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서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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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적를 처음 만난건 92년 봄이었습니다.
당시 교보문고가 2년간 내부 수리중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종로서적으로 집중됐었죠. 2월말 처음 종로서적에 방문했던 날 재수하던 나는 참고서를 사러 갔었는데 들어가서 물건 집고 빠져나오는데 두 시간 반이나 걸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

종로서적을 시작하게 된 사건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그때쯤이었습니다. 당시 정일학원(지금도 남산 산기슭에 있죠??)에 다니던 나는 그곳에서 윤리를 가르치시던 분한테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는 일제시대 때…..

당시 일본사람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던 사람들이었고 조선인은 거의 노예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죠.

한 가난한 조선인이 기차를 타고 매일 일하러 다니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일본인이 조선인을 차별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던 그는 애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꼭 출세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일하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탈 때마다 앞자리에 앉게 되는 일본인 처녀를 보고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는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답니다. ^^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막노동을 하면서 벌어먹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기차를 타고 가서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하여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던 그는 자기 하루 벌이 중 일부를 때어서 매일 책을 샀다고 합니다. 그것도 정말 알아보기 힘든 영어로 된 전공서적들을…
하루에 한 권씩 꼬박꼬박 구입해서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매번 다른 책을 들고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를 상상해 보세요. 더군다나 시간의 오차도 거의 없이 한 장 한 장을 규칙적으로 넘기면서 읽어가는 모습을요….
일본인 처녀는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을 넘어서 1년여를 변함없이 매일 다른 책을 들고 타는 그 남자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

결국 그 일본인 여자는 이 남자와 사귀게 됐고, 교제는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일본인 여자 집안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놓칠 수 없었기에 아버지를 졸라서 일본으로 이 남자를 데리고 가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남자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핑계(?)로 그 남자를 자신의 집에 자취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죠 아마….. 이 남자는 사실 한국에서도 별로 배운것이 없는 남자잖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집에 들어오는 날들이 계속됐다고 합니다.
여자는 물론 일본에 오자마자 그렇게 돌변한 남자의 태도 때문에 말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남자는 남자대로 말 못하고 끙긍 앓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났을 때….
마침 딱 맞춰서 한국에서 사귀던 여자가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고 합니다. 아마 그 여자네가 꽤 잘 살았던가 봅니다. ^^
이 남자는 그 여자한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일본에서 의사를 하고 있던 자기 친척에게 문의를 했고…. 이 의사와 함께 모의를 했다고 합니다.

1. 여자와 여자 집안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계단에서 심하게 구를 것!
2. 반드시 자기 병원으로 올 것!
3.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것.

결국 이 남자는 의사가 시키는대로 했고, 이 의사는 기억상실증 진단을 내렸다네요. 뭐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할 때 쯤….. 일본인 여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 남자를….
초등학교 수준부터 하나하나 다 가르쳐 결국 대학까지 졸업시켜 줬다고 합니다. ^^;;;;;

후에 한국에 돌아온 그 남자는 그동안 사뒀던 원서 책들을 가지고 서점을 차리게 됐고, 그것이 종로서적의 효시라고 합니다.



종로서적의 시작은 참 웃겼죠? ^^
종로서적에서 처음 구입한 것은 국사 교과서였습니다. 고3 때랑 재수할 때랑 교과과정이 4차에서 5차로 틀려졌는데 다른 건 참고서로 모두 공부했는데 국사만은 교과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재수할 때 국사를 잘 하게 됐는데, 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야 되는지 깨닫게 되거든요.

그 뒤 대학을 다니면서도 꽤 자주 종로서적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영풍문고가 생기긴 했지만 영풍문고가 규모도 작고 서점이라기보다는 문방구같았기 때문에 (처음 문을 열 당시에는…. 지금보다 잡화 파는 곳이 더 넓었었습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지요.
반면 교보는 책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책 정리가 상대적으로 되어있지 않아서 책 찾기가 좀 더 힘들었었습니다. 종로서적은 책 정리가 잘 되어있었지만 건물의 구조의 취약성이 존재했지요.
책(冊)을 볼 수 있는 공간은 2~5층까지였고, 1층은 좀 떨어진 곳에 교과서와 기타 예매하는 곳이었습니다. 2층은 참고서, 3층은 소설/문학, 4층은 이공계 서적, 5층은 원서 코너였는데…..
문제는 건물 구조가 수직이다보니 여름에는 4,5층에 뜨거운 공기가 모여서 책 보러 가기 힘들었고, 겨울에는 2층에 찬 공기가 모여 너무 선선해 책 보러 다니기가 힘들었었습니다. 거기다가 영풍문고의 지하철과 직접 뚤린 출입문 때문에 상대적으로 찾아들어가기 힘든 종로서적이 불이익을 당했었구요….

결국 우리나라의 종로서적이 온라인 서점의 확장에 의해서 무너지는 결과로 서점계는 일대 지각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리운.. 종로서적…..

건물을 수평구조로 바꾸고… 운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그런 곳입니다. ^^
종로서적…. 앞으로도 수십년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겠죠. ^^

ps.
이 글은 2005.11.17에 오마이뉴스에서 작성했던 글을 재공개하는 것입니다.
지금 오마이뉴스 시절의 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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