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점을 찍다’의 의미

국립국어원이나 국어사전은 ‘방점을 찍다’라는 관용구의 ‘방점’을 훈민정음의 성조를 나타내던 점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 방점은 성조가 아니라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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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점을 찍다’라는 말이 최근에도 사용되고 있는지 몰랐는데, 조금 전에 어떤 글에서 잘못 설명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검색해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개인들이 적은 SNS 뿐만 아니라 공신력이 있어야 할 국립국어원마저도 엉뚱한 답변을 해 놓았더군요.

국립국어원의 답변을 살펴봅니다.

뭔가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방점’은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성조를 나타내려고 글자 왼쪽에 찍던 점이 맞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평성은 점을 안 찍었고, 거성은 하나, 상성은 둘 찍었다고 합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어떻게 쓰였는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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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왼쪽에 찍힌 점들을 보자.

방점이 쓰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뒤 몇십 년만에 없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방점’이라는 말은 다른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과거시험에서 제출된 시험지를 채점할 때, 채점관이 좋은 표현이라 생각되는 글자에 점을 찍고, 나중에 그 점의 개수를 세어 점수를 매겼다고 합니다. 이때 찍은 점을 방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방점을 찍다’라는 표현의 방점은 성조를 나타내기 위해 찍던 점이 아니라 채점할 때 찍던 점을 뜻하는 것입니다.

정조가 직접 채점한 기록이 남아 있는 홍익진 시권
(출처 : 남도일보)

앞서 국립국어원에 올라갔던 질문에 나오는 표현이 얼추 이해가 가죠? ‘화룡점정’이란 화백 장승요(張僧繇)의 일화에 따른 관용어구입니다. 벽에 용 두 마리를 다 그린 뒤에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아 완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눈을 안 그려넣었냐고 묻자 한 마리에 눈을 그려넣으니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벽화엔 용이 한 마리만 남았다네요. 즉 화룡정점은 무언가를 훌륭하게 완성한다는 뜻입니다. ‘방점을 찍다’라는 말도 무언가를 훌륭하게 평가받았다는 의미이니까, 때때로 똑같은 뜻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냥 생각해도, 조선 전기에 성조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던 방점이라는 낱말이 조선 후기에 강조를 표현하기 위해 관용구로 부활했다는 말은 뭔가 이상하죠!

ps. 나무위키에 일본어에서 강조하기 위해 글자 위에 찍던 점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나라에서도 쓰이게 됐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방점을 찍다’란 표현 자체가 조선시대에 등장했으니 일본어의 영향일 리가 있겠습니까? (이 내용은 나무위키에 남아있는 일베의 흔적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말로 ‘낙점을 받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고위직 관료를 등용할 때 신하들이 적당한 후보자 여럿을 골라 왕에게 품계를 올리면, 왕은 그중에 한 명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직에 오른 것을 낙점을 받았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죠. 오늘날에도 여러 후보자를 올리면 대통령이 한 명을 골라 표시하는 방법이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ps. 국립국어원은 전두환이 퇴임하기 직전에 명령해서 1988 년에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국립국어원은 당시 10 개의 출판사가 자율적으로 제정하여 보급하던 맞춤법을 모아서 강제로 하나의 통일된 맞춤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출판사의 것을 적당히 섞어 만든 탓에 오류도 많고, 관련된 기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의 맞춤법이 개판이 된 이유입니다.
예전에 국립국어원에 문제의 맞춤법 중 몇 가지에 대해 근거가 뭐냐고 물었더니, 국립국어원은 이전기관에서 넘겨받지 못했다고 답하더군요.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처음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이전에 맞춤법을 담당하던 기관은 없었습니다. ^^; 우리가 국립국어원을 무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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