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걸작 < 지구를 지켜라>

(ps. 이 영화의 내용은 뻔하니, 이 글에서는 영화 내용은 무시한다.)

물리학계에는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두 번의 시간이 있다. 단 1 년의 기간 동안 과학계를 넘어 세계를 뒤흔들 연구결과가 쏟아진 해의 이름이다.

첫 번째 기적의 해는 1665~1666 년이다. 아이작 뉴턴은 흑사병(패스트)이 유행하여 다니던 대학이 휴교하자 고향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는 이때 미적분법을 만들었다. 미적분법은 지금까지도 과학계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미적분법을 이용해서 중력법칙을 확립하고, 이를 이용해서 천체의 운행을 설명하여 천동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다. 또, 여러 물질의 광학적 성질을 연구하면서 광학을 만든다. 비록 그가 만든 광학은 사후에 영, 호이겐스, 맥스웰에 의해 폐기됐지만…

두 번째 기적의 해는 1905 년이다. 스위스 특허청에 근무하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5 개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일부는 누구나 이름쯤은 아는 이론이다. 빛이 금속판에 쪼였을 때 금속판 안에 있던 전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론화한 광전효과는 뉴턴의 광학을 부활시켜 양자역학을 태동시킨다. 움직임이 시간과 공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한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통폐합시킨다. 꽃가루 속 정핵이나 연기입자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설명한 브라운운동 해석 이론은 당시 한참 논쟁중이던 원자가설이 승리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포논 이론, 정지질량-에너지 등가이론(흔히 잘 알려진 E=mc^2이라는 방정식)도 이 해에 발표된다.
아인슈타인이 1905 년에 발표한 논문이 5 편인데, 그 5 편이 전부 물리학 교과서에 실려있다. ^^;;

한국 영화사에도 기적의 해 같은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2003 년이다.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장화홍련>, (그리고 보통은 이 목록에 끼워넣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끼워넣고 싶어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한 해에 개봉했다. 아는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하나하나가 세계의 영화교과서에 실리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 <지구를 지켜라>도 이 해에 발표된 대표작 중 하나다.

<지구를 지켜라 >포스터 – 이게 가장 잘 나온 포스터라고…ㅋㅋ

그러나 이 작품은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엉성했던 제목과 포스터 때문이다. 특히 포스터는 얼마나 엉성했던지, 영화가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는 휘발되고, 대충 만든 아동용 B급 코미디 영화처럼 보였다.(당시의 <우뢰매> 수준으로 보였다고 생각하면 될 듯!) 거기다가 예고편도 정말 엉성하게 보여서 영화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본 것만으로도 보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마케팅을 어떤 관객층에게 할지 분명하게 잡지 않아서 볼 때마다 이랬다 저랬다 했다. 결국 단 하나의 특정 계층도 잡지 못하면서 상영관을 거의 잡지 못했고, 그냥 몰락했다. 제작비가 33억 원인데 최종 관객수는 7`3182 명.
이게 어느정도였냐 하면, 내가 당시에 p2p로 다운받았었는데 하드디스크에 다운받은 파일이 있는 것도 잊고 두 달이나 지났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존재감 ‘0’!

이 실패는 제작사 싸이더스를 부도 위기로 몰고 갔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얼마 뒤에 개봉한 <살인의 추억>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고 한다더라….)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로 세계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그러면 뭐하나 사람들이 안 보는데….^^; (뭐 그래도 나중에 인기감독이 되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영화교과서 뿐만 아니라 홍보 마케팅 교과서에도 꼭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 제작비 부족으로 좋지 않은 장비를 써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연히 화질이 나빴다. 극장 상영을 실패한 뒤에 DVD로 제작하기 위해 이런저런 후보정을 하다보니, 당시에는 예상치 못할 정도로 좋은 영상을 얻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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