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전에 공개한 글인데, 1년 전 처음 작성했던 원본입니다. 그동안 제 생각이 아주 약간 바뀐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공개해 봅니다.
이 세상에는 천재가 많다. 많아도 너무나 많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천재였지 누가 알겠는가?[footnote]내가 생각할 때, 천재는 없다. 또한 천재가 아닌 사람도 없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은 천재가 되는 것이고,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나?[/footnote]
어렸을 때 똑똑했거나 뭔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러한 천재성은 서서히 또는 급격히 사라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천재성은 오직 하나 – 태어날 때 선천적이었다는 이유 뿐일 것이다. 그러면 후천적인 학습과 노력은 어디까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까? 노력은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많이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footnote]보통 “넘사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footnote]…. 그것이 없는 사람이 바로 천재일 것이다. 하지만 천재도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선현의 노력으로 구축된 결과물을 익히기까지 지도해 줄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를 거부하는 천재도 있다. – 그래서 아주 드물긴 하지만, 강압적인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천재를 지도하는 것은 일반인 능력과 시각으로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인생을 겪으며 얻은 뛰어난 지혜와 지식, 천재가 갖고 있는 천재성과 관련된 경험, 그리고 통찰…. 이런 것을 갖고 있지 않다면 천재를 천재로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창발적인 학습능력과 남다른 시각을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이 천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것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이 아닌 학원 강사라거나….. 과외 선생은 부모보다 훨씬 더 정확히 아이의 천재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어렸을 때 천재였고, 꿈을 향해 전진하다 어떤 한계나 문제를 부여잡고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는 상업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속성에서 생긴다.
피아니스트를 꿈꿔왔으나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호로비츠를 위하여》 주인공 엄정화는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말썽꾸러기 경민이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 꼬마를 지도하여 겨우 피아노 연주의 기초를 닦게 만든다. 그러나 그무렵… 경민이는 혼돈속에 빠져든다. 피아노를 잘 치면 좋아하는 선생님과 이별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과 오랫동안 있기 위해서는 성과물을 내보이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부모를 잃었을 때의 아픈 기억까지 더해진다. 혈연이 아닌 지연으로 엮인 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자아상실 모습이다.
엄정화는 이 상황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경민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욕망과 천재적인 경민이를 가르치기엔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다달았다는 깨달음 사이의 혼란이다. 이 순간 엄정화에게 경민이는 놓아 버리기는 아깝고 잡기엔 벅찬 계륵같은 존재가 된다. 감성을 기반으로 한 욕심은 경민이를 하루라도 더 지도하여 이용하라 부추기고, 이성은 경민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보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 다달아…..
결국 경민이를 더 큰 스승에게 양자로 보내는 엄정화.
경민이는 경민이 인생이 있고, 자신이 경민이 앞길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천재가 아닌 일반인 엄정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점이 매우 특이한 점이고, 이 영화를 “영화로 천재를 보다” 시리즈 첫번째로 다루는 이유다. 영화 중반에 약간 촛점이 흔들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이한 소재를 멋지게 잘 소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천재가 부모 욕심과 사교육 무덤 속에서 범인(凡人)이 되고, 급기야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대다수 천재가 외로움과 고통 속 삶을 살아야는 이유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남발한다. 이 영화 초반에 이를 지적하기 위한 대사도 나온다.
“학원하는 친구에게 들으니까요 3개월 배울 거 6개월씩
가르치고 그런데요. 그리고 학원 찾아오는 애들은여, 무조건 소질있다고 그러세요. “
결국 이 영화는 자녀와 학생에 대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집단교육체제의 사교육이 횡행하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옳은 길이 될지를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천재나 개성있는 인재가 나오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천재에 대한 범인들의 시각을 전반적으로 참 잘 담아낸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또다른 영화 《아마데우스》나 《굿 윌 헌팅》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s. 이 글은 사랑하는 조카 원진이와 원탁이를 생각하며 작성됐다.
ps. 비슷한 구성의 1992년 영화 《Little Man Tate》가 있다는 소문이다. ^^


천재가 되고싶은가봐요 불쌍
누가 천재가????
누가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