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 개미 이야기 -『개미제국의 발견』

One comment

‘징그럽다.’
나 말고도 곤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바퀴벌레 같은 곤충을 특히 더 징그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바퀴벌레만큼 징그럽게 생겼지만 정감가는 곤충도 많다. 나비, 매미, 모기, 무당벌레, 장수말벌…… 이런 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와 확연히 다른 모습에 징그럽다고 생각할만 하지만 껍질이나 특징이 친근(?)해서인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개미도 마찬가지다. 겁많은 꼬마도 개미를 대부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 그래서 사람이 노골적으로 박멸하는 곤충의 희생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양이겠지만, 많은 개미가 꼬마들 장난에 희생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미를 이렇게 친근하고, 호감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개미는 친근하게 생각하지만, 자기 거주공간에 사는 개미만큼은 철저히 박멸해야 할 해충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애집개미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음식을 꺼내놨을 때 모여들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 최재천 교수는 개미와 같이 살아도 나쁜 것은 없다고 말한다. 바퀴벌레 같은 해충을 없애주기까지 하는데도 없애려 한다며 안타까워 하신다. 물론 애집개미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음식물에 들러붙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사람을 물어 심하게 발진이 일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개미제국의 탄생』이 소개하는 개미사회
익히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개미와 벌은 사회화를 통해서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로 손꼽힌다. 특히 개미는 성공적이어서 지구에 있는 모든 개미의 무게는 모든 사람의 무게와 비슷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성공적인 사회화 동물은 포유류를 제외할 때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벌과 개미, 바퀴벌레 사촌인 흰개미….. 이들의 사회는 여왕이 알을 낳으면 일개미가 키우는 중세 유럽의 봉건왕국 같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글쓴이 최재천 교수는 개미사회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음을 소개한다. 반란을 일으키는 일개미도 있고, 또 한 집단에 여왕개미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 있는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이해서 믿기 힘든 내용도 있다. 『파브르 곤충기』프랑스 제목 : Souvenirs entomologiques에서 장 앙리 파브르Jean Henri Fabre는 밖으로 나왔던 개미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완전히 기억력에 의존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모든 개미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하라개미들은 빈번하게 방향을 바꾸며 가공할 속도로 모래 위를 질주해 다니다가 먹이를 발견하여 입에 물기만 하면 어떤 복잡한 경로를 거쳐 그곳에 도착했건 간에 정확하게 자기 집을 향해 직진한다. 암산 능력이 특별히 탁월한 몇몇을 빼고는 우리 인간에게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때그때 각도를 계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그 작은 개미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 그 작은 두뇌 속에 초미니 초고속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지극히 간단한 기제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 72 쪽

재미있지 않은가? 아마 사하라개미가 자기 위치와 둥지 입구 위치를 기하학으로 계산하여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애초에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움직임 자체가 특정한 패턴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방향도 그 패턴의 일부였을 것이다. 아무튼, 개미가 환경에 맞춰 만든 삶의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개미제국의 탄생』은 사진첩과 과학책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풍부한 사진과 적절한 설명 그림이 많아 사진첩 같다. 사진은 잡지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사진첩이라고 하기엔
글이 많다. 이렇게 사진과 글이 훌륭해서 과학기술부 선정 우수 과학 도서와 제40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은 145 쪽으로 얇고, 글에는 특별히 어려운 용어나 내용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과학을 넘어 수필로! – 서울시 교육청 국어 추천 도서

글쓴이 최재천 교수는 이 책을 쓸 때는 서울대학교 교수였고, 지금은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다. 오랫동안 연구 현장을 다니며 연구하다가 겪었던 일들을 풀어서 수필 같은 과학책을 만들었다. 처음 밀림에 가서 꽃잎을 나르는 잎꾼개미(학명 : 가위개미)를 만난 설램에 이끌려 지금까지 개미를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속이 빈 트럼핏나무와 공생하여 그 속에 집을 짓고 산다는 아즈텍개미에 대한 일화까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최재천 교수의 개미 사랑과 애착이 묻어난다.
이 책이 서울시 교육청 국어 추천 도서로도 선정된 것이 재미있다. 아마 수필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뽑은 것 같다.

수필 요소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으러 산에 오르는 도토리 아줌마들처럼 도토리를 찾는 개미들이 있다. 호리가슴개미(Leptothorax)라 부르는 이 작은 개미들은 사실 도토리를 먹으려고 찾는 것이 아니다. 도토리 속에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도토리는 그 해에 떨어진 새파란 것들이 아니라 대개 1년쯤 묵은 것들이다. (중간 생략)
도토리 아줌마들께 다람쥐가 먹을 음식이니 너무 많이 줍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표지판을 종종 보았는데 어쩌면 호리가슴개미 사정도 알려야 할 것 같다. – 77~78 쪽
인간을 제외하고는 장래를 생각하여 자원을 비축하는 동물도 그리 흔하지 않고 비축한다 하더라도 그저 한겨울 먹을 정도나 모을 뿐이다. 주변의 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로 남과 경쟁하는 동물은 아마도 개미와 인간뿐인 것 같다. 그래도 개미는 멀쩡히 잘 굴러가는 액센트를 그랜저로 바꾸기 위해 졸음을 무릎쓰며 악착같이 일하지는 않는다. – 79 쪽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 개미들은 이념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렬한 전쟁을 벌이는 우리 인간과는 무척 다르다. 경제적인 문제도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런 전쟁은 믿음이 다른 종족간의 전쟁에 비하면 그 잔인한 정도가 다르다. 히틀러의 나치군이 일으켰던 세계대전이나 최근에 있었던 보스니아나 르완다의 전쟁 등에서 보듯이 인간은 때로 상대 종족의 씨를 말살하기 위하여 엄청난 규모의 대량학살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의 특성 중 아직 동물세계에서 관찰되지 않은 것이 바로 종교인데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다. – 121~22 쪽

약간의 아쉬움
글쓴이가 세계적인 개미 권위자이다보니 이 책은 세계의 특이한 개미를 소개한다. 그래서 막상 우리 주변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다. 책 끝에 우리나라에 사는 개미를 분류하는 방법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지만, 작년 초여름에 사진 찍었던 혼인비행을 하던 개미가 무슨 종인지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개미 사진을 수록하거나 웹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인 것 같다.

혼인비행을 하기 위해 대기하는 공주개미와 숫개미


부수적으로 이 책을 보면 DSLR 카메라와 각종 장비를 사고 싶어지는 뽐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나처럼 평소에 곤충을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더….)

ps. 비문, 오류

 이들[중형 일개미들]은 거의 모든 작업에 고르게 종사하는 일반 노동자들이지만 몸집의 크기가 적합하여 번데기나 애벌레를 운반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 58 쪽
책을 처음부터 읽었다면 이 문장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겠지만, 이 문장을 분명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문장 중간에 쉼표 하나만 찍어줬어도 읽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지구의 중력에 의해 형성되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현재의 위치와 목적지와의 각도를 찾아낸다. – 69 쪽 9 줄
지자기 생성 원리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구 중력이 자기장을 형성시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ps. 최재천 교수는 최근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과학’에 진화론에 대한 기획물을 올리고 있다.

ps. 이 책은 트위터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에게서 받은 책이다. 저자 사인도 되어 있다.

ps. 제작년 정도에 우리나라에서 대형일개미를 본 적이 있다. 개미끼리 전쟁하는 줄 알고 별 신경쓰지 않았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사진으로 남겨봐야겠다.

ps. 이제는 나도 위의 개미사진이 어떤 종인지 구별할 줄 안다. ^^;

1 comments on “지구의 주인, 개미 이야기 -『개미제국의 발견』”

  1.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미는 흔히 곰개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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