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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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에 대한 추억



오늘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라서 유난히도 수능/학력고사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래서 나도 한번 작성해 보려고….

1. 사상 최악의 경쟁율….

우리때는 1992년…. 선지원 후시험제를 했던 몇 해 안되는 재수 더럽게 없던 학번이었다. 오직 딱 한 곳에 원서를 낼 수 있었고, 원서를 낸 학교에 가서 학력고사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곳에서 삐끗하면..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대절명의 순간…..
25만여명의 대학 총 정원(2년제 대학 포함)에 지원자는 110만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원자 숫자는 1992년이 가장 많았지 않았나!!!! 당시 베이비붐의 영향이었다. 내가 낸 학과는 3대1이었다. 150명 중 50명이 되면 합격하는 시험….

2. 왜 하필 시험볼때마다…
그러니까 때는 1992년 12월 7일경…. 결국 시험 당일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근 일주일을 몸살로 헤메던 나는 결국 학력고사 당일까지도 기침을 콜록거리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입 연합고사 시험을 볼때도 감기때문에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시험보던 생각이 났다. 기억에 의하면 내 좌우, 앞뒤번호 모두 미역국을 먹었던 것으로 확인했었다. 당시에 570여명 중에서 540명이 합격한 시험이었으니까 나때문에 떨어진 사방 4명은 어느정도….. (당시 그 분들께는 미안하다. -_-) 나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그런데 대입에서도 똑같이 기침을 하며, 열에 몸을 덜면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날씨는 지독히도 추웠고, 거기다가 비까지 부려댔다. 밖엔 영하로 떨어지면서 점심을 넘어설 무렵에 얼음이 얼기 시작했고, 창문은 온통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으며, 나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추위와 싸우면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어찌보면 어떻게 그 몸으로 하루종일의 시험을 무사히 다 풀었는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3. 학력고사 난이도 실패!
1992학년도 시험, 그러니까 1년 선배들의 시험은 사상초유의 고난이도 문제였다. 고2 겨울방학식 무렵에 담임 선생님(수학당담)께서 그 해 대입시험 수학 문제지와 풀이집을 3장 갖다가 풀어보라고 우리반 3명한테 주셨다. 방학을 한 뒤 크리스마스 직전에 수학 한 과목만 하루종일 풀고도 40점을 겨우 넘길 수 있었다. (75점 만점. 당시 고등학교 수학 진도를 겨우 끝낸 상태여서 내용은 다 알겠는데, 문제들이 너무 어려웠다.) 수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목들이 전년대비 엄청난 난이도를 보였던 한 해였다. 거의 만점맞던 선배들이 수학과목 한 과목에서만 40점으로 추락해 대학을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을만큼…
그래서 고3 1년간 그정도의 문제들이 출제되도 다 풀 정도로 고난이도 문제들을 상대하면서 시험공부를 했다. 하지만 막상 시험문제를 받았을 때..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암산으로 다 풀리는 문제라니!!  Oh my god!!

4. 과연 시험결과는???
시험전 일주일부터 시험 다음날까지 거의 열흘을 몸살을 앓은 뒤에야 겨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시험을 볼 때 무척이나 아팠기 때문에 많이 걱정을 했고, 결국 모의고사 평균보다 15점밖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20점 오른 사람은 붙고, 15점 이하 오른 사람은 확실히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상당히 혼란한 시간들이었다.
시험 발표 전날 학교에서 일하는 사촌누나한테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하루 전에 모두 출력된다.) 그리고서는…..
가장 마지막에 떨어진 사람이 나였다. TT
점수차는 0.4점…

5. 대입 후기 시험에서….
후기를 지원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선생님과 면담하고….
선생님 말씀 “어짜피 재수할 테니까 낮은데 가서 합격률이나 높여라.”
결국 호서대를 지원하게 됐고, 시험보기 전날 호서대학교에 갔다가 천안공고에서 시험보는 고사장까지 확인하였다.
예산에 사는 아버지 고향친구분 댁에서 하루 부탁드렸기 때문에 아버지 고향친구분 댁으로 향하던 시외버스에서…
한참 신나게 달리던 버스 안에서 졸고 있던 나는 무언가 강한 충격파를 느끼고 눈을 떠야 했다. 잠시 후 탄 버스가 논으로 쏘옥~~!!
“헐~” 하고 있다가…. 다른 차가 와서 그 차를 타고 예산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다른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긴급속보를 전해주고 있었다.
“~~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시험을 잠정 연기한다고 교육부가 발표했습니다.~~”
뭐 결국…. 아버지 고향 친구분 댁에 들려 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6. 후기 시험을 볼 것이냐 말 것이냐?
~라고…. 제목을 정했지만, 후기시험은 보질 않았다. 사실 집안식구들 어느 누구도 새로 잡힌 후기시험을 신경쓰지 않았고, 나 또한 신경쓰지 않았다. (후기시험 보는 날 아침 TV보고서 새로 시험보는 날인 걸 알았다. ㅎㅎㅎ)
아버지가 재수는 절대 불가 방침을 공표했지만, 매형과 나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재수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1년여의…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지루하고 쓸모없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7. 결론….
한 번의 낙방과 재수에 이은 두 번째 도전으로 뭐 대략 300점이란 넉넉한 점수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1992년 12월 시험이나 1993년 12월 시험이나 난이도는 큰 차이가 없었고, 시험보는 당일 추운 것도 매한가지였다. (시험보는 날 정하는 사람들한테 일기예보 하라면 잘 할텐데…) 하지만 1년간 더 공부한 것이 있었고, 시험보는 당일 경험에 의한 컨디션 조절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첫번째 시험에 비해서 50점정도 오른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재수생활을 통해서 황금같은 1년을 허비했지만 약간이나마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기간동안 체력 안배법을 익히거나 불면증같은 경험을 쌓을수도 있었다. ^^;) 이 기간이 내 인생의 최대 낭비가 된 것은 그 기간이 영향을 미쳐서… 결국 전공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서 생각한다.

8. 지금 살펴보면….
지금 살펴보면.. 참 재수없던 두 번의 학력고사였다.
한번 떨어지면 1년을 낭비해야 하는 시험…. 무조건 암기해서 문제를 풀어야 했던 시험…
대학교 1학년 때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심심풀이로 첫번째 수능을 풀어봤을 때…. (시간을 몇 시간 쓰지도 않았다.) 얻은 수능 점수가 내가 당시 다니던 학과 수석 점수랑 거의 비슷했었다. 수능을 제작년까지 계속 풀어봤는데 계속 300점(400점 만점)을 넘었던 것도… 나와 학력고사와의 악연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요즘 학생들 보면 참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학생이 많았고, 대입정원도 적었던 우리때 친구들과 이야기도 안 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올 여름 고등학생들의 시위소식을 접할 때 학력고사로 찌든 우리때보다도 더 생각이 짧아진 것을 느끼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서 출발한 것이리라~

시험보는 와중에 작년처럼 자살하고 그런 이야기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과거의 참담했던 생각들을 끄집어 내놓아본다.








  수험생들에게…..
 전에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수능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험이 긴 하지만 단지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이란 것을 명심하세요.
 이 시험결과와 상관없이 당신의 미래는 지금부터입니다.
 대학에 떨어졌다고, 혹은 붙었다고 그에 따라 인생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니 지금부터 정말 열심히 하세요.

 인생은 계속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면서 한 목표를 향해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속에서 성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밝은 미래를 위해 화이팅~!!

6 comments on “학력고사에 대한 추억”

  1. 아… 그리고 그 다음에 수능으로 바뀌었네요.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수능 2세대였을텐데… ㅡㅡ;; 모의고사는 몇 번 본 기억이 나네요.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녔더라면 지금 어떻게 다른 쿨짹이 되었을까 생각해보죠. ^^

  2. 저와 연배가 같아서 그런지 추억이 같네요.
    ‘암산으로 풀리는’ 수학문제라는 표현이 정말 딱입니다.

  3. 정말 1년전 선배들의 문제는 사상 최고의 난이도였죠. 그거 보고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1. ㅎㅎ 무시무시까지는…. 1년 더 공부하면 다 풀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풀이시간을 100분 안에 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죠. (고3 1년간 문제풀이 요령도 느니까.. 아마도 다 풀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안되면 찍는 실력도 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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