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년 학력고사 시험지 도난사건 그리고 고문

무언가를 해석할 때는 당시의 시대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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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안내로 1992 수능 시험지 도난사건에 대한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이 영상의 마지막에 나온 고문이라도 해서 범인을 잡으라는 언론사 기자의 발언이 뭔 황당 끈뜬 없는 이야기인가, 기레기는 저때도 그레기였네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난 저 당시 시험을 보러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기 학력고사에서 떨어진 뒤에, 후기 학력고사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갔더니 담임이 “너는 어차피 재수를 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냥 낮은 곳으로 지원해서 학교 합격률이나 높여라.”라는 다소 무책임한 강요에 좀 남쪽에 있는 호서대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후기 학력고사 시험을 보기 하루 전에 예비소집일에 가서 시험장을 확인하고, 근처에 사시는 아버지의 고향선배 댁에서 하루 신세지려고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기사가 라디오를 갑자기 틀었는데, 라디오에서 시험지가 도난당했다며 다음날 예정돼 있던 학력고사는 취소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뭔 소리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가시던 아버지는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고향선배 댁에 인사나 드리고 돌아가자고 하셔서 계속 가고 있었다.

음…. 버스에서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나더니 버스가 길가 논으로 들어가 옆으로 굴렀다. 아무튼 내 위로 어떤 아저씨가 떨어져서 좀 까졌다. -_- 뭔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와서 보니 도로 위에는 승용차 한 대가 전파돼 있었다. 그러니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반대로 달리던 승용차가 길이 막히자 중앙선을 넘었다가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그걸 우리가 탔던 버스의 가사가 피하지 못해서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아무튼 그래도 별로 다치지는 않아서 그냥 아버지 고향선배 댁에 잠깐 가서 인사드리고, 바로 집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년도에는 대학을 가지 못할 팔자인가보다 하고 시험을 포기하고서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에 등록하고서 하숙집도 예약했다. 새로 잡힌 후기 학력고사 시험일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가 아침에 TV를 틀어보고서야 시험일인 걸 알게 됐다. ;;;;

아무튼….. 이때는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전에 수사를 할 때 막무가네식 수사를 하던 수준이었다. 그게 문제라며 고치시 시작한 게 대략 5 년쯤 전의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였다. 수사에서 폭력 불법 수사가 별의별 부조리를 낳자, 그런 수사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 뒤 시험지를 도난당한 1992 년보다도 훨씬 이후까지도 새로운 수사체계가 잡히기 전이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은 정말 범인 같은 사람(용의자)이 있어도 범인인지를 밝히지 못하던 때였다. 누구나 그걸 다 알고 있었다.

시험지 도난사건보다 2 년 전에 우리 외삼촌께서 실종돼셨었다. 당시에 전화로 불러낸 사람 있고, 그 사람 만나겠다며 나간 것도 확인이 되는데, 그 사람은 전화를 한 적 없다고 발뺌해서 사건이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그때 경찰이 “이전 같으면 고문을 해서라도 증거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수사를 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런 소리를 했겠는가? (외삼촌은 그 후 지금까지도 실종상태다. -_-)


아무튼, 그 당시 상황을 알고 있다면, 저 당시의 기자가 고문이라도 하라고 한 말이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상황은 그랬다. 경찰과 검찰 뿐만 아니라 국민 수준도 그랬다.

고1 때… 그러니까 외삼촌이 실종되시기 1 년 전, 학교 선배가 등교하다가 봉고차에 납치당했다. 같이 등교하던 다른 선후배들에 의해 목격돼 학교에 알려졌고, 경찰에도 알려져서 한동안 학교가 뒤숭숭해졌었다. 그 선배는 다음날 돌아왔는데, 마취제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다른 납치당한 사람과 꽁꽁 묶여서 창고에 있었다고 한다. 어찌저찌 해서 줄을 풀고 같이 밖으로 빠져나와서 헤어지며 한 명이라도 안 잡히도록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 뒤에 한참 걸어가서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일로 그러는데 경찰서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여기 경찰서에 뇌물 먹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근처에 일가친척이라도 있으면 데려다 주겠다고 하여 인근 울산의 외할머니 댁으로 갔다고 한다. (창고는 울산과 포항의 중간쯤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납치사건이 당시에 엄청 많이 일어났고, 이런 일이 2000 년경까지 계속 벌어졌다. 참고로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남고였고, 저때 납치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었다. 뭐….. 염전노예 사건을 생각해봐라. 이 사건은 아마도 아직도 완전히는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막 이런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막 떠오른다. -_- 우리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봉고차 세워놓고 있다가 개가 지나가면 공기총으로 쏴서 잡아가던 놈이라던지….

아무튼, 나도 기레기 엄청 싫어하지만, 이 영상에서 고문이라도 해서 밝히라는 이야기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ps.
그러고 보니,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범인이 잡힌 직후에
경찰이 그동안 DNA 감지 기술이 발달해서 잡을 수 있었다고 했더니, 국과수에서는 당시에도 이정도는 밝힐 수 있었는데 아무도 검사를 의뢰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이걸 다시 되새겨보면, 당시 경찰 간부 중에 이춘재를 감싸던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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