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종병기 활], 그리고 화살의 길이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나온 애기살과 육량시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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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of the arrows, 2011

김한민 감독의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면, 주인공은 짧은 애기살[편전]을 쏘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는 무거운 육량시를 쏜다.

애기살은 나무나 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만든 한 뼘 남짓한 크기의 화살이다. 매우 빠르게 쏴져서 멀리까지 날아간다. 그러나 화살을 빠르게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가속되는 시간을 길게 해야 하고, 그래서 활이 커야 하며, 활 크기 때문에 화살을 쏠 때 고정시키는 보조기구인 통아가 있어야 한다.
육량시는 쇠로 만든 육중한 촉이 꽂혀있는 긴 화살이다. 무거운 화살을 충분한 속도로 쏘기 위해서는 활이 크고 뻣뻣한 재질로 만들어진 강궁이어야 한다. 강궁이다보니 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므로 아무나 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쏴서 맞추기만 하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고구려시대에 안시성주였던 양만춘이 이 종류의 활을 매우 잘 다뤘다고 한다. 당 태종의 눈을 맞춰서 애꾸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근데 사실 육량시로 눈을 맞췄다면, 두개골을 꿇고 들어가 뇌까지 다쳤을 것이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럼, 왜 짧은 애기살은 빠르게 쏴야 하고, 긴 육량시는 느리게 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자.

공기중을 날아가는 화살, 대포알, 총알 등은 모두 포물선운동을 한다. 이건 중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면, 날아가는 방향이 계속 바뀐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날아가는 방향이 바뀌는 것에 맞춰서 날아가는 물체도 자세를 바뀌어야 한다.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날아가는 방향과 물체의 길이 부분이 일치하지 않으면 요동치다가 뒤집히기도 하고 그렇게 불규칙하게 날아가다보니 정확히 멀리 보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날아가는 물체는 방향을 안 바꿀래야 안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날아가는 방향이 바뀌면 바뀐 만큼 공기가 옆면을 밀어서 자세가 바뀌도록 힘을 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힘을 간단히 회전력이라고 부르자.

그런데 문제가 있다. 회전력이 너무 강하면 반대쪽으로 자세가 뒤집히면서 불안정해져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너무 약하면 덜 돌다가 각도가 너무 틀어지면 불안정해져 제대로 날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날아가는 방향이 포물선을 따라 바뀌는대로 물체의 방향도 적당히 바뀌는 회전력을 찾아야 한다.

회전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속도와 면적이 있다.

  1. 속도가 빠르면 회전력이 크다.
  2. 옆면 면적이 넓으면 회전력이 크다.

회전력은 속도와 옆면 면적의 곱하기 형태로 만들어질 것이다.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그냥 쉽게 생각하자.)

회전력 ≒ 속도 × 옆면 면적

따라서 물체를 날려보내고 싶은 거리나 파괴력의 크기에 맞춰서 쏠 속도와 물체의 옆면 면적(폭과 길이)을 결정해서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가 물체의 질량이 무거우면 같은 회전력을 받더라도 덜 회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회전력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속도, 옆면 면적, 질량을 적절히 맞춰서 만들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질량이 아니라 ‘회전관성’이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날아가는 동안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안정성이다. 안정성이 좋으려면 날아가는 방향과 물체의 모양이 조금만 엇갈려도 일치시키려는 회전력이 생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이가 길어야 한다. 그러나 길이가 길면 공기의 점성저항이 커지게 된다. 그러니까 길이를 무한정 길게 만들 수는 없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산품이 아닌 이상, 활의 길이와 속도의 비율을 최대효율이 되도록 맞추기는 힘들다. 그래서 화살은 어쩔 수 없이 깃을 뒤쪽에 붙여서 자세가 바람에 더 민감하게 변하도록 만든다. 물론 공기저항이 커져서 운동에너지를 더 빨리 잃는 건 단점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깡충거미가 있다.)


이제 애기살과 육량시를 비교해보자.

애기살은 가볍다. 가볍다는 의미는 운동에너지를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린 애기살은 단순히 집어던진 막대기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애기살은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짧게 만드는 것이다. 짧은 애기살이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면 속도가 빨라야 한다. 어떻게든 화살 속도를 빠르게 만들 필요가 있다.

육량시는 길다. 속도가 느려야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멀리 보낼 수가 없다. 따라서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겁게 만들어야 한다. 무거운 화살을 날려보내려면 활이 크고 뻣뻣한 재질로 만들어진 강궁이어야 한다.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화살이 에너지를 잃는 또 하나의 요소가 휘어짐이다. 화살이 휘면 진동을 하게 되는데, 이 진동에 에너지가 쓰이며, 진동하면서 옆구리 쪽에 난류가 생기는데 이 난류가 만들어지면서 에너지를 뺏아간다. 그런데 애기살은 짧다. 그래서 휘어도 그 정도가 미미하다. 육량시는 워낙 크기 때문에 살도 두꺼운 걸 써야 한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잘 휘지 않는다.

이렇게 애기살과 육량시가 갖는 특징은 물리적으로 그럴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소이다.


이제 총알을 생각해보자. 보통 장총에 사용되는 총알은 권총에 사용되는 총알보다 길다. 이것은 권총 총알을 빨리 쏘려고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용도 때문에 그렇게 만든 것이다. 권총은 보통 가까운 곳에 있는 적을 위협하거나 자결용으로 쓰인다. 즉 멀리 보낼 필요가 없어서 어떻게 만들어도 상관이 없다. 그럴 땐 휴대가 편하면 좋을 테니 작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권총으로 먼 곳의 적을 쏴 맞추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위에서 말한대로 총알 크기에 비해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자세가 불안정해지고, 결국 방향을 지멋대로 바꾸기 때문에 표적에 맞느냐는 완전히 운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갖고 있는 운동에너지도 크지 않기 때문에 금방 느려진다. 사거리가 멀지 않은 이유이다.

영화 [원티드]Wanted의 총알은 그런 의미에서 부정확하게 묘사돼 있다.

장총의 총알은 이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다. 먼 거리까지 정확하게 날려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쏘는 사람의 흔들림이다.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는 것이 사람의 흔들림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것이다. 예를 들어 초점거리 600 mm의 렌즈로 사진을 찍을 때는 찍는 사람의 흔들림 때문에 건지는 사진이 거의 없다. 찍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만, 안 흔들릴 확률은 20% 미만이다. 총알도 사진을 찍을 때처럼 명중율에 사람의 흔들림이 큰 영향을 미친다.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옆면 면적의 영향은 (사람의 흔들림의 영향보다) 크지 않다. 그래도 좀 더 안정적으로 총알을 날려보내기 위해서는 총알의 무게와 옆면의 비율을 어느정도는 맞춰줘야 한다. 그러나 장총의 총알은 음속이라는 벽이 1차 장애로 다가오기 때문에 속도를 어느정도 이상 빠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비슷한 크기인 편이다.
물론 특수한 총알은 유달리 길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중용 총알 같은 것!

상대적으로 크기가 커도 되는 포탄의 경우는 음속을 넘어서도 되는 경우가 많아서 크기와 길이가 더 다양한 편이다. 기본적인 특성은 화살의 특성과 비슷한 편이다. 포탄의 경우 회전력을 더 잘 맞춰줘야 하는데,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신관이 땅에 충돌하는 각도가 문제가 되어 불발탄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적절히 감안해서 만든 영화로는 [코어]The core가 있다. 타고 가는 잠수함(?)이 지구의 외핵까지 내려갈 때는 길고 돌아올 땐 훨씬 짧은데, 내려갈 땐 몇 일 걸리고 돌아올 땐 단 하루도 안 걸린다. 뭐…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쪽에서 오류가 너무나 많다. ;;;;;


[최종병기 활]에서의 애기살과 육량시는 과학적으로 잘 고증된 것처럼 보인다. (세부적인 내용은 나도 활을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물론 화살을 비틀며 쏘면 휘어서 날아간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니까(이건 [원티드]를 따라 한 것 같다.), 영화적 허구인 부분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면에서 잘 만든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인물의 행동 등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아버지가 혼자 싸우다가 죽어가는 동안 어린 자인이 아버지한테 가겠다고 생떼를 과도하게 부린다던지….. 오랑캐가 언제든 처들어올 수 있는 변경에서 적이 처들어올 때 완전히 무방비였다거나 그런 것이다. 개와 호랑이 고증도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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