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 패러독스] 물을 휘저으면 먼지가 왜 가운데 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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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출판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 분이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군요.(그 분도 물리학과 출신이시라더니 평소에 궁금한 점이 많으셨나봅니다. ^^) 다른 건 다 그 자리에서 답변해 드렸는데…. 이 질문을 듣고는 “이건 나중에 글을 써야겠네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래가 그 질문입니다.

[찻잎 패러독스]

Tea Leaf Paradox

물통 속에 먼지가 있을 때 물을 휘휘 저으면 왜 물통속의 먼지들이 가운데로 모일까?

단순히 밀도나 질량만 따지면…. 무게나 밀도에 따라서 무거워 가라앉은 먼지는 밖으로, 또 가벼워 뜬 먼지는 가운데로 모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먼지 모두 무조건 가운데로 모입니다. 분명히 물리적 지식이 말해주는 직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혹시 먼지가 모이는 모습을 보시지 못하셨다면 간단한 실험을 해보고 글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물통을 하나 준비합니다. 물통은 아무것이나 괜찮습니다.
물통에는 적당량의 액체가 여러 종류의 먼지와 함께 섞여있어야 당연히 관찰이 쉬울 겁니다. 먼지는 꼭 고체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실험이 힘들긴 하겠지만, 기름같이 물에 안 녹는 액체나 기체도 좋습니다.
물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또 채워진 액체는 적당량의 점성이 있어야 합니다. 극저온에서의 헬륨액체같은 점성이 없는 초유체이거나 유리나 엿같은 점성이 높은 액체 속에서는 실험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그것들이 들어있는 물통이라면 우리 상식이 통하지 않음은 당연하겠지요.
이런 물통이 준비됐으면 실험을 합시다. 사고실험에 능하신 분이라면 그 또한 괜찮습니다.

1. 먼지가 베르누이의 법칙에 따라 가운로 힘을 받는다.

우리의 경험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액체는 그냥 보통 물로 생각합시다. 온도, 압력도 일반적인 실험실 환경으로 생각하는 15℃, 1기압(atm)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물통을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ㄱ물통 : 손을 넣어서 물통의 물을 젓기 시작합니다. 이때 물의 속도가 물이 도는 위치와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운데 물은 거의 처음 속도를 유지할 것이고, 가장자리 물은 물통의 마찰로 속도가 줄어들 것입니다.

ㄴ물통 : 가운데 물이 바깥 물보다 도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가운데 물이 주변 물보다 속력이 빠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가운데 물이 한 바퀴 도는 시간, 즉 주기가 더 짧습니다.

ㄷ물통 : 물속에 먼지 하나를 넣습니다. 이 먼지는 (물통의 중심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든지 물통의 가운데와 바깥쪽을 스치며 흐르는 물의 속도가 차이날 것입니다. 먼지를 기준으로 물통의 가운데쪽으로 스치는 물은 더 빠르게 흐르고, 물통의 바깥쪽으로 스치는 물은 느리게 흐릅니다. 따라서 유체가 스치는 흐름의 속도가 빠를수록 압력이 낮아진다는 베르누이의 법칙에 의해서 물이 더 빨리 스치는 가운데쪽이 압력이 낮고, 힘을 약하게 받습니다. 이렇게 힘을 받는 먼지는 나선을 그리면서 서서히 가운데로 움직이고 결국 한 가운데로 갑니다.

ㄹ물통 : 그런데 작은 먼지는 큰 먼지보다 물이 스치는 흐름의 차이가 더 작습니다. 더군다나 힘을 받는 면의 넓이도 작은 먼지가 작습니다. 결국 큰 먼지가 작은 먼지보다 (질량까지 비교해도) 중심으로 향하는 힘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그래서 먼지들은 클수록 먼저 가운데로 모이고, 작을수록 나중에서야 서서히 모여듭니다.

물 흐름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물을 막 저은 직후에는 물 흐름의 차이가 그리 크지도 않을 뿐더러 물속에 와류가 상당히 심하므로 가운데에 모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흐름이 느려질 때까지 가운데로 모이지 않고 계속 물을 따라 돕니다.

2. 수면이 높아진 회전 가장자리의 압력이 마찰력에 의해 순환을 만든다.

아래 그림은 물통을 옆에서 봤을 때의 그림입니다. 물의 회전을 무시하고 반지름 방향의 움직임만 표시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물 위에 떠 있는 가벼운 먼지들이 가운데로 모여드는 이유를 간단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물에 뜬 먼지가 가운데에 모이는 이유

물은 관성[원심력] 때문에 가장자리의 수면이 더 높아지고, 그래서 가장자리의 밑바닥 압력이 더 높습니다. 이때 바닥의 가운데와 가장자리의 압력차이는 물의 회전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가운데로 가는 물의 흐름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물이 돌 때 물이 벽 쪽으로 가려는 관성[원심력]이 압력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물 밑바닥에서는 마찰에 의해서 물의 회전이 느려지고, 따라서 관성[원심력]이 줄어들다보니, 밑바닥에 있는 물은 중심으로 향하는 힘을 받게 됩니다. 이 흐름은 결국 물 전체가 순환하게 만듭니다. 마치 바람이 저기압 중심부로 나선을 그리며 모여드는 것과 같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에 의해서 가라앉은 무거운 먼지가 가운데에 모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가벼운 먼지도 가운데에 모입니다. 이때 물 위에 떠 있던 먼지는 물과 공기의 가운데에서 두 유체의 중간쯤 되는 속도로 움직입니다. (공기도 초유체가 아닌 이상 물과의 마찰 때문에 조금 느리게 회전합니다.) 따라서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한 압력차이가 생겨서 가운데로 모일 것입니다.

물론 물에 뜬 먼지는 밀도차이에 의해 얼마나 가라앉느냐와 회전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얼마나 빠르냐의 경합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이걸 고려한다면, 역시 먼지에 따라서 회전 초기에는 모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회전이 느려지면 결국 모이겠지만요.

2022.02.20 추가

유투브에서 이와 관련된 영상을 발견했다. 이 문제가 오래전에 그냥 ‘찻잎 패러독스’로 알려져 있다는 걸 알려줬으며, 물리학자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과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1857 년과 1926 년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게 나왔다. 그래서 위 본문에 이름을 넣었다. 참고로, 위에 적은 내 글은 기존의 이론을 모르고서 그냥 내 추론을 적은 것이다. (그리 어려운 추론은 아니다.)

The Red Sky Paradox

ps. 이 영상에서 말하는 ‘The Red Sky Paradox’ 문제도 언젠가 한번 글로 써보고 싶다. 워낙 중요한 문제인데(?) 고전역학만으로도 따질 수 있는 문제이다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그 결론이 옳으냐 아니냐는 위 영상을 만든 분도 말하듯이,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5 comments on “[찻잎 패러독스] 물을 휘저으면 먼지가 왜 가운데 모일까?”

    1. 물 속의 이야기라서 전하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

  1. 음…저는 베르누이의 원리에서 “유체의 속력과 압력이 반비례한다”는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www.topianet.co.kr/topia/6/6s/6s090106.htm

    속력이 빠르면 압력이 작아지고, 속력이 느리면 압력이 커지는 관계는 “압력+속력 = 일정”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반비례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쓰신다면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반비례한다”는 표현도 맞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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