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미끄러운 진짜 이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에는 스키나 썰매를 타는 분들은 좋아할 정도로 눈이 아주 많이 온다. 하지만 외출하려면 비탈길을 꽤 멀리 걸어거야 하는 나는 눈길을 걸어 내려가다 자주 미끄러지곤 했기 때문에 이런 날씨를 싫어한다. 길이 미끄러워 교통대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으니, 이런 날은 집안에 콕 박혀서 글이나 쓰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모임이 있어서 귀찮아도 나가봐야 한다. ㅠ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눈과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기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래와 같다.

  1. 얼음이 무언가에 눌렸을 땐 잠시 녹아 물로 된 얇은 막(수막)을 만들어서 미끄러워진다.
  2. 얼음은 원래 마찰계수가 작다.
  3. 얼음 위에 올라가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마찰에 의해서 얼음이 녹아 수막이 생겨서 미끄러워진다.

이 이론들은 각각이 얼음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온다. 얼음이 그렇게 쉽게 녹았다가 다시 얼 수 있는 걸까? 또는 아주 추운 곳에서도 얼음이 미끄러울까? 많은 과학자는 이 의문들에 기존 이론들이 좋은 답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고, 그중 일부는 이를 해결하려고 좀 더 깊이 연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연구를 살펴보기 이전에 빙하에 대해 살펴보자.

얼음의 구조

얼음의 구조 하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눈의 육각형 구조일 것이다. 꼭 눈이 아니더라도 분자 수준에서 보면 얼음은 눈과 구조가 같다. 그러나 얼음이든 눈이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구조가 있다. 바로 물과 구멍이다. 얼음은 고체 부분이 뼈대를 만들고, 뼈대 사이에 구멍이 숭숭 뚤려있다. 구멍은 프렉탈 구조로 이뤄지는데, 작은 구멍이 점점 더 큰 구멍에 연결되는 규칙성을 반복한다. 구멍 안에는 아직 얼지 않은 물이 들어차 있다.

여기에서 물이 중요하다. 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단번에 얼음으로 바뀌지 않고,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서 아주 서서히 얼음으로 변한다. 그래서 얼음은 비열이 물보다는 작지만, 보통 물질보다는 크다.

얼음의 높이가 매우 높으면 얼음 속 구멍의 높낮이 차이도 커진다. 그러면 구멍에 들어있는 물을 지탱하는 힘인 표면장력보다 물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이 더 강해진다. 물이 밑으로 흘러내린다. 이 현상은 온도가 높아 물이 많아질수록 더 강하다. 결국 윗부분은 물이 빠지면서 구멍이 비어 공기가 많아지고, 아래쪽은 물이 찬 상태로 남는다. 물은 상식적으로 투명하지만, 사실은 붉은색을 푸른색보다 아주 조금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물이 가득 찬 얼음은 게토레이 색으로 보인다. (게토레이는 시원함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빙하와 같은 색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꼭 빙하가 아니라 두껍게 언 강물만 보더라도 아래 부분은 색이 푸르고, 윗 부분은 빈 구멍에 의해 빛이 산란되어 희게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온도가 낮을수록 얼음이 단단한 이유도 알 것 같다. 뼈대인 얼음의 양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흰 얼음도 투명한 얼음보다 더 약할 것이다.

빙하의 특성

빙하(氷河)는 얼음의 강이다. 그러나 강이 얼어서 생기는 게 아니고, 눈이 쌓여서 생긴다. 눈이 많이 쌓이면 자기 무게에 눌려서, 아래쪽은 점점 공기를 밖으로 방출하고 얼음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빙하는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다가 녹아 강이 되거나, 바다에 이르러 붕빙(崩氷)이 된다.

그런데, 빙하는 어떻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까? 빙하 속으로 흐르는 물 때문이다. 빙하의 구멍을 통해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흘러내린 물이 밑바닥에서 흐른다. 물은 얼음 밑으로 모여들면서 환경에 맞게 주변의 얼음을 녹여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든다. 점점 커지던 구멍은 빙하에 가려 보이지 않는 큰 강이나 물웅덩이가 되기도 한다. 그 구멍은 때때로 고층건물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심지어 저수지만큼 커졌다가 밑쪽이 붕괴되어 빙하 끝에 있는 마을을 통째로 수몰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빙하 주변 마을에서는 다이너마이트를 빙하 끝에 폭파시켜서 구멍이 너무 커지기 전에 빙하 끝단을 붕괴시킨다.)

그런데 얼음이 녹을 정도로 빙하 온도가 높은 건 아닌데, 어떻게 빙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의 모레노 빙하

얼음의 특성

다시 말하자면, 0 ℃의 얼음은 물이 매우 많고, 온도가 낮아질수록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다가 -148 ℃가 되면 모든 물이 얼음으로 바뀐다. 얼음 위의 수막도 마찬가지여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점점 얇아지다가 매우 추워지면 없어진다.

수막이 없는 얼음은 어떤 상태일까? 추운 알프스산맥에 지은 연구시설이나 남극에서 관측된 눈과 얼음은 -50~-60 ℃ 정도까지만 미끄러운 현상이 관찰된다. 그보다 온도가 낮으면 꼭 마른 모래알 같아서 미끄럽지도, 뭉쳐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눈이 기온이 높을 때 함박눈으로 오고, 기온이 낮을 때 가루눈으로 오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수막이 두꺼울수록 더 쉽게 달라붙어 덩치가 큰 함박눈이 되는 것이다. 가루눈보다는 함박눈이 올 때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기 더 좋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도 바로 이해된다. 수막이 두꺼워야 표면장력이 커서 더 쉽게 뭉치는 것이다.

얼음의 이런 특성은 진흙의 특성과 비슷하다. 진흙창은 말랐을 때는 그냥 흙바닥이고, 부서지면 흙먼지이다. 그러나 젖으면 매우 미끄럽고, 흙먼지도 한 덩어리로 뭉쳐 다시 진흙이 된다. 더군다나 진흙을 쌓아두면 표면에 물이 흘러나오면서 지도 위에 선으로 그어진 강 같은 흔적이 생기는데, 이게 얼음이 녹을 때 얼음 위에 생기는 홈과 무척 비슷하다. 이는 얼음과 진흙이 미세구조는 꽤 차이가 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무너져 내리는 모레노 빙하

얼음끼리 붙여놓기만 해도 서로 달라붙어 하나가 되는 현상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빙하 속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이유도 간단히 설명된다. 얼음에 철사를 걸어두면 철사가 얼음을 관통하여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얼음 표면에 있는 물은 얼음의 많은 특징을 설명해준다. 얼음이 무언가에 눌려서 녹지 않더라도, 수막현상 때문에 미끄러운 건 당연했던 것이다.

얼음의 이런 성질은 이미 많은 곳에서 이용되고 있다.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만드는 빙판은, 얼음 밑에 매우 찬 냉각파이프를 설치하고, 공기는 영상의 기온을 유지한다. 얼음이 차가우면 단단해서 스케이트날이 쉽게 박히지 않아 위험하지 않고 관리도 쉽다. 반면에 공기는 기온이 영상이기 때문에 얼음 표면의 수막은 두꺼워서 더 미끄럽다.

재미있는 실험 1

재미있는 가상실험 하나 소개한다. 이 실험을 성공하려면 물감을 잘 선택해야 한다.

– 준비물

얼음, 물감, 냉장고, 얼음을 팔 수 있는 끌

– 실험방법

1. 얼음을 조금 크게 얼린다.

2. 얼음 위를 오목하게 파낸다.

3. 파낸 얼음 홈에 물감을 탄 물을 붙는다. 물 온도가 너무 높으면 안 된다.

4. 냉장고에 이 얼음을 넣고, 얼음이 녹지는 않지만 최대한 높은 온도인 0 ~ -2℃로 유지한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살펴보면 물감이 얼음 안쪽으로 스며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실험 2 (추가 : 2021.08.02)

얼음의 온도에 따라 전자렌지에 의해 가열되는 속도가 다르다. 전자렌지의 전자파가 물은 가열할 수 있지만 얼음격자에 고정된 물분자는 가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0 ℃에 가까운 얼음은 쉽게 녹지만, 냉장고에 의해 -5 ℃로 언 얼음은 1~2 분은 안 녹고, 액체질소로 얼린 얼음은 그보다 훨씬 오래 안 녹는다. 그런데 차가운 얼음이더라도 손으로 잡아서 전자렌지에 넣는다면 매우 쉽게 녹을 수 있다. 체온에 의해 표면에 물이 생길 수 있고, 이 물이 매우 빠르게 가열되어 얼음 전체를 순식간에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액체질소로 얼린 얼음은 얼음 안쪽에 액체 상태의 물분자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겉표면이 녹아 물이 생길 때까지 전혀 가열되지 않는다.

직접 온도를 다르게 한 얼음을 전자렌지에 넣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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