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년 역사의 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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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와 직접 살펴봤던 기억을 이론적으로 보완하여 적은 것일 뿐이다. 이후에 2021 년에 다시 손본다.

온돌(Ondol)은 구석기시대부터 사용해온 우리 민족의 유서깊은 난방 방식이다. 

가장 최초의 유적은 바이칼호 인근에서 발견된 5만 년 전 것이다. 움막의 바닥을 길게 파고 얇고 판판한 돌을 덮은 뒤에 한쪽에서 불을 때는 원시적인 형태였다. 비슷한 시기의 북한 회령 유적에서도 온돌이 발견됐다. 당시의 빙하기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꽤 넓게 퍼져있던 문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온돌을 사용하는 지역은 한반도, 만주, 티벳 일부 지역 뿐이다.

내가 2014 년에 우즈베키스탄에 여행을 갔을 때, 고산민족의 집에서 원시적인 온돌을 본 적이 있다. 형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엌에 아궁이가 있었는데 그 위에 주전자나 솥을 걸어 음식을 할 수 있었다. 그 옆으로 길게 연결된 좁고 긴 앉을 곳이 마련돼 있었고, 이불도 갖춰져 있었다. 그 끝에는 굴뚝이 서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잠자는 방이 온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온돌이 워낙 원시적인 거라서, 벽은 관광객을 위해 나름 보온을 잘 해 놓았는데도 방은 감기 안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금방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서 거기 사람에게 구들개자리에 대한 설명을 해줬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

알래스카 아막낙 섬 유적에서 발견된 고래자리 (출처 : 나무위키)

알래스카의 아막낙 섬에서 원시적인 구들의 형태가 발견됐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바이칼호 인근에서 발견된 최초의 유적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추정연대도 기원전 1000 년경이었다. 이 유적은 몽골족이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남긴 흔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뉴이트족과 아메리카 인디언은 몽골족과 같은 몽고반점이 있다. 게놈 연구결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의 삼국에서 따로 발전하던 온돌 문화가 통일신라시대에 하나로 집대성되어 오늘날의 온돌로 완성됐다.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아자방이라는 전설의 온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리산 반야봉의 칠불사에는 49 일간 온기를 보존한다는 전설의 아자방이 있다. 금관가야 출신의 담공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1948 년에 공비를 토벌한다고 불태워 파괴됐다가 1982 년 김용달 옹(당시 82세)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런데 원래 구조를 알 수가 없어서 일반적인 온돌처럼 대충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험했더니 온기가 열흘 동안 보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계속 연구하여 2019 년에 다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25 일 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진짜 예전에는 49 일 동안 온기가 보존됐을까?

신기한 것이 그동안 온돌 방식이 어째서 다른 민족에게는 전파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로마시대에 히포카우스툼(hypocaustum)이라는 온돌이 사용되었다. 오라타라는 상인이 부동산 가치를 높여 판매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원리는 우리 온돌과 같지만, 구조가 달라 효율이 낮고, 목욕탕 같은 큰 건물에 큰 규모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땔감 등의 보급이 힘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큰 재력을 가진 로마 귀족 몰락이 유럽 온돌 문화의 종지부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온돌의 원시적인 형태는 종종 관찰된다. 그런데 그것이 온돌처럼 효율성을 높이며 체계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이는 온돌의 기본원리는 단순할지 모르겠지만 따라하기에는 여러 가지 난해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온돌은 난방의 효율성과 편의성 등이 매우 높아서 최근들어 외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온돌을 이용한 난방 방식이 전통 난방방식을 밀어내고 있다고 한다.(출처)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었는지, ‘Ondol’이라는 말이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온돌의 기본적인 구조를 보자. 필수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아래 그림은 온돌방을 아궁이와 굴뚝을 연결하는 선으로 잘라본 단면도다. (그림은 내가 대충 그렸으니 보기 힘들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1. 불을 땔 때의 공기의 움직임

①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거운 공기가 구들 속으로 들어와 좁은 구조의 부냉기를 지나 구들개자리에서 와류를 형성한다. 이 와류는 솔리톤의 일종으로 제자리에서 계속 맴도는 흐름이다. 구들개자리에서 빠져나온 뜨거운 공기는 고래자리(아궁이에서 들어온 뜨거운 공기를 각 고래로 분배하는 공간)를 지나 각 고래(구들) 속으로 들어간다.

② 구들을 통과한 공기는 뒷쪽의 고래자리를 통해 하나로 합쳐져 뒷쪽의 고래개자리로 들어간다. 고래개자리는 굴뚝에서 들어온 빗물이나 이물질이 고래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고래개자리에서도 와류를 형성하지만 특별한 역할은 하지 못한다. 이후 굴뚝을 통과하여 외기로 방출된다.

아궁이의 불이 잘 안 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잘 들게 되는 것은 고래와 굴뚝이 점차 가열되면서 뜨거운 공기가 위로 향하려 하기 때문이다. 굴뚝의 역할은 가열되면서 불이 잘 들게 하기 위한 목적과 연기를 높은 곳으로 보냄으로서 생활공간이 연기로 가득 차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과 바람이 부는 날에도 불을 때기 위해서다. (굴뚝이 없으면 맞바람에는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없다.)

③ 고래의 경사각은 불이 잘 들게 하기 위해 최대한 경사지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너무 경사가 심하면 공기가 열을 전달할 틈이 없으므로 최대한 경사가 완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조건을 고려하여 적당한 경사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5˚ 정도가 적당한 각도로 평가받고 있다.)

2. 불을 땐 이후의 공기의 움직임

불을 다 땐 뒤에는 아궁이를 막아야 한다. 아궁이를 막지 않으면 불을 땔 때와 같은 공기의 흐름이 계속 유지되어 찬바람이 아궁이로 들어가 구들개자리와 고래의 뜨거운 열을 식히는 역할을 한다. (불을 땐 뒤에 아궁이를 꼭 막아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는 아궁이로 개나 고양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방에서 자는 사람은 추워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추운 겨울날에 고양이나 개가 따뜻한 아궁이에 들어갔다가 죽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아침에 불을 때려고 할 때 불 붙은 고양이가 아궁이에서 뛰쳐나온다거나 밤에 강아지가 아궁이로 들어가 구들개자리나 고래개자리까지 들어가 죽는 걸 본 적이 있다.)

① 구들개자리에서 가열된 열은 고래자리를 통과하여 고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고래를 뜨겁게 달구면서 서서히 식는다. 이 공기는 식은 공기이긴 하지만 외부의 공기보다는 훨씬 온도가 높다. 그러므로 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지 않고 다시 구들개자리로 되돌려보낸다. 고래의 높이를 아랫목과 윗목을 똑같이 만들면 되돌아가는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랫목은 뜨겁고 윗목은 차갑게 될 것이다.

② 공기중 극히 일부만이 고래를 지나 굴뚝을 통하여 밖으로 방출된다. 이 공기의 양이 적을수록 온기를 더 많이 유지하므로 좋은 온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적게 만들면 불을 땔 때 불이 잘 안 들므로 적절하게 빠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때로 굴뚝 쪽도 아궁이와 마찬가지로 막을 수 있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3. 구들개자리의 용도

구들개자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는 열을 최대한 많이 저장하여 오랫동안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아궁이에서 들어온 뜨거운 공기를 적절히 고래에 분배하도록 흐름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구들개자리가 없다면 아궁이와 가까운 아랫목의 장판이 까맣게 타버리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인터넷에는 아궁이에서 가열된 공기의 흐름을 구들개자리가 죽이는 역할을 하므로 구들개자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구들개자리의 역할은 흐름의 속도를 줄여 더 많은 열을 고래에 전달하여 머금게 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아궁이의 뜨거운 열기가 금방 식는다면 불을 충분히 때지 않은 것일 뿐이다. (열역학 법칙으로 따져보자면 사라진 열은 어디로 갔을까? 모두 구들개자리와 구들창을 가열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이 열은 언젠가는 다시 나온다.) 방이 매우 크다면 고래의 경사각을 고려할 때 아랫목의 구들장의 두께가 두꺼워야 하고, 부엌의 아궁이 깊이도 매우 깊어야 한다. 이런 방에 불을 땐다면 매우 오랫동안 은근히 때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불을 때면 아주 오랫동안 따뜻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다.

옛 흙집에서 구들개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뜨거운 공기가 매우 빠르게 고래를 지나가므로 고래의 경사를 작게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구들장의 열용량이 작아진다. 따라서 불을 땐 저녁에는 매우 뜨거운 방바닥이 된다. 그러나 이 열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필자가 잤었던 몇몇의 진짜 전통 흙집에서는 새벽 세 시가 넘어가니 무척 추워졌었고, 아침에는 방 안의 물그릇이 어는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현대의 건축물에선 단열이 잘 되므로 얼음이 얼 정도까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구들개자리는 필수요소다. 또한 구들장 재료와 높이도 무척 중요하다. 구들장의 종류는 비열이 작은 화강암류보다는 비열이 크고 열전도도가 작은 운모 등으로 구성된 암석이 좋다. 높이는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주변 지면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일반적인 온돌 주택은 주변보다 높게 돋은 뒤에(홍수를 대비한 것이다.) 그 흙의 높이와 동일하게 온돌을 설치한다. 결국 부엌의 아궁이는 온돌보다 1 m 정도 깊어지게 된다.

참고로 필자가 어렸을 때 살았던 전통가옥은 온돌에 구들개자리가 없었다. 구들개자리는 고래를 청소할 때(고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재와 그을음이 많이 쌓여 불이 잘 안 먹게 된다. 이 때 짚을 뭉쳐서 두꺼운 철사나 막대기에 묶고 고래를 쑤셔 청소한다.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영화에서 굴뚝청소를 하는 모습을 위아래가 아니라 옆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온돌방의 굴뚝 옆을 보면 청소하기 위해 벽을 뜯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 검댕과 재가 쌓이므로 청소하기 힘든 구조물이 된다. 따라서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하는 일반 가정에서는 쓰인 경우가 적다.

옛말에 ‘양반집 문지방은 낮고 쌍놈집 문지방은 높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양반집의 온돌에는 구들개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아침까지 따뜻하여 문지방은 낮게 만들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반면, 쌍놈집 온돌에는 노동력을 절약하기 위해 구들개자리를 만들지 않아 새벽이 되면 몹시 추워지므로, 문 틈새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이 최소한 자는 사람의 코보다 높게 하여 감기를 예방하고자 문지방을 높게 만든다는 뜻을 갖고 있다.(우리집이 구들개자리가 없었다고 쌍놈집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집안은 유서깊은 가문중 하나다. 다만 한국전쟁 중에 피난나와서 대대로 사용하던 가옥에서 살지 못했을 뿐이다. ㅜㅜ) 민속촌에 방문하면 한번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구들개자리 설치방법은 저녁에 불을 때고 그 열로 아침까지 온기를 유지해야 하는 전통가옥에서만 사용하는 방법이다. 끊임없이 계속 불을 때는 구조의 가옥이라면 구들개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래서 숯을 이용하여 장시간 불을 때는 궁궐은 구들개자리를 안 만든다.

과천 국립과학관의 전통과학관에서 재현해 놓은 온돌의 모습이다. 구들개자리 뿐만아니라 고래의 경사각도 제대로 구현되어있지 않다. 이렇게 만들면 아궁이에 불을 땔 수조차 없을 것이다.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아쉬웠던 점 중 한 가지다.

4. 온돌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

온돌은 우리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됐다.

  1.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닥에 앉는 좌식문화에 익숙한 게 온돌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앉고 서기 편하도록 옷도 치마처럼 풍성한 쪽으로 발달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 같은 게 없던 이유… 더불어 가구도 앉은 사람에 맞춰서 낮게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신발을 신지 않고 실내에서 생활한다. 온돌을 설치한 외국의 가정집에서도,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결국 신발을 안 신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여행을 갔을 때 숙소에 들어갈 때면 늘 고민스럽다.)
  2. 반면, 좌식문화의 편리성 때문에 양반다리로 앉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과 관절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도…ㅜㅜ)
  3. 밍트담요도 온돌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따뜻한 방바닥을 보온하고, 사람은 그 사이에 들어가 쉬기 위해 만든 직조물이니까…. (근데 이게 추운 외국의 사막지역에서 그렇게 인기라고 한다. ^^;)

ps.
필자가 어렸을 때 전통가옥에 살았다고 하니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려나? ^^

21 comments on “5만년 역사의 온돌”

  1. 와~그림을 보며 읽으니 이해가 가요ㅎㅎ
    어렸을 때 외가집에 놀러가면 바닥이 뜨끈뜨끈 참 좋았어요
    온돌이라 그러셨던 외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작은인장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잘봤습니다. 왜 온돌 형태의 난방 방법가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따라하기 힘든 구조였나 보네요.

  3. 온돌이 5만년이나 되었나요?
    구석기시대 집자리들은 대체로 지하로 파고 들어가는 식이라서 온돌을 설치할 수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식의 온돌이 출현하는 시기는 가옥 구조가 지상으로 올라온 시기 이후가 되어야 할텐데요… 그리고 구석기 시대에 사용하기엔 온돌이 좀 복잡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1. 저도 잘 모르겠는데 추운 북방지역에서 5만년 전의 구석기인들이 원시적인 온돌을 사용했다네요.
      이 글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장치들은 후대에 개량한 것들이구요…

  4. 일반적으로 북방지역에서 온돌이 전파되었다라고는 이야기를 해요.
    5만년전에 구석기 인들이 온돌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고..(그다지 사용할이유가 없을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동하면서 살았다고 알거든요; 온돌을 만들기에는..;)
    일반적으로 화덕(노지)에서 부뜨막으로 발전하고 거기서 나오는 열기를 좀더 보존하기위해서 (추으니까 취사시 발생하는 열기를 난방으로 돌리기 위함이라고도 할수 있겠네요..)외줄고래가 만들어지고 일자형 보다는 굽어지는 형태로 만들고 그게 발전되면서… 방바닥 전면에 깔리게 된거라고 알고있어요.
    그 방바닥 전면에 깔리게 되는게 우리가 말하는 보통 온돌이고 그게 아마 조선시대때 되어야 만들어지게 된거 일거예요. 그시대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요^^

    1. 위 글에서 언급했지만 신라시대에 이미 온돌의 구조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5만년전에는 빙하기였기 때문에 너무 추워서 이동생활이 아닌 정착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이칼 호수에 우리 조상들이 최후까지 살아남았죠. ^^)
      아.. 물론 저도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어요. ㅎㅎㅎㅎ

  5. 온돌은 단순히 돌을 뜨겁게 달궈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중요한 건 공기의 가열과 순환이었네요;; 그리고 서양에서 온돌을 활용하지 못한 것은 집 구조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요?

  6. 온돌은 정말 엄청난 과학의 산물이었습니다. 세계 어느나라를 돌아보아도 그런 구조나 열효율 방식을 채택한 경우는 없었거든요. 전, 한민족이라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날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단일민족이나 뭐 그런것을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주변의 강대국들이 펄펄 뛰는데도 불구하고 고유의 문화와 언어와 의복과 풍습을 유지, 아니, 그들에게 전파하면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만해도, 대단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7. 생각해보니 구들개자리를 설치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 봤었군요. ^^;;;
    아마도 그래서 내가 구들개자리 개념을 쉽게 받아들인 듯….

  8. 위에 리플중에 온돌이 조선시대때 완성이 되었다고 말하시는 분은 정말..

    역사 공부를 좀 하셔야겟습니다.

    온돌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구려 시대 유적지에서도 온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때 온돌이 완성이 되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1.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잘 하는 분야 하나만 유지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9. 아무리 모든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하여도
    온돌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요소이고
    현재까지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의 난방요소로서
    이번기회에라도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온돌에 대해서
    알아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 하나만 유지한다는 생각보단
    다른 것들도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자세가 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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