좃같은 사람이 오래 는 것이 아니라 오래 는 사람이 좃같은 것이다.
[#M_2007.10.13|2007.10.13|
나의 친구 한 명이 죽었다.
대학교 때 1학년 2학기 과 학년대표였고, 처음부터 줄곳 학생회 활동을 하던 녀석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점이 형편없기 마련인데 그 녀석은 그러면서도 3.0을 넘기는 유이한 녀석이었다. 마음이 여리고 너무 착해서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후배는 물론이고, 교수님, 직장에서까지 꽤나 인망이 넓던 녀석이었는데…..
불과 얼마 전, 1월에 있었던 동기회에 나와서 같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 녀석은 2월에 위암 중기 판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우리의 주위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우리는 그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 원자력병원으로 가야 했다.
병원에서 처음 만났던 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라는 것을…
슬펐지만 티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어머니의 기억에 힘겨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차마 다시는 병원으로 그 녀석을 만나보러 가지 못했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종종 눈물이 나려고 한다. -_ㅜ
이제 그 녀석이 떠나갔다.
그 녀석은 아마도 그 녀석의 어머니가 장례식장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장례식장 방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어머니 꽁무니를 쫒아 졸래졸래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어제 늦은 시간에 마지막으로 그 친구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다. 어머니를 모신 방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때 어머니의 분위기를 사방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오랜 투병에 지칠대로 지치신 어머니의 마지막 길은 힘겹고 고달픈 그 자체였다. 나는 어머니가 가시는 마지막 길을 아버지가 병원으로 데려가시지 않아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뒤에 집을 나왔었다. 하지만 그날 나의 거처로 채 다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내가 다시 어머니에게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고 계셨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일까? 그렇게 내가 도착한 뒤 한 시간을 채 버티시지 못하고서 임종을 맞이하시고 계셨다.
눈물이 안 났다. 슬프지도 않았다. 나의 앞에 ……. 어머니는 그냥 계신데…..
(눈물이 난다… 그러나 전에도 한번 시도했다가 끝내지 못한 이 이야기는 이 글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번에 있을 가까운 지인의 죽음 앞에서 나는 또 도피를 할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 장소에서 나는 계속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상주인 나는 동네 사람들이나 누나들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도 방에서 아이들과 장난하고, 웃으며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는 나의 마지막 모습은 나의 평상시의 모습이기를 원했다. 어머니도 나의 우는 모습보다는 평상시의 모습을 더 원하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루, 또 하루, 그리고 삼일…..
어느덧 발인날이 되던 그 날….
아버지는 아침 일찍 어머니 묘소자리 준비하는 곳을 살펴보신다고 대문 밖으로 나가시고 계셨다.
방에서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짐에서 기르던 세 마리의 개들이 갑자기 합창을 하듯이 하늘높이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무슨 일이냐고 서로 붇고 답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서야 나는 눈물이 났다. 숨었다. (혼자서) 엉엉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처음 그렇게 울었다.
두번째 운 것은 시간이 훨씬 더 지나서였다.
장례를 치른 뒤에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유품을 불에 태우기 위해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울음이 쏟아졌다. 조카가 내 옆에 와서 내 울음소리를 흉내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몇 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러번 울었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내가 울지 않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됐을 때였다.
저녁은 정말 맛있었다.
하루종일 울었으니 맛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도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오늘도 그렇지만, 요즘도 가끔 어머니 생각하면서 눈물을 짓곤 한다.
지하철같이 어머니와 함께 기억이 얽혀있는 물건을 보면… 그곳에 어머니가 서 계신 것 같다. 어머니가 병원(연대 세브란스)에 가실 때는 항상 지하철을 이용하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항상 병원에 같이 가곤 했다. 지하철에서 어머니가 무료하실까봐 쓸데없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했다. 지하철이 역내로 들어올 때는 어머니가 나를 붙잡으셨고, 나는 뒤돌아서서 어머니가 지하철을 보지 않으시도록 막아들여야 했다.
다섯살 때 기차를 타러 갔을 때는 어머니가 나를 잡아주시고, 뒤돌아 가셔야 했었다. 그렇기에….. 지하철을 보면 어머니가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구지 너른 들판을 보고 있거나 들판에 나 있는 사소한 풀데기, 꽃 한송이, 벌레 한 마리에도 어머니와의 추억이 얽혀 있기 때문에 첫 1년간은 정말 거의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기간이었다. -_-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가셨고, 나는 아프다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을 심적으로 상당히 꺼려했다. 나 스스로도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다. 심지어는 제작년에 신장결석 때문에 고통 속에 화장실 옆에 붙어 살아야 했을 때도 3일동안 버텼다. 오줌에서 피가 나와도 최대한 버텼다. -_- (물론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을 몰아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하지만 언제까지 어머니와 내 기억 속에서 같이 살 수는 없는 일이고, 어머니 말고도 또 다른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친구 녀석이랑 어머니는 딱 한 번 만났었을 것이다. 아버지 환갑잔치 때…
어쩌면 저세상에 가면 친하게 같이 지내지는 않을지????
어제 친구 한 녀석이 이런 말을 했다. “오래 살려면 좃같아야 하나보다.”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다. “좃같은 사람이 오래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사는 사람이 좃같은 것이다.” 라고~_M#]
ps.
저세상에서 우리 어머니 만나면 잘 해 드리고, 너도 잘 지내라~ 진해야.
ps.
이 글은 시한부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