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없었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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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에 대해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게 있었는데, 유투브에서 달과 관련된 재미있는 영상을 발견하고서, 이에 대해 검색하다가 2016 년에 쓰여진 서울경제 민병권 기자의 뉴스를 보게 됐다. [슈퍼문보다 무서운 건 노문(No Moon)]달이 없다면 지구는 목성같은지옥별…“내가 있어 생명이 있노라”라는 기사다.

이 기사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자.


녹색 상자는 기사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고, 그 아래의 글은 내가 붙이는 것이다.

시계를 지구 탄생 초기인 약 45억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6~8시간였다. 자전속도가 현재의 24시간으로 느려진 것은 지구 초창기 탄생한 달의 인력이 지구를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만약 달이 없었다면 아마 지구의 자전 시간이 6~8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김경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블로그에서 밝혔다.

김경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의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했지만 달을 만들지는 못했을 가능성이다.

45억 년 전에 지구의 자전주기가 6~8 시간이 됐던 것은 당시 테이아가 지구에 충돌할 때 자전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런 충돌을 격지 않은 금성과 화성은 자전주기가 지구보다 길다는 건, 지구가 테이아와 충돌하지 않았다면 지구의 자전주기가 극단적으로 빨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말한다. 따라서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던 것을 가정한 말이라면 김경렬 서울대 교수의 말은 틀린 게 된다. 그렇다면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했지만 달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한 말일까?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높겠다. 그런데 테이아의 충돌이 어떤 형태로든 달을 만들지 않았다면 충돌 형태가 달랐을 테니, 하루가 6~8 시간이 됐을 거라는 말은 역시 옳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주류학설인 다이너모이론에 따르면 금속으로 구성된 지구 외핵은 지구 자전으로 대류를 해 이 과정에서 생긴 유도전류가 우리 행성의 자기장을 발생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전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외핵의 회전력 등도 빨라져 지구 자기장이 강해지게 된다. 현재보다 자기장이 강해지면 태양에너지(각종 전자기파와 하전입자들)가 한층 더 강하게 차단당해 지표와 해수면에 닿는 에너지량이 줄어든다.

이 말은 틀렸다. 다이나모 이론에 의하면, 지자기가 지구 자전에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생성되는 이유는 내핵, 외핵, 맨틀의 자전속도 차이 때문이다. 그리고 각 부위별로 자전속도가 차이나는 이유는 지구가 주변 천체로부터 강한 조석력을 받기 때문이다. 달과 함께 지구에 강한 조석력을 미치는 천체는 태양인데, 태양의 조석력은 달의 절반밖에 안 된다. 따라서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각 부위별 자전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적게 차이날 것이므로, 달이 없었으면 자기장은 오히려 약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와 모든 면에서 거의 같은 금성의 경우 지자기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약하다.(물론 자전속도도 거의 멈춰있다시피 할 정도지만….)

자기장이 강해지면 태양에너지가 강하게 차단당한다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전입자 형태로 전달되는 태양풍이 더 강력하게 차단되는 건 사실일 테지만, 지구에 전달되는 거의 모든 에너지는 빛의 형태이므로 자기장과는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다.

여기에 더해 빠른 자전으로 낮의 길이가 현재보다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는 지구 최초의 생명체로 꼽히는 남조류(학술명 ‘시아노박테리아’)가 생명활동을 위한 광합성을 하는데 악조건이 된다. 초기지구 남조류의 광합성 활동이 저하되면 지구 대기엔 현재처럼 산소가 풍부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길이 문제는 앞에서 말했으므로 넘어가자. 남조류 이야기는 맞는 말이라고 한다.

지구가 하루 8시간 이하로 빠르게 돌면 그 엄청난 자전속도로 인해 대기권은 온통 시속 수백㎞급의 폭풍들로 뒤덮이게 된다고 과학계는 보고 있다. 하루 10시간의 자전속도를 가진 목성의 대기가 실제로 이렇다.

이 말은 맞을 것이다. 실제로 금성의 경우 음속을 넘는 제트기류가 관찰되기도 했다. 물론 지표면에 이런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뻥을 심하게 쳤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달이 없다면 지구의 극지방과 적도가 수백년마다 수시로 바뀌는 기후대재앙도 초래된다. 이는 주류 학설인 대충돌이론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 생성 초기인 45억년경 지름 6,000㎞급의 거대한 천체가 날아와 우리 행성에 충돌했다. 테이아(Theia)로 이름 붙여진 이 천체와 부딪힌 충격으로 지구 지각의 17% 이상이 부서져 지구 주변의 우주에 흩어졌다. 이 파편들이 지구의 중력권에 묶여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주위를 돌다가 서로 부딪히고 뭉치면서 달이 태어났다는 게 대충돌이론의 골자다. 당시 충돌로 지구의 자전축은 기울어졌으며 이후 지구 주위를 근접해 도는 달의 인력이 안전핀 역할을 해 기울어진 자전축의 각도가 23.4도로 일정하게 유지돼 왔다. 마크 리차드슨(Mark Richardson)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부교수는 “달은 자전축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달이 없다면 지구는 목성처럼 됐을 것이다. 목성의 자전축은 적게는 15도에서 많게는 75~80도 가량 틀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선 테이아가 6000 km급이라는 말은 틀렸다. 아마 원시지구의 크기 이야기일 텐데, 기자가 자료를 옮기다가 착각한 것 같다. (내가 지름과 반지름을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목성의 자전축은 적게는 15도에서 많게는 75~80도 가량 틀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읽고 또 읽어봐도 모르겠다. 자전축이 틀어진다는 말은 각운동량이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각운동량은 에너지, 운동량, 전하 등과 함께 양이 보존되는 대표적인 물리량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각운동량을 공급받지 않는다면 자전축은 변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각운동량을 공급받는 방법은 직접적인 충돌과 조석력 뿐이다. (이외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 더해도 영향력이 매우 적다.) 따라서 자전축이 저렇게 틀어지려면 조석력이 엄청나게 강하거나, 뭔가와 심하게 충돌해야 한다. 이건 당연히 말도 안 된다. 만약 목성의 자전축이 저정도로 크게 변해왔다면, 지구도 달이 있는 것 정도로는 자전축을 고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달까지 포함한 지구-달 시스템 전체가 심하게 변화를 겪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들의 자전축은 태양계가 생성된 45억 년 이후에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자전축이 변하는 건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큰 위성을 갖고 있는 지구 뿐이다. 지구 자전축이 황도면을 기준으로 4`1000 년을 주기로 변하는데, 이는 달이 움직이는 백도면이 황도면을 기준으로 변하는 주기와 같다. 다른 말로 해서, 지구와 달 사이의 조석력 때문에 지구의 자전축이 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한 밀란코비치의 이론이 맞고(이건 확실하다.), 위의 말을 한 마크 리차드슨(Mark Richardson)의 말도 맞다면, 달이 있기 때문에 지구는 지금도 계속 기후대재앙을 겪는 셈이다.

아마도 마크 리차드슨의 말은 저런 말이 아니었는데 잘못 와전된 것일 듯하다. (진짜 저렇게 말했다면, 이 사람의 전문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낮은 태양에너지와 산소농도, 요동치는 대기환경과 기후대재앙은 생명탄생 가능성을 저해한다. 이런 악조건에서 가까스로 생명이 발생했더라도 높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 아니라 환경변화 적응이 더딘 고등생물로의 진화는 어려워 지구엔 박테리아 등과 같은 원시생물들이 주류를 이뤘을 것이라고 과학계는 보고 있다.

달이 없다면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이 고등동물로 진화했을 가능성은 현격히 낮았을 것이다. 그러나 달이 ‘낮은 태양에너지와 산소농도, 요동치는 대기환경과 기후대재앙’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명이 탄생하게 만든다.

참고로, 이 문단에 산소농도는 잘못 들어간 것이다. 기자가 잘못 넣은 것이다.


위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달은 지각을 늘 들썩이게 만든다. 그래서 지구에는 화산이 더 많이 분화하고, 지진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그만큼 한 번에 분출되는 에너지의 양은 더 적을 것이다. 또한 지구가 방출하는 에너지 양이 더 많이 늘어나서 안과 밖의 온도차이를 크게 만들어 맨틀이 운동하게 만들고, 외핵도 영향을 받아 지자기가 강해질 것이다. (반대 상황은 금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판구조도 없고, 지자기도 없다.) 거기다가 밀란코비치의 연구대로 장기적인 기후변화도 일으킨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에 생명체가 생겼다고 해도 이후에 안정된 식생분포를 이루기 때문에 진화의 속도는 매우 더뎠을 것이다. 그러나 달은 지구의 환경을 계속 변하게 만들었고, 이런 변화는 생물을 계속 멸종시키면서 식생에 틈을 계속 만들었다. 이런 변화에서 살아남고, 새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생명은 계속 진화했다. 진화하지 않으면 금방 멸종당하기 때문이다. 당장 호모사피엔스만 해도 등장한 뒤 최소한 두 번은 완전히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한 번은 빙하기 때문이었고, 한 번은 화산 폭발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달이 고등문명이 만들어지는 기본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기사의 가장 끝 문단과 시작 문단이다.

태양계에는 각각의 행성을 도는 150개 이상의 위성(달)들이 있지만 지구엔 유일한 달이야 말로 생명의 방패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 하순 달이 지구에 가장 근접하는 ‘슈퍼문’현상을 보이자 일각에선 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으나 슈퍼문이 뜰 무렵이면 지진이 발생했던 전례가 있던 탓이다. 이로 인해 달은 마치 재앙을 부르는 전조처럼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달이 없었다면 우리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학자들은 목성과 같은 극한 환경의 별이 돼 생명 발달이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병권 기자가 달을 찬양하고 싶었던 맘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랬더라도 이런 엉터리 기사를 쓰지는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전문성도 없이, 일반적으로 사회에 통용되는 상식의 오류를 그대로 기사에 옮긴 건 정말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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