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과학자라 불리던 천재의 삶
『천재』-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The life and science of Richard Feynman
제임스 글릭/황혁기
승산/28000/789p.
ISBN 89-88907-75-2 03420
글 쓴 날 : 2006.08.03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간다고 투덜거렸다. 다른 책보다 서너배 이상 읽기 힘들었다. 과학적/철학적으로 내용이 어렵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꼽은 이유는 이렇다.
① 등장인물 이름 혼용
등장인물의 이름이 계속 바뀐다. 어떤 때는 파인만이라고 했다가 리차드라고 했다가 딕이라고 했다가… 파인만 뿐 아니라 그 이외에 등장인물도 이름이 계속 바뀌었다. 서양책 중에도 유독 심했다.
② 문단 구분 모호
문단은 일반적으로 내용이 바뀌거나, 시각적인 배려가 필요한 곳에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아무때나 바뀌는 편이었다.
③ 문장 구성의 미숙
전문지식과 관련된 부분에서 특히 더 그런데, 문장이 구어체처럼 두리뭉실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문맥을 파악하려면 두 번씩 읽고, 내용을 머리속에서 영어문장으로 재구성해야 했다.
④ 용어의 일관성 무시
예를 들면, 물리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변분법’이라는 (양자)역학적 계산방법이 있다. 이 용어의 쓰임이 수시로 변한다. 내용만을 설명해 놓은 곳도 있고, 설명 없이 변분법이란 용어만 적어놓기도 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꽤나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각주 등으로 표시해 주는 세심한 배려가 아쉬웠다. (번역 문제인지, 원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원저자의 『카오스』란 책도 그리 깔끔하지는 못했었다.)
⑤ 시간 구성의 문제
전체적으로 파인만의 나이 순서로 정리되어 있지만, 작은 부분부분에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미래로 갔다가 과거로 갔다가를 반복한다. 문맥만으로 시간을 파악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⑥ 문맥 연결이 부자연스러움
문맥이 중구난방으로 튀거나, 문장의 시작과 끝에서 말하는 내용이 바뀐다거나, 주어와 동사가 일치하지 않는 등의 글쓰기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도 중간까지 오탈자는 찾지 못했다. 이 점은 높이 사줄만 했다. 그렇지만………..
⑦ 번역이 엉망
번역기를 돌린듯한 번역과 직역이 너무 많았다. (2006 년 번역기 이야기라는 것에 주의하자.)
번역의 대표적인 예를 잠시 살펴보자.
첫번째 사례
(전략)… , 11 미터가 넘는 고리에서 몇 군데는 5~7.5 센티미터가량 자꾸 타서 닳았다는 점, 결정적인 쟁점 하나는 고무가 금속 사이의 간격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누를 때 필요한 속력이라는 점, 우주국이 관료주의에 빠져 문제를 이해하는 동시에 무시하는 요령을 터득했다는 점이다. (후략) – p.638
두번째 사례
(전략)… 그래서 1965년 10월 21일 오전 9시에 도착한 웨스턴유니언 “텔레팩스”에는 “기본 입자의 물리학을 깊이 파헤친 결과로 양자전기역학에 기여한 기본적인 연구”로 파인만, 슈윙거, 도모나가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때 파인만은 다섯 시간 넘게 잠을 못 잔 상태였다. 스톡홀름에서 발표가 난 직후인 새벽 4시에 ABC 특파원에게서 첫 전화를 받은 뒤였다. 파인만은 누운 채로 몸을 돌려 궤네스에게 알렸다. …. (후략) – p.576
책은 라운드 양장이다. 두꺼워서 만드는 사람들이 아마 꽤 고생했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은 꽤 괜찮은 편이고, 제본상태도 좋았다. (일반 판형의 페이퍼백은 출판되지 않았다.) 책 중간에 4 장으로 구성된 사진면이 첨부되어 있다. 4 장은 출판시 최소 필요 쪽수이기는 하지만 자동화로 생산할 수 없는 쪽수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 책의 사진면은 수동으로 첨부됐는지 글씨면과는 흐트러져 있어 제책의 약점을 보여줬다. (양장은 절단을 할 수 없어서 이럴 경우 참 곤란하겠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관련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에 넣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종이 때문에 그림의 인쇄질이 떨어지도라도 말이다.
중요한 부분에 굵은 글씨체[볼딕]를 사용한 것이 자주 눈에 띄는데 꽤 괜찮은 편집이었다고 생각한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처럼 과도한 사용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적절한 선이 유지됐다고 생각된다. 다만 굵은 글씨체를 사용하다가 중요하지 않은 단어들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경우가 가끔 눈에 띄었다. 아마 편집시간이 좀 부족했나보다.
또한 인쇄상태가 불량한 쪽이 상당수 있었다. 잉크가 튄 듯한 곳도 있고, 반대면의 잉크가 묻은 듯한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파인만이 각 단계에서 어떻게 지내며 발전했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물론 파인만을 신격화(?)하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어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파인만도 결국에는 엄청난 천재는 아니고, 우리 범인이 범접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쓴 메모는
“파인만은 일반인 중에 운이 좋아 성공하게 된 지독히도 일부분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었다.
물론 이 말은, 파인만이 하루아침에 운좋게 길거리 캐스팅되어 스타가 되듯 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비슷한 재능을 갖고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파인만이 성공한 것은 운이란 이야기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특히 우리나라에서라면) 결국 물리학자가 되지 못하고 기술자 정도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저 말이 아주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코넬 시절까지와 칼텍 시절부터의 두 부분으로 글을 전개하는 구성이 확 바뀐다. (맨 끝부분은 말년에 어떻게 지냈는지 약간 첨부돼 있다.) 이정도로 이야기가 틀려진다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분권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했다.
전권은 과학적인 내용으로 시작해서 파인만의 성장기 일화이다. 파인만같은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적인 면에서 사려깊게 편집하면 좋았을 것 같다.
후권은 파인만의 업적을 중심으로 몇몇 물리학 지식을 독자에게 설명한다. 이 시도는 상당히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차피 파인만의 업적에 해당하는 전공지식은 비전공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따로 특별한 설명을 넣어줬어야 했다.
책의 부분부분에는 다른 파인만 관련 서적에서 평가하는 것과 상반된 해석이 있어서 약간 주의가 필요하다.
이 책에 대해서 전반적인 평가를 하자면….
책 분량이 너무 많아서 시간에 쫒기면서 만든 것 같다. 번역과 편집에 시간과 인원을 좀 더 많이 투자했어야 했다. 파인만은 살아생전에 마음에 드는 위인전을 읽어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 책도 역시나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이 책은 아들딸을 파인만 같은 과학자로 키우려고 특목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라면 읽어서 손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