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과 사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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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급히 걷다가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면
주위를 한번씩 둘러본다.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내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

사진기를  갖고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그건 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기 속에 선명한 지금의 모습을 담으려면
나는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길을 걷다가 문뜩 사진기를 쓸 때가 있다면
신호등이 나를 막아설 때일 것이다.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면
가로등, 연석, 화분, 사람들 모두 내게 달려든다.

쉼 없이 내딛는 내 발걸음…..
수도없는 발자욱을 만들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신호등이 내게 신호하기 전까지는….

신호등이 내게 신호할 때에서야
나는 사진기의 렌즈로 지금을 남긴다.
지금을 남기는 내 곁에는
여기가 바삐 지나가고 있다.

렌즈를 통해 내가 남긴 지금은
누군가에게 여기가 되고,
내 곁을 바삐 스쳐지나간 여기는
누군가에게 지금이 되어간다.

결국 급한김에 걸어가면서 셔터를 누르지만
희뿌옇고 아리송한 모습은
희망도 없는 더듬이의 끝자락에 맺혀있는
화석의 돌덩이 각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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