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화와 고도화의 함정

6 comments

1. SBS “도전! 성공시대 내일은 모델퀸”
2006년 여름에 위의 제목과 같은 TV 방송물이 있었다. 짧게 <도전 모델퀸>이라고 불렀었다. 11명의 모델 경험 없는 미시들을 뽑아서 몇 달간 훈련시켜 (훈련도중 부적격자는 계속 탈락시킨다.) 그 중 한 명을 패션모델로 활동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이며 전부인 프로그램이었다.
첫 방송은 보지 못했지만 두 번째 방송부터 종종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11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제각각인 나름의 미를 풍기고 있었다. 처음 볼 때 어떤 미시가 끝까지 살아남을까 하고 궁금했기에 계속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보기에 세 명 정도는 상당히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고, 일반적인 모델과는 얼굴이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다. 물론 11명 중에서 두세 명의 생김새는 일반 모델들과 상당히 비슷한 편이었다.
처음 볼 때 대략 다음과 같은 가정을 했다.

1. 대략 모델과 비슷한 사람들과 호감 가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끝까지 살아남는다.
2. 최후에 살아남는 사람은 모델과 비슷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첫 번째 가정은 정확히 적중했다. 최후의 5인이 살아남을 때에 내가 찍었던 여섯 중에 다섯이 살아남았다. 모델과 비슷했던 나머지 한 명은 도중에 연습시간에 지각이 너무 많아서 탈락했다. 여기서 내가 한 두 번째 가정이 안 맞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모델과 비슷한 사람들과 호감 가는 사람들의 탈락 순서가 섞여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델 훈련 학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세 명의 탈락자를 발표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남은 두 명은 처음 보던 날 모델처럼 생겼기 때문에 최후에 남아있을 거라고 했던 세 명중의 두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언제부터인가 여성의 상품화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그런데 이 두 미인대회에서 뽑히는 여자들은 일반 대중에게 미인이라는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미스코리아의 ‘진, 선, 미’ 3명만을 놓고 보더라도 미인이라는 평을 받지 수상자는 별로 없다. 물론 간혹 정말 기막힌 미인(고현정 같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인대회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일반 대중들의 미적 감각에 맞지 않는 미인(?)들이 뽑히는 것일까? 미인대회 혹은 평가단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일반 대중들이 잘못된 것인가?

레이싱걸
레이싱걸이란 원래 자동차 경주에서 관객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성적인 상품과도 같은 여자를 뜻했었다. 레이싱 대회를 구경 온 남자들에게 눈요깃감 정도로 준비됐던 모델들이라 생각하면 될듯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뜻의 폭이 넓어져서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도우미들을 일컫는 용어가 됐고, 최근에는 각종 전시회 등에도 많이 불려 다닌다. 일반적으로 레이싱걸들은 미와 신체적 조건에 따라서 초기 등급이 결정되고, 인기에 따라서 등급이 약간씩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레이싱걸들 중에 인기가 많아지면 모델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가장 최후의 목표인 탤런트 같은 연예인이 될 길도 열려있는 편이다. 하지만 사실 레이싱걸에서 모델이 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모델퀸’,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레이싱걸’의 문제에서 공통적인 문제는 일반인들의 미적 감각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각각의 미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너무나 전문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삐쩍 마르고, 골격이 장대한(?) 여자들이 대부분 모델이 된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브라질의 한 모델 소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 모델계의 비평이 사실은 전문 비평가의 비평 기준의 고도화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2. 마다가스카르의 크산토판 박각시와 마다가스카르 난초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동남쪽으로 꽤 멀리 떨어진 지역의 거대한 섬이다. 이 섬은 외부로부터 격리된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진화한 생물들이 많이 있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이 처음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했을 때 그는 꿀샘이 28cm나 되는 깊은 꿀주머니를 갖는 난초를 보고 28cm나 되는 주둥이를 갖는 곤충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40년이 지난 뒤에 크산토판 박각시라는 28cm의 주둥이를 갖는 나방이 발견되면서 증명되었다.[footnote]박각시라는 곤충 종류는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한다.[/footnote]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다른 곤충에게 꿀을 빼앗기지 않고 크산토판 박각시에게만 수정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점차 꿀샘의 깊이를  깊게 했고, 크산토판 박각시는 그에 맞춰서 점차 주둥이를 길게 만든 것이다. 주둥이가 조금이라도 짧은 박각시나 그의 후손들은 쫄쫄 굶어 결국은 모두 죽게 됐을 것이다.

이처럼 두 종이 서로에게 의지해 오랜 시간 고립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 쪽이 위기에 처하면 다른 쪽도 같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에서 크산토판 박각시가 멸종위기에 처하자 마다가스카르 난초도 같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 희귀한 난초는 깊은 꿀샘만큼이나 인공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꽤 긴 수명과 인간의 노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점차 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멸종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른 종들에게 베타적이었던 두 종은 결국 다른 종들과 융합하지 못하여 멸종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닐까?
이들 종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 종들은 꽤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닐라와 벌새나 침이 없는 꿀벌과의 관계이다.

3. 대학입시 – 교육부와 교육기관(고등학교, 학원)
최근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때문에 말이 많다. 각 대학들은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외치면서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무력화를 외치고 있고, 교육부는 이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다. 현재까지는 대학의 재정을 통제할 수 있는 교육부의 승리로 끝나는 것 같지만, 그게 과연 이대로 끝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교육열은 특이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 상태다. 모든 것을 족보화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분석하는 교육기관(고등학교와 사설학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점수에 꼭 필요한 부분의 지식만 반복하여 습득하는 형태의 교육방법을 사용한지 오래 됐다.
다른 모든 제도는 선진국을 본받자고 하면서 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데, 이상하게도 교육제도만큼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교육부와 교육기관이 상호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 정하는 어떠한 기준에 맞춰서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무엇이 올바른지 등등의 가치관이나 앞으로 원대한 지식을 쌓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사람들은 없다. 심지어 30여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본고사를 출제했는데 문제는 다음과 같은 유형의 문제였습니다.

x2 – 3x + 1 =0
위의 문제의 해를 근의 공식을 사용 이외의 방법으로 구하시오.

70년대이던 당시 간단한 이 문제의 오답율이 40%를 넘었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중2~중3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이차방정식의 풀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근의 공식 유도과정의 이해)를 하지 않고, 결과인 근의 공식만 열심히 외웠다는 것이다. 당시는 본고사 시절이었으므로 예비고사에서 합격한 사람들만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상위권인 0.1% 안에 들어야만 원서라도 낼 수 있는 대학이었다. 그런 학생들조차도 기본적인 근의 공식의 유도과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고, 이러한 경향은 오랜 시간동안 교육부와 교육기관들의 상호 공생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실이 아닐까?

우선 교육부가 어떠한 틀을 정해주면 교육기관은 그 틀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고만고만한 학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좀 특이한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나 빨리 진도를 나가는 학생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은 교육계의 적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문제아로 ‘찍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그런 학생들은 교육부와 교육기관이 학생의 점수를 평가하는 줄 세우기에서 이탈해 있고, 그들만의 고도화된 교육방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의 고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고, 이들을 제거해서 자신들의 고도화를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고도화에 맞물려 기업들도 교육부의 평가에 알맞은 학생들을 뽑아 활용하려고 한다. 그러고서 한다는 소리가 다음과 같은 소리다.

교육이 문제다. 인재를 더 천재화시켜야 한다.”   – 이건희 삼성 회장

최근 들어서 기업들이 대학교육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만을 토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기업들은 스스로 인재를 뽑을 때 실력이 좋은 학생의 미래를 보고 뽑는 것이 아니라 당장 부려먹을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순종적인 인재만 뽑아서 그러한 학생들을 선발해 길러낼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교육부와 교육기관, 기업들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정해진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M_만약 교육부가 통제를 할 수 없는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만약 교육부가 통제를 할 수 없는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우리나라 전체가 갑자기 바뀌기 위해 몸살을 앓게 되거나 교육부의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 죽이기 시도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교육부와 교육기관은 엄청난 고도화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런 상항에서는 희생 없이 되돌아오기는 힘들 것이고, 어떠한 붕괴가 있어야 되돌아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쎄… 이번 대선에서 대권후보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교육개혁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공약은 기존 교육계 인사와 기관들의 이익과 상반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약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를 지켜보는 것도 한 가지 재미라고 생각한다._M#]

4.  가수와 기획사
우리나라에서 연예기획사가 등장한 것이 언제부터일까?1995년에 이수만에 의해서 설립된 SM엔터테인먼트에 의해서가 아닐까? 그 이전까지는 연예매니지먼트사가 존재한다고 해도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었다. 요즘의 개념처럼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뽑아서 팬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만을 훈련시키고, 연예계에 데뷔시켜 짧은 시간동안 이득을 본 뒤에 한순간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연예인들의 복잡한 일을 도와주고, 약간의 이득을 얻는 수준의 개인 혹은 기업들이었다. 따라서 실패의 확률도 높았던 것이 사실!!
그러다가 SM엔터테인먼트사가 설립된 이후에는  SES나 HOT같은 그룹들부터 시작하여 공격적인 시도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많은 대형 엔터테인먼트사가 생겨서 모두 똑같은 의상에 똑같은 춤과 노래를 부르면서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들의 외모(특히 코)마저도 똑같아져서 노래나 사진만 보고는 가수를 구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요계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당사자들의 주장대로 인터넷이란 매체의 발달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양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의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고도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모든 가수들은 하나의 흐름 위에 줄을 서게 된다. 다양성이 보장되던 시절에는 그 방법이 통했지만, 결국 다른 방향의 시도가 점차 줄어들면서 다양성이 사라지자 대중들이 그들의 노래 전체를 외면하게 됐고, 현재와 같이 음원시장의 축소라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닌가?
현재의 상태에서 다른 시도들을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중들이 이미 엔터테인먼트 사들에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가요계가 재건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사들이 사라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5. 정권과 언론 – 독재자 권력과 보수언론의 공생
정언유착…..
현재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는 전두환이 집권하던 5공 때나 가능한 일이었을까? 사실 정언유착뿐 아니라 정경유착도 극히 최근까지 행해지고 있었음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별히 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정언유착이란 것 자체가 정권과 언론의 고도화에 따른  상호 공생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언유착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반대쪽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는 인터넷에 의해서 보수언론 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보니 언론과 심하게 유착했던 정치세력들은 점점 더 심한 위기에 몰리게 됐다. (물론 진보의 탈을 쓰고 반대쪽으로 정언유착을 했던 세력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대중은 사실 지지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6. 애플 매킨토시와 애플 매니악의 관계
가장 강력한 고도화를 이뤘던 관계중 하나가 애플과 애플의 광팬들[footnote]매니악(Maniac)이란 매니아(Mania)를 넘어서서 어떤 한 대상을 광적으로 좋아하여 무엇인가를 새로 창출해 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좋은 의미의 뜻도 있고, 나쁜 의미의 뜻도 있다.[/footnote]이었다. 애플은 퍼스널컴퓨터(애플[footnote]애플의 퍼스널 컴퓨터(PC)의 이름은 몇 차례에 걸쳐 변화됐다. 초기에는 ‘애플’이라 불렸고, 나중에는 ‘매킨토시’로 바뀌었다.[/footnote])을 가장 먼저 만든 3인에 의해서 설립됐고, IBM에 의해 PC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도 애플의 팬들은 많았다. 사실 초기에 애플의 PC들은 IBM 호환기종에 비해서 안정적이었고, 선구적이었으며, 운영체제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IBM 호환용 운영체제인 windows가 초기 애플의 운영체제의 기능을 모두 수용하는데 20년이나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하지만 애플과 애플의 광팬들은 스스로 그들만의 세상에 갇히게 됐고, 이들은 점차 세상에서 분리되어 갔다. 물론 애플의 PC들이 IBM보다 훨씬 나은 면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들만의 리그들이 너무 폐쇄되다보니 첨차 애플의 입지를 약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애플 이외의 시장에도 신경을 써 개방하기 위해서 외부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으나 그 시도는 얼마 가지 않아 애플이 다시 폐쇄적으로 되돌아가게 되면서 실패했다.

아직도 애플의 PC들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광팬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흐지부지 사라진 PC로 인식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애플들의 광팬들은 어느 순간 이미 IBM 호환 컴퓨터들이 애플의 컴퓨터들과 대등하게 됐음을 인지하게 됐고, 여러 의도로 애플의 시장 자체가 너무 축소된 것이 아닐까?

7. 출판사(편집자)와 독자 – 간편하고 가벼운 것만!!
대한민국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책들은 출판사의 편집자들에 의해서 완성된다. 편집자들은 책을 만드는 전문가들이며, 보편적인 글을 독자들이 좋아하는 형태인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부터 독자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독자들의 변화 원인을 인터넷으로 돌린다. 문단 하나의 길이를 최대한 짧게 만들어서 독자들이 읽기 쉽게 만들고, 내용 또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독자들이 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몇 분들은 내 블로그의 글들이 너무 문장이 길고, 어려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며 더 인기 있고 대중적인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좀 더 쉽게 쓰라고 조언해 주곤 한다. 이러한 조언은 online상에서 뿐만 아니라 offline상에서, 내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친인척과 식구들까지도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마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내 블로그는 (내용에서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글쓰기의 형식면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자들의 변화에 발맞춰서 편집자들도 점차 문장을 간결하고 짧게 만들어간다. 마치 반세기 이전의 황순원 선생이 쓴 『소나기』[footnote]물론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는 작품성이 워낙에 뛰어나 인정을 받는 것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가볍고 서정적인 글이어서 소년과 소녀의 상태를 잘 표현한 형식인 것도 인정받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소나기』와 같은 수준의 글이 오늘날 발표된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요즘 글들은 다 비슷한 글들이기 때문에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소나기』가 인정받은 이유는 당시에는 글들의 다양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footnote] 가 최후의 올바른 출판의 결과물인양 모든 출판물을 그렇게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이러한 독자와 편집자의 관계는 앞 절에서 말했던 마다가스카르의 크산토판 박각시와 마다가스카르 난초
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 가능성을 출판인들도 오래전에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뒤돌아가기는 불가능해져 보였다.

(예전에 어떤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인터넷 저작물을 엮은 그 출판사의 책을 읽었다고 하자 “그 쓸데없는 책은 왜 읽었어요?” 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 책이 인기 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물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 그 책을 출판한 편집장의 입장이었고, 내가 봐도 그랬다. -_-)

보통 인터넷과 같은 수준의 책을 펴낸다면 그 책을 굳이 구입해서 읽을 필요성은 없다. 블로그의 RSS를 구독해서 읽거나 메타 사이트 혹은 포털의 인기 글들을 죽 훑으면서 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예전에 말했듯이 우리가 하루에 인터넷에서 읽는 text의 양은 이미 보통 단행본 한 권의 분량을 훨씬 넘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매달 3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offline의 책을 따로 챙겨서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offline에서 읽을 책은 그만의 특징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한두 종류의 가벼운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을 차지하자 점차 모든 책들의 경향이 그쪽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옛날과 똑같은 『어린왕자』를 읽더라도 예전 사람들이 읽던 뜻 깊은 어린왕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별들을 여행하는 동화로서의 『어린왕자』만 읽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반시장의 붕괴 못지않게 출판시장의 붕괴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footnote]솔직히 내 블로그의 글들은 그런 면에서 online의 블로그보다 애초부터 offline의 책으로 기획되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footnote]
  ☞ 생각해보면 지난 교육과정의 ‘논술’ 과목의 신설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8. 언론(News)과 독자의 관계
언론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기존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언론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그 의미마저 바뀌고 있다. 기존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은 이미 일반 대중에게 넘어갔고, 새로운 정보를 시의성 있게 전달한다는 의미조차 일반 대중, 특히 블로거들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Ohmynews이고, 다음 블로거 기자단이다. 물론 아직은 일반인들이 취재하는 것은 기존의 제도적 제약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 현재 남아있는 속보성에 대한 뉴스와 취재의 어려움에 대한 부분만 언론이 담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점점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News는 권력이다.
지난여름에 있었던 나루터님의 UCC Academy에서 들은 설명이다. 뉴스는 정보의 독점에 의한 권력이고, 많은 언론사에서는 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한다. 그리고 독자는 이 권력의 유혹에 이끌려 뉴스를 읽는다. 그러다보니 언론과 독자는 고도화된 하나의 틀 속에 갇힌 것이다. 이 구속은 오래 이전 시절의 독재정권 시절에 인위적으로 구성되어 만들어진 것이고, ‘5. 정권과 언론 – 독재자 권력과 보수언론의 공생’ 꼭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결국 뉴스읽기를 따라가지 않은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언론과 독자는 고도화가 매우 진행되어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뉴스를 조작한다고 하여도 이미 이를 비판하고 수정할 힘이 없는 것이다.

9. 소니와 닌텐도 → ‘독선’과는 다르다.
전 세계의 게임 개발사들 중에서 커다란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에 존재했었다. 그만큼 일본의 게임개발 인프라는 훌륭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업체 하면 소니와 닌텐도를 꼽을 수 있다. 한때는 매우 작았었던 이들 기업들은 각종 게임 타이틀과 게임기를 통해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물론 게임 이외의 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한 기업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닌텐도가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게 됐고, 대부분의 시장은 소니에게 넘어가게 됐다. (이때쯤 MS에서 XBox라는 제품으로 새로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이 되자 소니에게서 무언가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니의 psp는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됐고, 시장은 또다시 닌텐도로 넘어오게 됐다.

소니와 닌텐도의 흥망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최근 어떤 분이 MMORPG는 중독성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기 시장은 중독성을 그 기본으로 한다.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계속 게임을 하게 되고, 하지 않던 사람들은 게임 자체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니와 닌텐도의 시행착오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품 psp나 닌텐도 오락기에 대한 소비자의 중독성을 너무나 과신했고, 독선을 보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결국 그들의 영향권에서 모두 이탈해 버린 것이다. (사실은 중독성이 강하기는 했지만, 특정 기기에 대한 중독성은 강하지 않았고, ‘게임’ 자체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생명의 나무
아프리카에는 생명의 나무가 산다고 한다. 사방이 모두 메마른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에는 수명이 수천 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살고 있는데, 이 나무가 어떻게 그 곳에 살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물론 그 부근에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그려놓은 암벽화가 존재하는 것을 봐서는 생명의 나무가 어렸을 때도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생명의 나무가 어떻게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살게 됐을까?

아주 오래전, 인류가 막 문명을 만들려고 하고 있을 수천 년 전에 사하라 사막은 남쪽으로 확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히말라야 산맥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하라 사막이 성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는 수많은 커다란 나무들이 존재했는데, 오늘날 살아남은 생명의 나무는 그 중에서 한 그루였다고 한다. 생명의 나무는 주변의 나무들이 말라죽어갈 당시에도 이미 지하수면에 뿌리가 닿아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물을 계속 흡수할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 지하수에서 물을 흡수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footnote]같은 이유로 사하라사막 서부에도 나일악어들이 소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footnote]

어떤 둘 혹은 서너 개체의 상호 고도화의 결과는 사하라 사막의 생명의 나무와 마찬가지로 매우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 삶을 지탱하게 해 줄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이 힘은 매우 불완전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약점을 남기게 된다.

전 세계가 하나의 사회로 통합되면서 점차 가장 강한 것들만 살아남는 추세로 변화하는 것 같다. 정말 좋은 것 한 가지만 만들 수 있다면 성공하기는 더 쉬운 좋은 측면이 존재하는 이면에는 DNA, 문화, 조직의 단순화를 통한 문재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항상 염려해야 하는 것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프로화와 고도화의 함정은 결국 대중들의 선택권 제한 현상이 나타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말이 종결할 수 있음을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 사회는 진화의 섬에 갇힌 현상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6 comments on “프로화와 고도화의 함정”

  1.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성은 굉장히 중요하죠. 잘 읽었습니다.

    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11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두 개를 지웠다죠. ^^;;;

Energizer Jinmi 에 응답 남기기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