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집회에 참석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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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의 집회 참석 포스트 이후에도 계속해서 집회에 참석했다. 내일은 하루 쉬어야겠다. 생각보다 무지 힘들다. ^^; 또한 그동안 미뤄뒀던 글도 써야 할 것 같고….
그동안 생각만 하던 앞으로 과학블로그로의 귀환이 이뤄지기까지 내 블로그가 집회 관련 블로그가 되지 않을까 염려까지 되는 상황…..




6월 2일 월요일에 집회에는 사실 그리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폭우까지 쏟아져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내가 집회장소에 갔던 시간은 10시 반 쯤이었던 것 같다. 6시에 시청역에 갔었는데  휴대폰을 살펴보니 인터뷰하기로 했던 분들의 문자가 와 있었다.

“헉~!!”

다시 뒤돌아서 신촌으로 가서 약속되어 있던 인터뷰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시청으로 와서 보니 인원은 30여명 뿐이었다. 날씨는 상당히 추운 편이었는데 그나마 긴 팔 옷을 준비해 간 것이 다행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참석한 뒤에 시간을 보내다보니 옷을 꺼내입을 시간이 없었다. ㅋ
30여명은 내가 참석한 뒤에도 계속해서 횡단보도 시위를 했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반복하는 시위는 생각보다 무척 힘든 편이다. 한 시간의 횡단보도 시위를 하면 걷는 거리가 1.5 km쯤 된다. 생각보다 걷는 거리가 짧은 듯 하지만 계속 서 있고, 촛불 지키고….. 하는 행동 때문에 운동량은 걷는 거리보다 훨씬 많다. 결국 횡단보도 시위를 10시간쯤 하신 분들은 몸이 근육질로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도 웃음밖에 안 난다.

횡단보도 시위를 3일 새벽 2시까지 하다가 친구네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사실 한 잠도 못 잤다. 도저히 잠이 안 온다. -_- 횡단보도 시위가 아마도 엄청난 중독성을 보이는 듯 하다.) 그리고 6시에 나와서 다시 횡단보도 시위를 시작했다.

시청 앞 횡단보도 시위는 춥고 힘들었지만 배고푸지는 않았다. 정말 많은 시민들이 음료수와 음식을 갖다 주시고 가셨다. 처음에는 짐이 하나도 없던 일행(?)은 점점 늘어나는 짐을 주체하지 못하고 급기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를 걱정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석자들이 모두 먹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의 음식들은 결국 10시쯤에 새로 나오신 분들께 인계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한 분이 음료수와 김밥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횡단보도 시위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라면 지도자가 두 사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고정적으로 서서 관리를 해 주고, 다른 한 사람은 한쪽 팀을 이끌고 왕복하면서 고정적으로 서서 관리해주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통제해 줘야 한다. 횡단보도 시위의 가장 큰 애로점은 양쪽에서 가는 사람들의 구호 박자가 잘 안 맞는다는 점인데 두 지도자는 이를 조율해야 한다. 대부분은 신호등이 바뀌고 깜빡이는 것을 기준삼아 박자를 맞추는데, 그 때문에 지도자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 ㅎ 또 한 가지는 짐을 보관해 줘야 한다. (무거운 가방 메고 8시간동안 횡단보도 왕복했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촛불을 컵에 꽂을 때 두 가지 주의할 점이 발견됐다.
첫 번째는 컵에 구멍이 있으면 촛불이 바람에 잘 꺼진다.
두 번째는 초의 위치는 컵의 정 중앙에 있는 것이 가장 안 꺼진다.

그리고 또 발견한 것은 초가 두꺼운 것이 촛불집회에서는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 타긴 하지만 잘 꺼진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은….
참여자가 10명만 되도 프락지가 주위에서 감시한다는 것…..
또 한가지… 오세훈 서울시장이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갔다는 전훈… -_-
서울시장이 촛불집회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상황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M_ps. 프락지의 상관과의 통화내용|ps. 프락지의 상관과의 통화내용|이 곳에서는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 이외에 사망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링크된 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심폐소생술을 한 것은 사실이고, 그 것이 민간인이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은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추기는 힘들군요.

프락지사진을 남겨둔다. 어두워서 잘 안 찍혔다.

_M#]



10시에 횡단보도 시위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 전부터 쓰려고 마음먹었던 잡음마케팅(Noise Marketting)에 대한 글을 한 편 쓰다보니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결국 이 글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일어나서 시위장소로 가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결국 5000원에 새로 우산을 하나를 살 수밖에 없었다. 오후부터 갠다던 날씨는 완전히 폭우였다. 요즘 기상청 일기에보는 정말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러니 내일 예보된 비는 안 오길 기대해보자. ㅎㅎㅎㅎ

새로 시청 광장에 도착한 것은 6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내가 잠 잔 시간은? -o- 도저히 잠을 더 잘 수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와 있었다.
이게 뭐 이런지…. 사람들이 많아졌는데도 별로 집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집회가 진행됐고, 사람들은 간단한 가두시위를 한 뒤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모여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교보빌딩 쪽 한산한 곳에서 (어째 낯익은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일반인 차들이 시위대 쪽으로 들어왔고, 그리고 한 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던 참가자들 사이에 갑자기 소란과 함께 사람 수십 명이 종각 쪽으로 뛰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왜 저러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로가로 뛰어간 것은 나 뿐만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해본 결과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들은 바를 그대로 시간 순서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1. (성급하게) 차량소통을 하기 위해서 의경이 시민들을 도로 밖으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한 시민과 충돌이 있었고, 화가 난 의경이 시민을 때렸다. 이에 주위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그 곳에 있던 위기의식을 느낀 의경 3명이 종각 쪽으로 도망을 갖다.
2. (어떤 시민의 인터뷰?) 사람을 때리는 것이 ‘비폭력’이냐? 비폭력 시위를 할 거면 제대로 해라.
3. 동영상이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부터 해보자. (관계자는 그냥 자리 옮김)
4. (어떤 양복장이(증인?) 인터뷰) 시민이 의경을 때린 것이다.
5. 그 이후 아무튼 의료진이 관계된 시민을 치료하려 했으나 시민은 치료를 거부했다.
6. 흐지무지…..
결과적으로 의경과 시민 모두 떳떳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이 사건이 아니었다.
1. 왜 의경은 차량을 성급하게 소통시키려고 계속 시도했는가? 일단 시위대 인원이 적어서 (대충 2000~4000명 정도 되 보였음) 적은 도로를 점유해도 괜찮다 싶더라도 어차피 전경이 이 인원을 진압할 것 아닌가? 이 상황에서 뒷쪽에 차가 다닌다면 엄청나게 위험해진다. 시위대가 아무리 적더라도 뒷쪽 수백m에는 차량을 항상 통제해야 한다.
2. 시민과 의경의 충돌과 같은 시간에 왜 다른 시민들은 차량 운전자 또는 다른 시민과 다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가? 시위대의 분위기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폭력적이지 않고 조용했으며 차분했다.
3. 왜 대학생들은 그 소란 속에서 갑자기 전부 빠져 안 보이는 후방으로 이동했는가?

아무튼 이런 이상한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힘들어 6월 4일 새벽 12시 20분에 집회장소를 떠나서 귀가했다. 그리고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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