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을 유지하기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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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1 등이 되는 것보다 1 등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1 등이 계속 바뀌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는 이 말에 부합하는 두 가지 사건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인텔 vs. AMD

2000 년경까지만 해도 PC cpu 시장은 3 개의 브랜드가 있었다. Intel, AMD, Cyrix. (물론…. 파워칩을 만들던 IBM, 또 다른 PC시장을 갖고 있던 애플 등의 쟁쟁한 회사들이 더 있었다. 시장 자체가 완전히 달랐기에 이 글에서는 논외다.) 이 세 회사 중에는 당연히 인텔이 가장 잘 나갔지만, AMD와 Cyrix도 시장에서 어느정도 지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 년대 중반에 Cyrix가 몰락한 뒤에, AMD 마저도 스스로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기술적으로 인텔이 너무 앞서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들이 20 nm 선폭의 제품을 생산할 때 인텔 혼자서 14 nm 선폭의 제품을 생산해 팔아먹었다. 이때 인텔은 외계인이 cpu를 만드는 광고를 내보냈고, 그 이후부터 사람들은 인텔이 외계인을 고문해서 cpu를 만든다는 우스개소리를 했다.

인텔의 문제는 여기에서 새옹지마처럼 다가왔다.

인텔 전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은 2013 년에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라는 사람을 CEO로 앉힌다. 이 사람은 당시에 나름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인텔 CEO가 된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주를 위해 회사 제반경비를 줄이는 일이었다. 어떻게 줄였을까? 우습게도 연구직 인력을 대거 방출했다. 이 사람들은 AMD, 삼성, 대만의 TSMC, 중국의 여러 기업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여러 분야에 투자하여 나름의 성과를 냈다. 인텔의 순익은 역대 최대치를 찍었고, 최고의 CEO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한편 경쟁사였던 AMD에도 새로운 CEO가 온다. 여성이었던 리사 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기존에는 반도체 웨이퍼에 cpu 각 제품별 패턴을 하나씩 새겨넣었다. 그러다가 불량이 나면 그 패턴은 그냥 쓰레기가 된다. 리사 수의 아이디어는 작은 크기의 회로 패턴을 여러 개 새겨넣고, 이 패턴 6~8 개를 하나의 제품으로 구성한다는 아이디어였다. 6~8 개의 패턴 중에 1~2 개의 패턴이 불량이 나도 불량이 난 부분만 비활성화한 뒤에 판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기존에 통으로 폐기하던 것과 비교하면 생산비용이 현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AMD는 제품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거기다가 선폭을 계속 가늘게 만들어 14 nm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인텔과 선폭이 비슷해지자 속도도 비슷해진다.

AMD CEO 리사 수

그렇게 3 년이 흘렀다.
AMD는 새 cpu를 내놓는다. 스펙상으로 인텔의 주력상품과 거의 비슷한 성능을 내었다. 거기에다가 AMD 제품은 앞에 말한 이유로 가격이 쌌다. 점차 AMD의 사장점유율이 높아졌다. 대략 1 분기에 1 %꼴이였다고 한다. 인텔은 이에 대응하여 갑자기 엄청난 제품들을 쏟아놓았다. 사람들은 인텔이 그동안 기술을 숨겼다며 궁시렁댔다. 그러나… 실제 제품을 만져본 뒤에 할 말을 잃는다. 기술을 숨긴 게 아니라…..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억지로 클럭만 올려서 제품을 출시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발열이…. 음…. 그런데, 거기다가 cpu 안에 채워지는 써멀구리스를 싸구려를 써서 소비자의 불만을 샀다. 사람들이 cpu의 뚜껑을 따고서 고급 써멀구리스를 채워넣자 작동시의 온도가 크게 내려갔다. ㅎ
아무튼 이때부터 갑자기 AMD와 인텔의 전쟁이 격해졌다.

2002 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한국이 경기를 했다. 원래 이탈리아는 빗장수비로 유명했다. 한 골 넣고는 수비에 치중해서 경기를 1:0으로 이기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써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의 경기도 그 방법으로 이기려고 했다. 그래서 후반들어 공격수를 모두 수비수로 교체한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비극은 후반 연장시간에 동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연장전이 진행됐다.
연장전 들어서 이탈리아는 무기력한 경기를 하다가 그냥 졌다. 이때의 귀국하던 이탈리아 선수의 말은 이랬다.

연장전이 되자 우리도 득점해야 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공격할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공격선수를 한 명도 남겨놓지 않고 수비수로 바꾼 것은 감독의 큰 실책이다.

인텔이 이때의 이탈리아 팀과 똑같은 상황이다. 동등한 상태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연구인력을 모두 내보낸 뒤였다. 새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지금까지 인텔은 모든 제품을 14 nm로 만든다. (얇은 선폭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는 했지만, 제품은 여전히 14 nm로 생산된다.) 그동안 AMD는 7 nm까지 발전한다. 아직까지 인텔의 시장점유율이 업계에서 가장 높지만, 성능은 AMD 제품이 더 뛰어나다는 걸 대부분의 소비자가 알고 있다.

절대강자였던 인텔은 이렇게 6 년만에 몰락했다. 이게 다 훌륭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덕분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모를 일이다. 인텔이건 AMD건 독과점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2. MS 익스플로러

인터넷에서 최초의 왕좌에 등극했던 것은 넷스케이프(Netscape)였다. 그런데 이걸 압도적인 운영체제 점유율과 자금력으로 밀어붙여 무너트린 것이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다.

익스플로러는 버전 4일 때 넷스케이프를 앞섰고, 6 버전일 때 점유율 95%를 넘어섰다. (참고로 이때까지도 5% 속에 있던 게 바로 나다. -_-) 더 이상은 경쟁자가 없을 것 같았다. 웹페이지를 만들 때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만큼 새로운 기술을 제일 먼저 탑재하는 웹브라우저였다.

익스플로러가 한 버전 업그레이드되는 데에는 보통 2 년쯤 걸렸다. 그러던 것이 버전 6에서 버전 7로 업그레이드 되는데에는 5 년이 걸린다. 이상하게 많이 걸린 셈이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2000 년대 들어서 MS의 실권을 장악했던 스티브 발머였다. 스티브 발머는 2000 년대 초반에 빌 게이츠를 명예CEO 정도로 보내버리고 실권을 장악해서 MS를 사실상 지배했다. 빌 게이츠가 다시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회사 운영을 상당히 잘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익스플로러를 생각한다면…. 글쎄….

스티브 발머는 익스플로러 6이 더이상 경쟁상대가 없다고 판단하고 개발팀을 해체해 버린다. 그래서 그 뒤부터 신기술에 더이상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자 예전에 왕이었던 넷스케이프가 이름을 불여우(firefox)로 바꾸고는 되돌아와 점유율을 높였다. 뒤늦게 다시 개발팀을 짰지만…. 대형 프로그램을 하루아침에 뜯어고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익스플로러 7이 나오는데 몇 년이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불여우 뿐만 아니라, 구글이 불여우의 선전을 보고 크롬 웹브라우저 개발을 선언한다. 결국 2010 년이 되기 전에 웹브라우저의 왕좌는 크롬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익스플로러 몰락에 앞서서 넷스케이프의 몰락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웹브라우저 시장을 지키기보다는 다른 분야까지 포괄하여 점유하려는 시도한다. 컴퓨터 OS로 만들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그러다가 정작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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