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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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하는가?

『끝없는 이야기』

미카엘 엔더 씀/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전 2권/총 678p./각 7000\
ISBN 89-310-0286

글 쓴 날 : 2006/10/30 17:04

이 책의 저자 마카엘 엔더는 누구나 제목이라도 들어봤음직한 『모모』라는 동화를 쓴 저자다. 그의 『끝없는 이야기』도 유명한 동화(?)라 할 수 있지만, 『모모』는 이 책보다 훨씬 유명한 책이다. 물론 나는 『모모』도, 『끝없는 이야기』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여서 그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나 내용을 알지 못했었다. 다만 TV에서 해 주던 <끝없는 이야기>라는 영화만 일부를 본 적이 있었다.

영화 <끝없는 이야기>는 나의 기억에 의하면 환상계를 찾아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환상계를 구해내는 장면까지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내용은『끝없는 이야기』의 1편까지의 내용에 해당한다. 사실상 1편만으로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혀 들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 내가 영화를 보았을 때 (그때가 어렸을 때이긴 하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는 문학작품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영화가 아닌 책으로의 『끝없는 이야기』를 접한 뒤에야 1편을 다 읽어갈 부렵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동화책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얻는 것이 달라지는 종류의 책으로 느껴졌다. 마치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때마다 감흥이 달라진다는 『어린왕자』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부분적으로 ‘바스티안’이 여행하는 이야기 줄거리가 SF적인 이야기를 뜻하는데, 전체적으로는 한 사람의 성장/인생 이야기를 전개해 놓은 것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끝없는 이야기』인 것도 세대를 반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번역도 오래전에(1979년) 된 책이고, 수명도 긴 편인 책이기 때문에 개역판을 내면서 출판사가 많은 신경을 쓴 것같다. 책의 앞뒤에 위치하는 속지에도 이 책만의 특별한 문양을 넣은 꼼꼼함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이 책의 제본상태도 좋았고, 인쇄상태도 좋았다. 하지만 개역판을 만들면서 미쳐 시경쓰지 못한 띄어쓰기와 오타가 몇몇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번역체 어투를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이 책을 볼때마다 두고두고 문제로 지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전체의 구성은 어린이들이 읽기를 바라는 편집이 이뤄진듯 넓은 행간으로 편집되어 있고, 한 쪽 안에 들어가는 글의 분량이 적게 편집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고,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다. 이 책을 다 읽는데 (서둘러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략 열흘정도 걸린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성인이다보니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화, 행동, 역할 등을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주의 : 스포일러….

이 책은 많은 분들의 말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어떤 방면에서도 볼품없는 한 소년이 책을 읽으면서 점차 환상계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가까스로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되면서 벌이는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이다. 소년은 환상계에서 어떤 기적(?)을 하나씩 일으키면서 그때마다
하나하나의 자신의 기억을 잃어간다. 결국 환상계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는 자신의 기억이 몇 개나 남았는지를 셀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또한 자신이 선의로서 행한 많은 행동들이 진정 ‘선’이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른이라면 이쯤 읽은 뒤로
왜 ‘어린 달님’에 대한 1부에서의 묘사(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친구나 가까이 지내는 종도 없이 무표정하게 혼자서
외로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가 반드시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이후부터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2편 약 1/4 정도 남겨뒀을 무렵에…..
주인공은 분노에 차서 친구이자 자신의 분신인 아트레유를 확실하게 처단하기 위해서 미친듯이 말을 달리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말이
지쳐 쓰러져 죽고서도 한참을 더 내달린 뒤에 결국에는 ‘늙은 황제들의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늙은 황제들의 도시’란 권력욕을
앞세워서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 자신도 잊게 됨으로서 단순한 쾌락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바스티안의 경우에도 일단 환상계로 빠져든 이상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환상계에서의 절대권력인 ‘아우린’을 갖는 자는 이 ‘아우린’을 갖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환상계의 주민들이 복종하고 도와주지만, 이 아우린을 강제로 사용하고자 할 때부터 제대로 아우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진다.
아우린은 시민들의 지지로부터 나타나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은 강제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여온다. 결국 이는 자기 자신의 기억을 잃게 작용되며, 나중에는 자신이 원하던 것들이 무엇이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은 새로운 욕구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욕구를 아예 갖지 않게 되면 ‘키 큰 나무들만 서 있는 숲’에서와 같이(p.453)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 뿐이다.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자신의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결론은 “욕구의 분출과 자제의 경계 그 어디에서 적당한 평형점을 찾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소품들은 각각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바스티안의 마법검 ‘지칸다’는 권력의 정체성, 즉
권력의 한쪽면인 무력을 상징한다. 환상계에서의 친구와 적은 모두 자기 자신의 마음 속의 많은 욕구들을 대변해준다. 아유올라 부인은
부모 혹은 선생님을 뜻하며, 때로는 코치나 멘토를 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유올라 부인이 생활하는 변화의 집은 학교를
뜻한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일깨우고, 채워주는 그런 역할이다.
‘세 개의 마술의 문’은 깨달음의 단계를 말한다고 생각되는데, 첫번째 마술의 문인 ‘수수깨끼의 문’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단계, 두번째 마술의 문인 ‘마술 거울 문’은 스스로의 자각(호기심)에 관련된 단계,
세번째 마술의 문인 ‘열쇠 없는 문’은 행운에 대한 단계을 뜻한다. (각각 한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낮은 단계에서 다음 단계의 수준은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고, 이 책 내부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독자들은 깨닫지 못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하지만 이 세 단계의 시험은 다만 시작을 뜻할 뿐인데, 이 시험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끝의 이유올라 부인 부분에서 이야기된다. 이유올라 부인에 의한 교육의 마지막 소망은 사랑에 대한 갈망
단계로 귀결되는데, 이는 정신적, 성적 성장의 결말이며, 육체적인 최종 결말이기도 하다.(주인공 바스티안이 환상계에 들어온
이후로 성형수술을 하는 것처럼 줄곳 외모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왔기 때문에 정신적인 성숙도에 비해서 육체적인 성숙도가 더
빠른 결과를 갖어온다. 육체적인 성숙도는 ‘어린 달님’에 대한 갈망으로 표현되는데, 이 갈망은 ‘사랑’이 없는 육체적인 갈망을
뜻한다. 바스티안의 친구인 ‘아트레유’가 그를 ‘어린 달님’에게 데리고 가고자 하는 것은 바스티안이 육체적인 갈망을 뛰어넘어서
정신적인 성숙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어린 달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달님’은 강제로 추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존재이고, 그 어느 누구도 갈망에 사로집한 상태에서는 두 번째의 재회를 할 수 없는 대상이다!

바스티안이 아유올라 부인의 변화의 집을 거쳐 도달한 ‘영상(影像)의 광산’은 일반적인 사회의 직장을 뜻할 것이다. 바스티안은
그곳에서 오랜 고된 학습과 경험(감각)을 통해서 성장과 참을성 있는 성품으로 변화해간다. 여기서 바스티안이 광산 속에서 찾아야
하는 ‘기억할 수 있는 꿈’의 존재는 현실세계에서 찾아야 하는 자기 자신의 거울, 즉 자신의 자녀 혹은 제자를 찾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명확지 않다.) 항상 겨울인 광산 주변의 환경이나 큰 소리에 의해서 깨지기 쉬운 얼음(=세상살이) 속의 꿈의 조각들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반영은 결코 원하지는 않지만, 그리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작가의 고뇌가 옅보이는 장치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최후에 꿈의 조각을 찾은 뒤에는 그 조각들을 생명의 분수로 가져가야 한다. 생명의 분수는 생(生)과 사(死)를 구분하는
경계로서 생명의 분수를 둘러싼 검은 뱀은 자신의 자녀 혹은 제자를 발견하게 됐는지를, 흰 뱀은 이승에 대한 이별의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결국······· 우리가 생명의 분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해방되고), 자신에 대한 느낌마저 사라질 때 최종 목표에 도달하리니·····.

생명의 분수로 가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과 –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마져도 잊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잊을 때 그 사람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는 단 하나는 ‘사랑할 수 있다는 기쁨‘일 뿐이다. 이 기쁨이야말로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사실상 바스티안이 환상계로 뛰어든 이유도 ‘어린 달님’에 대한 ‘사랑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테니·······!!

현실세계로 돌아온 바스티안은 바로 생명의 분수는 죽음을, 생명의 물은 눈물을 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책임감'(이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명확지 않지만)이 생겨나게 된다. (10살 어린애인 주인공에게 책이감은 너무 빠른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권해줘야 하는지를 한참을 생각해 봤는데…… 결국 포기했다!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이 책 또한 읽으면 좋을 특정 독자층이 존재할 리 만무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됐으니까 비교해보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값은 싸지만, 글쎄…. 원한다면…..

ps.
확실한 것은 『어린왕자』보다는 책의 수준이 좀 낮다는 것이므로 주의하기 바란다. (물론 이야기하는 바는 이 두 책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된다.)

[#M_ps.|ps.|
서점주인 ‘코레안더’라는 이름은 ‘korean’의 변형으로 역자가 저자의 집필 당시 연락상태를 유지했기에, 저자가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네모>에서도 나왔듯이 서구에서는 우리나라를 철학의 탈출구나 신비한 세계로의 관문같은 이해하기 힘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_M#]
[#M_ps. 나의 단계 (개인적인 잡담)|ps. 나의 단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정신적 성숙도의 단계에 대해서 생각해 봤지만 그 결과가 심히 걱정스러웠다. ‘세 개의 마술의 문’은 통과를 한 상태이고, 아유올라 부인의 변화의 집까지는 조기졸업한 나지만, 그 이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영상의 광산’의 입구에서 영상의 광산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는 단계가 바로 나의 단계라고 생각된다. 정신적으로는 이제서야 겨우 ‘사랑할 수 있다는 기쁨’을 겨우겨우 깨달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보다 깨달음의 단계가 10년쯤 늦게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건········ 일종의 비극이다.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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