팅대국으로 번 사이버머니를 일반인에게 판매하여 용돈벌이를 한다. 아이디간에 사이버머니를 주고받을 수 없게 제한하자 아이디를 통째로 사고 판다. 바둑사이트는 이렇게 변질된다.
2008년 바둑계는 위기를 선언한다. 한국기원 분석에 의하면 바둑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바둑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바둑이 왜 위기에 직면했는가? 학구파가 없는 바둑사이트에서는 새로 바둑 규칙을 배우는 초보자들이 있기 힘들므로 바둑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바둑이 정신수양 스포츠라고 주장하면서도 장기적 안목의 서비스보다 순간적인 이득을 좇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바둑사이트의 배팅 시스템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기원은 2009년에도 이세돌 사태를 일으켰다. 한국기원이라는 사단법인[기업] 스스로는 자본주의 산업에 대항하기엔 자정작용이 너무 약하다.

2009.12.29 다음(Daum.net) 메인 뉴스화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유명한 책을 지난 여름에 읽었다. 그러나 『군주론』이 기업가에게 가장 좋은 책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책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책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중세사회를 배경으로 통치하는 방법을 저술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기업가들이 좋은 책으로 꼽는다는 것은 현대의 기업들은 독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는 이렇게 기업들이 사내에서 독재를 하는 것도 있지만, 국가 전반, 심지어는 국제사회에서까지 독재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따르는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시민이 의견을 밝히는 것을 막는다거나 사기, 비리, 폭리 등으로 시민을 희생시키려 하는 기업에 맞서야 한다. 하지만 국내 정치는 어떤가? 깊게 살펴볼 필요도 없이 Daum 메인화면에 노출된 하루치 뉴스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히 우려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인 기업들이 너무 단기적이고 독재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일 때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인은 당연히 장기적 안목을 지녀야 한다.

대중을 위한 교육(?)

대중은 건망증을 앓고 있다.
이 주장은 계속되는 경제 대공항을 통해서 사실임이 속속 증명된다. 경제 대공항은 부유한 사람들이 부를 쌓으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글로벌화 할수록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금융에 의한 부의 생산은 형체가 없는 괴물과 같아서  쉽게 증가하기도 하지만,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1937년 대공항,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등 약 20년을 주기로 경제 대폭락을 반복해온 것을 보면 대중이 건망증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한 사람이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이다. 나의 옛 글 주식투자 – 누굴 믿어야 하나?라는 글에서 소개한 그의 명언을 떠올려보자.

What we learn from history is that people don’t learn from history.
군중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개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무리지어 있을 때 감정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하지 않을 행동도 무리지어 있을 때면 더 쉽게 저지르곤 한다. 이는 정당을 구성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하지 않을 막말과 비논리적인 언행을 정당인으로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은 어찌보면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우선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화사회에 진입해 있으므로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서 대중에게 정보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갖추고 있다. 복잡한 수치계산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예측과학인 경제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인들이 얼마나 민주정치의 신뢰·타협·평등을 잘 지키는지를 평가해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인은 대중에게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평가에 참여하고,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평가를 공개하기만 하면 명예훼손으로 글을 삭제하는 현재 한국의 인터넷 정책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반민주정책으로 불릴 것이다.

정치란 것은 정말 단순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배고픈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줄 순 없다. 그러나 최소한 배고픈 사람들을 계속 배가 고픈 상태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참고기사 : ‘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로 시민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 곁으로 찾아가는 정치가 되야 한다. 시민들 곁으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선거방식이 우선 일상생활에 맞춰져야 한다. 정치 소외계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치와 거리가 너무 멀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장통에서 하루 장사하여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투표소를 찾아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루 16시간씩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또한 투표소 찾아가는 건 역시 어렵다. 이렇게 계층과 직업에 따라 정치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선거는 평등할 수 없다. 불평등은 타협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고, 결국 정치적 결과물은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찾아가는 정치가 절실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모바일과 인터넷이 발달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에게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 머지 않은 시기에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
시민이 투표권을 편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맺음말

시민을 찾아오는 정치가 구현될 때 민주주의 정치의 신뢰·타협·평등부터 기업으로 대변되는 이익집단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주는 진정한 역할을 정치가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글쎄….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는 왜 국민의 바램과는 반대로 가게 된 것일까? “<웰컴 투 동막골>에서 수류탄을 향해 자신의 몸을 날리던 표 소위 같은 사람들은 수류탄에 모두 죽어 없어졌기 때문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ps. 이 글은 세이하쿠 님의 블로그 이벤트에 맞춰서 작성된 글입니다.

11 comments on “정치의 이상향 : 시민을 찾아오는 정치”

  1. 핑백: dream reader
  2. 사촌이 땅사면 배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죠, 이건 어찌보면 인간 본연의 속성일지도 므르겠습니다만, 배아파서 나또한 땅을 사기위해 노력하는 으른바 선의의경쟁체재를 구축하기 보단 사촌의 땅을 뺏거나 부정당한 방법으로 땅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게하는…

    있는 파이마져 없에버리는 방법밖에 모르며, 색깔론과 이념대입 밖에 할 줄 모르는 한국정치에선 그저 이상향일 뿐일지도 모르겠군요….

    1. 문제는 그게 대부분의 정치세력에 해당한다는 거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3. 갑자기 낯선 내용이 등장하여 무슨일인가 했더니 잼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기 위함이었군요. 대단해요!!

    나중에 책이 출판되면 사인이 들어간 책자 하나 보내주시와요. ^^&

    1. 원래 정치에 대한 글들도 많이 쓰곤 했습니다. 이 곳에선 블로그를 분할하려 했기 때문에 정치관련 글은 쓰지 않았고, 이는 앞으로 블로그 분할이 이뤄지면 다시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
      전 저자가 아니라서…. (나중에 제 이름으로 책을 쓰게 되면 싸인해 드릴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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